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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담론] 글을 읽는다는 것
김기현 기자

수학학원에서 약 1년 반 동안 초·중·고등학생을 가르친 적이 있다. 당시 가장 큰 고민은 ‘어떻게 수학 문제 풀이법을 알려주지?’가 아닌, ‘어떻게 문제의 의미를 이해시키지?’였다. 과거에 비해 창의·논술이 중요시되면서, 수학 문제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기 때문이다. 스토리텔링 기법이 더해져 문제의 흐름을 이해해야 풀 수 있게 됐다.

말은 거창해 보여도, ‘1+1=2’에서 ‘철수가 가지고 있는 검은 구슬 한 개와 빨간 구슬 한 개를 더하면 총 두 개의 구슬이 됩니다’로 바뀐 것뿐이다. 하지만 학생들은 이런 문제를 마주하면 못 풀겠다는 말부터 내뱉는다. 놀랍게도 이 아이들에게 문제를 단순한 수식으로 바꿔주면 빠르게 계산하고 해결한다. 참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한 초등학교 교사가 말하기를, 4학년 학생들과 ‘내 이름은 삐삐 롱 스타킹’이라는 간단한 책 한 권을 읽는 것이 버겁다고 한다. 그는 대사가 나왔을 때 누가 얘기했는지 파악하는 것을 학생들이 몹시 힘들어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그런지 궁금해서 학원생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요즘 웹소설은 대사 옆에 등장인물이 다 표시되어 나오는데요?”라는 대답에 ‘세상 참 좋아졌구나’라는 생각 반, ‘이 정도(누가 말했는지 생각해보는) 고민도 안 한다고?’라는 생각이 반 들었다.

이는 어린 학생들에게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다. IT 업계가 발전하고, 휴대폰과 컴퓨터가 삶에 밀접해지면서 우리는 ‘글’보다 ‘영상 및 사진’에 더 익숙해졌다. 점차 책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글을 읽는 사람들이 줄어들었다. SNS나 웹 기사 등 글을 이용한 매체가 남아있긴 하지만, 대개 자극적이고 짧은, 읽기 쉬운 문장들로 구성돼 깊은 사고를 요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웹으로 발행되는 기사들은 시선을 사로잡는 강렬한 헤드라인으로 시작하고, 사람들은 흘러가듯 읽은 헤드라인과 요약글만 보고 기사를 판단한다. 당장 페이스북에 올라오는 기사만 봐도 본문을 제대로 읽지 않은 채 헤드라인에 속아 물타기 식으로 적힌 댓글이 난무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모든 사람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비율이 늘어나는 것은 사실이다. 특히 태어날 때부터 스마트폰과 함께해온 어린 세대에서 그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어쩌면 몇 년 뒤에는 사진과 영상, 그리고 짧은 문장으로만 모든 것이 전달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싶다. 책과 신문을 읽는 사람을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울 수도 있을 것이다.

한국의 문맹률은 0.2%로 매우 낮은 수치를 자랑하지만, 문해력은 OECD 22개국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오죽하면 ‘현대판 문맹’이라는 말이 나올 지경이다. 이제는 단조로워진 언어생활에서 벗어나야 할 때다. 아직 늦지 않았다. 쉬운 소설책이라도 천천히 독서하는 습관을 들여 잃어버린 문해력을 되찾아보자.

김기현 기자  12192699@inha.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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