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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타인의 아픔을 빌려 글을 쓴다는 건

“남의 불행을 팔아 기사를 쓰는 게 맞나요?” 지난 1303호 해성보육원 기사 발행 후 한 통의 피드백 메일을 받았다. 요지는 이랬다. 기사에 지나치게 ‘아이들의 아픔’이 강조돼 읽기 불편했다는 내용이었다. 이따금 독자 피드백을 받긴 하지만, 해당 메일은 유독 가슴에 날카롭게 박혔다. 반성, 부끄러움, 자책… 오만가지 감정이 들었으나 이 모든 감정은 ‘정곡을 찔렸다’는 데서 기인했다.

취재 전 설정했던 목표는 간단했다. 시설아동의 아픔을 조명하고, 독자들로 하여금 사회적 약자에 대한 담론을 끌어내겠다는 거였다. 당시 필자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보육원 내 생활하는 아이들의 아픔을 가감 없이 그려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5개월간 보육원에서 보고 들은 내용을 상세히 취재 수첩에 기록했다. 아동의 문제 행동부터 갈등 상황, 가정사까지.

취재가 끝났으니, 취재 내용을 바탕으로 기사를 ‘잘’ 쓰는 일만 남았다. 민감한 내용은 기사에 넣지 않는 게 맞지만, 본전 생각이 났다. 잘 쓰고 싶었던 욕심 탓일까. 독자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아이들의 아픔을 들춰내는 사연을 기사에 녹여냈다. 마음 한편으로는 ‘이 정도는 괜찮겠지’ 스스로를 합리화하면서 말이다.

처음 발행됐을 때는 뿌듯한 마음뿐이었다. 그러나 독자의 시선에서 글을 천천히 읽어보자 하나둘 거슬리는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이를테면 상세히 묘사된 아동의 자해행동이나 과잉경계행동 같은 내용들. 마음 한편에 찝찝함을 담아둔 와중 받게 된 것이 앞서 언급한 피드백 메일이었다.

‘아동권리 보호를 위한 미디어 가이드라인’은 학대받은 아동을 보도할 시 아동이 보이는 문제행동, 학대 장면’만’을 묘사하는 걸 지양하라 안내한다. 단순 묘사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현상이 일어나게 된 원인을 분석하고 제시하는 게 언론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필자가 쓴 기사의 가장 큰 문제는 언론인으로서 응당 해야 할 어떠한 고민의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저 아동의 문제행동, 아픔만을 전시한 ‘편하게 쓴 기사’였다. 어쩌면 독자가 느낀 불편함도 여기서 기인한 건 아니었을까.

태초의 목표는 시설아동의 인권을 증진하고자 하는 ‘선의’였다. 그러나 필자의 기사가 선의에 부합했다곤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다. 학대 후유증에 고통받는 아동의 무력한 모습보단, 그들이 하나의 인격체로서 능동적으로 행동하는 모습을 강조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랬다면 ‘불행 포르노’라는 말에 조금은 덜 양심에 찔렸을지도 모른다.

기자는 어쩔 수 없이 타인의 슬픔을 빌려 글을 쓸 수밖에 없다. 중요한 건 그에 걸맞은 경각심을 갖는 것이다. 약자의 슬픔, 사회의 아픔을 세심히 헤아리며 조심스럽게 다가가는 자세. 지난 취재에선 미흡했으나 같은 실수를 두 번 반복하지 않으리라.

 

박소은 기자  12203234@inha.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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