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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치] 126년, 애관극장과 함께한 인천시민의 희로애락
중구 개항로에 위치한 애관극장

무료한 일상을 보내던 어느 날, 문득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생각. ‘영화나 보러 갈까?’ 곧장 인터넷으로 영화관을 찾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눈에 들어온 생소한 이름, ‘애관극장’. 학교에서 대중교통으로 30분 정도를 이동해야 했지만, 오랜만에 영화관에서 영화를 본다는 설렘이 발걸음을 재촉했다. 버스를 타고 마침내 신포시장에 도착했다. 정류장으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애관극장을 마주할 수 있었다.

애관극장 126년

한눈에 보이는 고급 고층 빌딩, 그리고 그 안에 들어선 수많은 식당과 쇼핑 시설. 멀티플렉스 영화관은 많은 것을 한 곳에서 즐길 수 있기에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하지만 여기 조금 특별한 극장이 있다. 소박하지만 126년이라는 시간을 굳건히 버티며 우리나라 극장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곳. 바로 중구 개항로 ‘애관극장’이다.

애관극장은 1895년 해운회사 객주 정치국이 개관한 ‘협률사’에서 시작됐다. 인천의 협률사(協律舍)는 황실과 국고 지원으로 세워진 서울 협률사(協律社)보다 7년 앞선 최초의 사설 극장이다. 협률사(協律舍)는 인형극, 창극, 남사당패의 공연 등을 진행하면서 인천 문화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이후 1911년에는 인천 개항장과 어울리는 ‘축항사’로 이름이 변경됐다. 그로부터 14년 후 ‘보는 것을 사랑하다’라는 뜻의 ‘애관’으로 다시 한번 바꾼 명칭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애관극장은 6.25전쟁을 피하지 못하고 1950년 전쟁 중 소실됐다. 전쟁이 끝난 뒤 1960년 건물을 재건했고, 이후 2004년 총 5개의 상영관을 갖춘 영화관으로 거듭났다.

파랑과 노랑의 조화’

‘최초의 실내 극장'이라는 말에 오래된 건물을 예상했지만, 직접 눈으로 본 ‘애관극장’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깔끔했다. 파란색과 노란색을 중심으로 꾸며진 건물은 주변의 상가에 비해 단연 돋보였다. 알록달록한 색깔 때문인지 마치 놀이동산에 온 듯한 기분도 들었다. 건물 외관을 보자 기대감은 더욱 커졌다. 계단을 올라 입구 옆 매표소로 갔다. 코로나19의 영향 때문인지 극장은 고요한 기운이 감돌았다. 매표소에는 ‘무인 발권기가 나왔어요!’라 쓰여진 안내판만이 우두커니 서 있었다. 작은 구멍으로 티켓을 받는 옛 극장의 아날로그 감성을 느끼고 싶었지만 아쉬웠다.

무인 발권기로 티켓을 구매하던 도중 영화 티켓의 가격에 놀랐다. 최신 영화가 단돈 7,000원. 분명 아무런 할인 혜택도 적용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티켓 발권 후 발걸음은 자연스레 매점 앞으로 향했다. 영화의 빠질 수 없는 단짝 팝콘 세트를 주문했다. 주문을 들은 직원이 당황했다. ‘아차 관내 취식은 불가능했지.’ 오랜만에 온 영화관이라 마음만 앞섰다. 아쉽지만 콜라만 한잔시켰다. 영화 시작까지 시간이 조금 남아 콜라를 들고 영화관 곳곳을 누비기 시작했다.

2층으로 가는 길목에는 지금까지 애관극장이 걸어온 발자취를 보여주는 사진들이 있었다. 영화관 속 작은 박물관이었다. 과거 애관극장의 모습, 애관극장에서 열린 유명한 공연 사진들을 하나하나 구경하며 길을 따라갔다. 끝에는 ‘게임존’이라고 적힌 간판이 있었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몰래 오락실을 갔던 추억을 되살려 게임을 하러 들어갔다. 오락기는 온데간데없고, 텅 빈 공간에 과거 애관극장의 사진들만 걸려있었다. 상영관에 들어가기 전 청소를 하시던 직원분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3년째 애관극장에서 일하고 계신다는 말에 오락실에 대해 여쭤봤다. “주차장에서 오락실을 운영하시던 분이 계셨는데 코로나 때문에 손님이 없어서 오락기를 다 뺐어요. 대표님이 월세를 깎아주셨는데도 잘 안 된 거죠.” 코로나로 문을 닫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멀티플렉스의 그늘 아래

