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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인천에 문학을 한 방울 떨어뜨리다

‘문학’이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누군가는 우리를 안정시키고 확립시키는 것이 문학이라고 한다면, 또 다른 이는 인생을 표현하는 것이라고도 한다. 각자 생각하는 바는 다르지만, 모두가 공통적으로 인식하는 문학의 역할은 분명하다. 바로 누군가의 삶이 녹아 들어 있다는 점이다. 시에는 ‘화자’, 소설과 극에는 ‘주인공’, 수필에는 ‘작가’의 삶과 가치관이 진득하게 묻어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문학 작품을 읽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의 삶과 시대를 경험할 수 있다. 그렇다면 문학이 그려낸 인천은 어떤 모습일까? 지금의 인천은 그 모습을 간직하고 있을까? 이 글은 단순한 의문에서 시작한다.

궁금증을 해소하고자 인천을 배경으로 한 책 세 권을 찾았다. 이규원의 《해방공장》, 박인환의 《인천항》, 방현석의 《새벽출정》 속에서 그려진 일제강점기부터 1980년대까지의 인천의 모습을 직접 쫓아가 보고자 책을 손에 쥐고 여정을 떠났다.

해방공장에 드러난 강제징용의 아픔

이규원의 해방공장은 부평에 위치한 ‘미쓰비시제강’의 조병창에 강제 징용된 조선인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소설은 1945년 8월 15일 광복부터 10월 1일까지 해방 이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등장인물들의 대사를 통해 일제강점기 당시 노동자들의 삶을 짐작해볼 수 있다.

 

달관은 왼편쪽 손을 쭉 펴서 한참동안 보였다. 하나! 둘! 셋! 분명히 손꼬락은 세개밖에 없었다. 여럿은 무슨 영문인지 몰라서 의아해하다가 한참만에야 육체의 일부분이 그놈들때문에 병신이되었다는 뜻인줄알았다.

 

달관을 비롯해 귀머거리가 된 제관공과 왼편 쪽 팔을 잃어버린 운반공들의 상처들에서 그들의 녹록지 못했던 징용 생활이 드러난다. 노동자들이 묵어야 했던 사택 역시 허름한 탓에 양철은 삭아 내려앉아 있고 벽은 허물어져 있다. 일본인 사원의 사택은 골목도 넓고 나무들이 심겨 있어 봐줄 만한 모습인 데다 일본인은 살도 포동포동 쪄 있는 반면, 노동자 숙소엔 앞가슴뼈가 앙상하고 배때기만 불룩한 아이들만 가득했다. 노동자들에게 편히 쉴 수 있는 안식처란 꿈만 같은 이야기였을 뿐이었다.

 

그러고보니 그놈의 마누라며 딸이며 이 쌀밥만 처먹어서 살도 포동포동 찐 것 같이 보였다.

 

이는 비단 소설에만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1930년대, 일제는 만주침략, 중일전쟁, 태평양전쟁을 일으켰고 전쟁을 위해 「국가총동원법」을 제정하며 민족을 더욱 압박해왔다. 이때 일본기업 미쓰비시는 전쟁에 필요한 물자를 생산하기 위해 조병창을 부평에 설치한다. 이후 일제는 조선인들을 강제 동원해 조병창에서 노동토록 했다. 이들에게 인간적인 대접이란 사치에 불과했다.

2023년에도 여전한 불청객

주홍 글씨와 다를 바 없던 '철거'
높게 솟아있는 건물들 사이 초라한 줄사택

《해방공장》이 쓰이고 75년이 지난 오늘날 방문한 줄사택은 여전히 그때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건물 벽에 빨간 글씨로 ‘철거’가 쓰여 있는 건 기본. 벗겨진 콘크리트 벽 사이엔 황토로 대충 만들어진 가느다란 목재가 자리 잡고 있었다. 집을 지탱하기 버거워 보이는 얇은 목재는 조선인의 삐쩍 마른 팔다리를 떠오르게 만든다. 내부도 다를 바 없다. 천장엔 벽지가 찢어져 덜렁거리고 수북한 잡동사니만이 가득 차 있다. 이렇듯 허물어가는 줄사택이지만, 줄사택 주변은 다른 모습을 띤다. 높고 멀끔한 건물들 사이 자리 잡은 허름한 줄사택은 오늘날까지도 마을의 ‘불청객’인 채 남아있다.

실제로 부평구는 줄사택을 철거해 주차장을 조성할 예정이었지만, 문화재청의 보존 협조와 민관 협의를 통해 보존이 결정돼 철거 위기에서 가까스로 벗어난 상태다. 미쓰비시 줄사택이 너무 낡아 미관을 해친다며 철거를 주장하던 인근 주민들의 모습에서 그들이 달가운 존재가 아님을 실감하게 된다. 불청객이 된 그들의 상황은 우리의 마음 한켠을 씁쓸하게 만든다.

