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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림돌] 죽어가는 종교

‘당연함과의 거리두기’가 지속하면서, 종교는 죽어갔다. 많은 이가 상처투성이가 됐다. 19세 이상 가구주 중 1년 전보다 가구 소득이 감소했다고 응답한 비중은 32.1%에 달했다. 일상 속 제약으로 우울과 불안장애를 겪게 된 인구는 OECD 주요국 평균 3배 이상 증가했다.

그동안 종교는 세상사의 근원, 즉 인간 존재의 의미를 설명했고 생로병사에 대한 가르침을 제공했다. 활약해야 할 종교는 코로나와 함께 죽어갔다. 선교 후 입국한 목사가 지침을 어겨 오미크론을 국내에 전파하는가 하면, 한 목사는 대형 집회에서 목회자로서 해선 안 될 발언을 하기도 했다. 사건이 중첩될수록 종교계에 대한 의구심은 커졌다.

소수 종교단체는 종교의 자유를 내세우며 방역에 비협조적 태도를 내비쳤다.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는 예배가 공공복리를 오히려 증진하고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집단감염은 끊이지 않았다. 2021년 2월까지만 하더라도 개신교인 2,953명, 천주교인 19명, 불교인 0명이 감염됐다. 이는 종교계가 감염 확산의 근원으로 인식되도록 부추겼다. 이런 거취는 종교의 존재 의미 자체를 부정한다. 그간 재난의 역사에서 종교는 본연의 역할을 해냈기 때문이다. 종교는 재난을 어떻게 대처해왔을까? 불교와 기독교가 세운 효험의 역사에서 찾을 수 있다. 

고려와 조선시대, 많은 역병 속에서 불교계는 각각 ‘점찰회’와 ‘수륙재’로 대처했다. 수륙재는 공양을 드리며 환자를 구휼하는 의식이다. 문종은 수륙재를 개설하며 “백성을 위안함에 의도가 있고, 병은 마음으로 말미암는 것이어서 편안함을 얻으면 그치게 된다”고 말했다. 또 로마제국 시대, 기독교인은 감염병의 현장에서 시혜자가 됐다. 그들은 환자를 사랑으로 보살폈고 이방인에게도 자비로웠다. 그리스도가 가르친 사랑을 실천한 것이다. 두 사례는 종교의 역할이 한마음으로 기도하고 베푸는 일임을 시사한다. 참회하고 원통한 이를 구제함으로써 가호를 얻는데 뜻이 있었다.

이는 실효를 거뒀고 ‘공동선 증진’이라는 효과로 귀결됐다. 의식이나 예배 자체가 공동선을 증진한 것은 아니다. 내포된 사랑과 나눔 실천이 중요한 대목이다. 실질적인 피해 복구에 앞장서고 사회적 약자를 위한 치유와 나눔 운동을 하며, 때론 먼저 세상을 떠난 이를 추모한다. 이것이 작금의 우리가 기대하는 종교의 보편적 역할이 아닐까? 프란치스코 교황은 소외된 국가에 코로나 백신을 공급하는 ‘백신 나눔 운동’을 실시했다. 한국 천주교회는 기부금 330만 달러를 송금했다. 종교단체는 주어진 자유를 모임에만 활용할 것이 아니라, 신앙인이 시민사회에서 지녀야 할 올바른 품성과 사고방식을 심어주는 데에도 활용해야 한다.

공동선 개념의 성립은 개별 인간의 연대성을 통해 제시된다. 종교단체는 그 밑거름 역할을 해야 한다. 불교의 ‘무주상보시’, 그리스도교의 ‘그리스도께서 보시기 좋은 일’은 범(汎)지침이 된다. 코로나19는 머지않아 해결될 것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이해서도, 갈등과 혐오가 빗발치는 현실 속에서 종교는 어떤 세계를 만들어 나가야 할지 끊임없이 자정 노력을 기울이고 생산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종교는 반드시 재기해야 한다.

김인겸(국통·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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