애관극장이 걸어온 126년이라는 시간은 그리 순탄치만은 않았다. 현재 ‘애관극장을 사랑하는 시민모임’(애사모)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인천대 인천학연구원 이희환 교수로부터 그 이야기를 전해 들을 수 있었다.

1980년대 인천 곳곳에는 20여 개의 단관 극장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1985년 중구에서 구월동으로 인천 시청이 이전하면서 중구는 도시의 중심기능을 잃게 됐다. 2000년대가 되자 대기업들이 극장업에 등장했고, 거대 자본을 바탕으로 한 멀티플렉스들이 생겨났다. 이에 따라 원도심에 있던 극장들은 멀티플렉스에 손님을 빼앗겨 하나 둘 사라지게 되고, 애관극장도 이를 피할 수 없었다. 애관극장은 문제를 해결하고자 근처에 있는 여관 건물을 매수해 2, 3, 4, 5관을 새로 만들었다. 또한 힘든 상황 속에서도 원도심 사람들을 위해 티켓 가격도 인상하지 않은 채 버텨왔다.

애관극장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줄어들자 결국 2018년, 사람들 사이에선 애관극장 매각에 대한 소문이 돌기 시작한다. 이에 인천시민들은 애관극장을 지키고자 애사모를 결성했다. 수백 명의 서명 운동부터 두 차례에 걸친 성명서 제출까지. 애관극장 보전을 위한 그들의 노력은 끊이지 않았다. 다행히 극장주는 매각 의사가 없다고 밝히며 상황은 일단락됐다.

그러나 코로나19가 발생하고 애관극장에게 다시 한번 위기가 찾아왔다. 극장을 방문하는 고객이 급격하게 줄자 극장주는 대외적으로 극장 유지가 힘들다고 밝혔다. 또다시 애사모가 결성되고, 그들은 인천시에 애관극장 매입을 요구한다.

극장주는 인천시와 감정평가금액을 70억 원으로 합의했으나 인천시는 매입을 위해선 매입 타당성 학술용역이 필요하다며 협상을 연기했다. 또한, 지난 8월로 약속했던 학술용역은 9월이 돼서야 착수됐고, 8월 말 매입 여부에 대한 확답을 주겠다는 약속 역시 11월 말로 연기됐다. 이에 애사모는 더 이상 민간에서 애관을 유지하는 것은 어렵다며 인천시에 매입을 촉구하는 호소문을 전달했다.

애관극장 1상영관 내부

“애관은 운명이고 숙명이죠.”

지금 극장주에게 애관극장은 어떤 의미일까? 2대째 애관극장을 맡아온 탁경란 대표와 이야기를 나눴다. 비록 수화기를 통해 이뤄진 인터뷰였지만 그녀의 진심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애관은 운명이고 숙명이죠. (저는) 애관이 126년이라는 세월에서 다시 200년이라는 세월로 영원히 있게끔 하는 데 중간에 잠깐 맡은 사람? 그러기 위해 태어난 사람? (애관은) 그런 존재예요. 인천 시민들의 모든 삶을 다 지켜봐 왔으니까요. 대한민국 최초의 극장을 인천시에서 갖고 있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거죠.”

애관극장이 운명이고 숙명이라는 그녀의 말에선 애관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엿볼 수 있었다. 애관의 대표로서 극장이 영원히 보전됐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도 느껴졌다.

애관극장은 지금도 우리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여기 중구 개항로에 극장의 역사이자 인천의 역사인 우리나라 최초 실내극장 ‘애관’이 있다. 지금 바로 개항로에 가 우리의 추억을 한 줌 새겨보자. 126년의 세월 동안 인천시민의 희로애락을 간직해 온 애관이 인천시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

원종범 기자  yawjbeda@inha.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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