소설 속 노동자를 떠올리며 줄사택 일대를 천천히 걸어본다. 일제강점기엔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일제의 핍박을 받으며 고통스러운 징용 생활을 보내야 했다. 해방 후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그들은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일 뿐이다. 노동자들에게 유독 가혹했던 현실은 모습만 바뀌었을 뿐, 여전히 그들 곁에 상처로 남아 고통만을 안겨준다. 살갗을 파고드는 겨울바람보다 줄사택에 담긴 현실이 더 아프게만 느껴진다.

줄사택에서 나와 슬픔을 삭이며 발걸음을 옮겨본다. 지하철을 타고 40분 정도 이동하면 인천항에 도착한다. 도착한 인천항 역시 침략의 아픔을 머금고 있는 곳이다. 인천항이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한 때는 일제강점기였다. 광복 이후, 우리 품으로 돌아올 것이라 생각했던 인천항에는 또 다른 침략자가 도래하고 만다. 침략자는 미군으로, 약 한 달 후인 9월 8일 인천항에 상륙했다. 우리를 도와주리라 생각했던 그들은 일본과 다를 바 없었다. 이는 박인환의 시 《인천항》에서 알아볼 수 있다.

 

박인환이 바라본 해방 후 인천항

 

밤이 가까울수록 / 성조기가 퍼덕이는 숙사와 / 주둔소의 네온사인은 붉고 / 짠그의 불빛은 푸르며 / 마치 유니언 잭이 날리는 식민지 향향의 야경을 닮아간다

조선의 해항 인천의 부두가 / 중일전쟁때 일본이 지배했든 / 상해의 밤을 소리 없이 닮아간다.

 

박인환 시인은 ‘미군이 점령한 인천항’을 일본이 점령하던 것과 닮았다고 설명하고 있다. 실제로 미군은 행정권과 치안권을 장악하며 인천항까지 점령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인천역에서 도둑질하던 미군을 체포하려던 임완철 순경이 미군의 총에 맞는 사건까지 벌어졌다. 일제강점기, 일제 순사들이 자행했던 만행들과 똑 닮아 있는 모습에 우리 민족은 숨이 턱 막혀올 수밖에.

게다가 미 군정청은 조선을 통치한 적 있는 친일 관료들에게 권력을 쥐여줬고 이들은 일제강점기 시기보다 국민들을 더 괴롭게 했다. 해방을 맞이해 기쁨에 젖어 있던 것도 잠시, 우리 민족에겐 또 다른 고통이 시작됐을 뿐이었다.

아픔을 딛고 도약하는 무역의 장

박인환 시인은 인천항을 통해 들어오는 미군이 일본과 같은 침략자일 뿐이란 걸 알게 됐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배신감에 휩싸였을 수도, 어쩌면 체념했을지도 모른다. 해방은 우리에게 오지 않는 허상에 불과하다고 말이다.

약 80년이 지나고 가본 인천항은 그 당시와는 많은 게 달라져 있었다. 지게를 등에 지고 나무판자 상자를 옮겼던 과거는 거짓인 것처럼 몰라보게 발전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건물이나 배보다 사람이 많았던 과거의 인천항과는 달리 지금은 커다란 공장들이 끊임없이 들어서 있어 보는 것만으로도 웅장함을 안겨준다. 또한, 포크레인과 차들은 수출을 위해 줄지어 서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듯하다. 선박과 시설 역시 현대적으로 깔끔하고 튼튼하게 변화해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인천항은 과거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성조기가 팔락거리던 그때 인천항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과거의 아픔을 딛고 국제 무역의 장이 된 인천항은 어엿한 국제항구로서 동북아시아의 물류 중심지가 됐다. 몇십 년 전만 해도 우리 땅의 불청객이 들어오는 통로에 불과했던 곳이 이젠 수도권 관문항이 됐다는 사실에 여러 생각이 교차한다.

발전한 인천항을 뒤로하고 가재울역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가재울역에서 내려 한참 걷다 보면 사료공장을 비롯한 큰 건물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다른 공장과 다름없는 모습을 하고 있지만, 이곳엔 누군가의 피땀 어린 노고가 녹아있다.

새벽출정 속 그들의 이야기

이제는 없어진 세창물산...

방현석의 《새벽출정》은 ‘세광물산’ 여공들의 투쟁기를 그려낸다. 세광물산 노동조합의 요구사항은 이러했다. 첫째, 어용노조(사용자의 압력을 받는 비자주적 조합) 협의회를 폐지하고 노조를 인정해줄 것. 둘째, 일당을 1,500원 인상해줄 것. 셋째, 강제적인 잔업을 철폐할 것. 어쩌면 당연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그 당시엔 당연하지 못한 것이었다. 들은 체도 하지 않는 회사로부터 여공 ‘철순’은 노동자 처우 개선을 위한 현수막을 달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현수막을 설치하기 위해 올라간 지붕이 뚫려 그만 바닥으로 추락해 사망하는 일이 발생한다.

