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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를 즐기다_영화] 영웅일까 악인일까?
데스노트

전 국민을 분노케 한 아동 성폭행범 조두순이 출소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이런 생각을 해봤을지도 모른다. ‘정의가 살아있긴 해?’ 지금까지 국민은 많은 범죄를 접하며 사법의 본질인 ‘정의’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정의’가 법만으로 구현 가능한지, 그리고 법이 언제나 정의로운지에 대해서 말이다. 영화 ‘데스노트’는 바로 이 정의의 딜레마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다.

주인공인 라이토는 흉악범이 체포되지 않을뿐더러 재판조차 받고 있지 않다는 자료를 접한다. 그는 법이 있어도 이들을 처벌하지 못하는 현실에 분노하게 된다. 그러던 중 이름을 적어 사람을 죽음에 이르도록 만들 수 있는 데스노트를 발견한다. 그는 데스노트를 이용해 범죄자를 처단하며 자신만의 정의를 실현해 나간다.

그러나 ‘라이토의 정의’에는 사실 오류가 있다. 흉악범이 응당한 처벌을 받도록 하는 게 ‘정의로운 결과’일진 모르겠지만 적어도 살인은 ‘정의로운 수단’이라고 볼 수 없다. 옳지 못한 과정으로부터 도출된 결과가 옳다고 말할 수 있을까? 법은 인류의 공존을 위한 규범이자 정의 실현의 수단이다. 물론 법이 그 역할을 제대로 하는지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범죄자의 처단’과 ‘공동체 규범 준수’ 중 어느 것이 정의에 가깝냐고 묻는다면 많은 이가 후자라 대답할 것이다. 인류의 공존이라는 목적을 위해선 법 준수가 모두의 후생에 이익이기 때문이다. 영화 역시 라이토의 죽음을 통해 그의 정의는 절망적 최후를 불러온다는 점을 시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이토의 행위에 열광하는 상당수의 시민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우리의 마음 한쪽을 씁쓸하게 한다. 그들은 범죄자를 처단하는 라이토의 심판이 정의롭다고 생각한다. 라이토에 열광하는 이들의 모습은 정의 실현이라는 목적하에 작동하는 법의 역할을 정작 국민은 신뢰하지 못하는 현실을 대변한다.

실제로 이러한 사법 체계와 국민 법 감정 간 괴리는 한국 사회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는 문제다. 조두순의 형량에 대해 많은 사람이 분개했을 뿐만 아니라 출소하는 날 그의 집 앞에 달걀을 던지는 등 불만을 표출했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는 비단 이 사건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법의 테두리에서 벗어나 있는 정치인들과 흔히 ‘재벌 봐주기’라고 불리는 여러 사례를 접하며 국민은 괴리를 느끼게 된다. 여기서 우리 사회는 정의를 위해 법을 준수해야 하지만, 법은 정의롭지 못하다는 딜레마에 직면한다. 이는 ‘데스노트’가 말하고자 하는 바이기도 하다.

당신이 생각하는 정의란 무엇인가? 저지른 범법행위에 대한 응당한 처벌과 법적인 절차 중 어느 것이 우선시 돼야 하는지는 여전히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숙제다. 영화 ‘데스노트’는 이에 관한 생각의 계기를 제공하는 시발점이 돼줄 것이다.

김민진 수습기자  12212895@inha.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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