 

슬레이트 지붕이 무너지면서 철순은 공장 속으로 떨어졌다. 낡아빠진 슬레이트 지붕은 철순의 야윈 몸뚱이 하나도 지탱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를 계기로 노조는 뜨거운 농성을 벌였고, 세광물산은 노동자들의 요구를 반영해 임금을 1,200원 올려주는 듯했다. 하지만 이는 거짓이었고, 물산은 위장폐업을 해 노동자들의 생계를 끊어버렸다. 순식간에 생계를 잃어버린 이들은 다시 한번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노동자의 눈물없는 해방의 새날을 위해 온몸을 던져 싸우겠습니다”

 

작품 속 세광물산은 과거 인천 주안 5공단에 실제 위치했던 ‘세창물산’을 모티브로 한 공간이다. 당시 세창물산 임금은 남녀 각각 4,400원 4,300원으로 최저생계비보다도 1,700원이 낮았다. 따라서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 요구는 당연한 것이었지만, 세창물산은 이를 거부했다. 회사와 투쟁을 위해 여공 철순은 현수막을 걸다 추락해 사망했다. 이후 격분한 세창물산 노동자들의 투쟁은 인천 전체로 번졌고, 결국 임금을 1,400원 인상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세창물산은 칠순의 49재에 맞춰 위장폐업을 시도한다. 세창물산의 파업에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은 포기하지 않고 농성을 이어 나갔다. 회사로부터 계속된 압박을 받던 이들은 가두시위를 벌이고 여의도 사무실을 점거한다. 폐업을 철회할 순 없었지만, △물산의 위장폐업 인정 △일간지에 공개 사과문을 게재 △파업 기간 8개월 치 평균임금 △해고수당 6개월 치 △파업 비용 전액 지급 합의를 끌어냈다.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지금

자취를 감춰버린 넘실대던 똥바다

노동자들의 설움이 가득 담긴 세창물산은 어떤 모습일까? 현재 ‘주안 5공단’은 지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지명이 됐다. 가까스로 찾아본 주안 5공단과 세창물산이 위치했던 곳은 약 40년 전과 같은 곳이라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달라진 모습이었다. 주안 5공단엔 신식 공장들이 잔뜩 들어섰고 세창물산은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 자리엔 세창물산 노동자들이 벌였던 일은 모두 꿈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새로운 공장이 들어서 있다.

 

시커멓게 누운 개펄로 바닷물이 차오르고 있었다. 개펄 양켠의 대형 하수구에서는 쉼없이 폐수가 흘러나왔다. 바닷물과 폐수가 뒤섞인 똥바다는 가는 물결로 일렁거렸다.

 

사라진 회사를 지나 노동자들이 자신의 처지를 한탄했던 ‘똥바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똥바다를 찾기 위해 인천교를 거쳐 주안 5∙6공단을 지나는 길 언저리를 빙빙 돌았지만, 바다는커녕 웅덩이도 찾을 수 없었다. 그들에게 위안이 됐던 그 장소는 이젠 매립돼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노동자 처우 개선을 외치던 칠순에게, 지금의 인천은 어떻게 다가올까? 지금은 그녀가 몸담아 일했고 백골이 진토되도록 투쟁하던 상대, 세창물산은 온데간데없고, 그녀에게 희망을 안겨줬던 똥바다마저 자취를 감췄다.

 

“저 갈매기들은 아마 썰물을 따라 나가면 드넓은 바다가 열린다는 걸 모를 거야. 노동자의 운명은 가난과 굴욕이라고 생각하는 우리들처럼 똥바다가 바다의 전부라고 생각할거야.”

 

자신의 죽음까지 불사하며 힘썼던 노동자 처우 개선의 물결은 여전히 가로막힌 채 고여 탁해지기만 할 뿐, 바다로 흘러가 맑은 물이 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세창물산과 2023년 사이. 수많은 공백이 존재하지만, 다를 바 없는 현실은 똥바다보다도 탁하기만 하다.

수많은 노동자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40년의 세월이 지난 인천의 노동환경은 여전히 열악하다. 2022년 기준, 인천 노동자의 평균 임금은 전국 17개 시∙도 중 뒤에서 7번째. 심지어 인천의 한 물류센터는 세창물산과 다를 바 없었다. 에어컨조차 없어 한여름 폭염 아래에서 에어컨 없이 일을 해야 했고, 노동조합 분회장에겐 재계약을 막고 정당한 평가 기준 공개 없이 해고를 통보했다. 4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노동자들이 마주하는 현실은 매서운 칼바람과 다를 바 없다.

세 가지 아픔, 그리고 오늘

일제강점기부터 1980년대까지. 문학작품은 인천을 색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그저 미관을 해치는 것 같았던 줄사택, 세계화의 중심지로 느껴졌던 거대한 인천항,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지나쳤던 주안5공단과 인천교까지. 문학 작품을 통해 새롭게 바라본 그곳은 제각기 다른 아픔을 가지고 있었다. 일제강점기 강제 징용의 아픔, 또 다른 점령자인 주한미군으로부터의 아픔, 노동 현실로 인한 아픔. 우리 곁에 아직 남아있는 아픔의 흔적도 조금씩 지워지는 흔적도. 남겨진 형태마저 다르지만, 이들의 삶과 애환은 여전히 존재한다. 늘 우리 곁에 존재하는 문학 작품으로.

김민진 기자  12212895@inha.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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