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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인천 독립의 역사를 따라
‘인천시민愛집’ 외관
고속도로 표지판을 모방한 전시 슬로건

지난 7월, 인천 독립 40주년을 맞아 인천시는 다양한 행사를 개최했다. 인천의 깊은 역사에 대해 알지 못했던 기자는 ‘인천 독립 40주년’이라는 소식에 ‘인천시만 따로 식민지가 됐던 적이 있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인천 독립의 역사를 전시하는 곳이 있어 직접 방문해봤다.

 

어서오십시오, 인천 직할시입니다.

7월 1일 인천시는 직할시 승격 4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송학동에 위치한 옛 시장 관사를 개방했다. 관사를 개방하는 것은 독립 40주년을 맞은 인천에 깊은 의미가 있는 만큼 슬로건부터 관사의 새 이름까지 모두 시민들의 의견을 바탕으로 정해졌다. 그 결과 관사의 새 이름은 ‘인천시민愛집’(인천시민애집)으로 결정됐다. ‘인천시민愛집’은 인천의 역사와 문화를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전시들로 꾸며졌다. 그중 하나가 바로 인천 독립의 역사를 담고 있는 전시, ‘어서오십시오, 인천 직할시입니다’이다.

 

‘어서오십시오, 인천 직할시입니다’는 인천 직할시 승격 40년을 맞아, 인천시가 변화해 온 과정을 소개하기 위해 기획된 전시다. 전시회 제목은 각 지역을 나타내는 고속도로 표지판 문구 ‘어서오십시오, 00시입니다’를 모방해 해당 전시가 인천 직할시의 시작 과정을 담았음을 표현했다. 인천이 직할시로 승격되기 전의 상황부터 살펴보며 당시 역사를 되짚어보자.

직할시 승격 기념식 당시 자료

경기도에 속했던 인천

인천이 경기도에 속하게 된 것은 1069년 고려시대부터다. 그 이후로 계속 경기도에 속해 있었는데, 행정구역이 조금씩 바뀌면서 ‘인천부·인천시·제물포부’ 등으로 자주 명칭이 바뀌는 혼란을 겪었다. 1895년에는 23부제라는 제도에 의해 경기도가 사라져 인천이 일시적으로 독립을 하게 됐다. 이 제도는 도 체제의 한계를 극복하고 생활권을 반영하겠다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관할구역의 불규칙한 변화 등 다양한 문제가 제기돼 1년도 채 되지 않아 폐지됐다. 그 후 인천은 다시 경기도에 속하게 된다.

 

인천의 직할시 승격

사실 인천이 직할시로 승격되기 전 직할시라는 명칭은 존재하지 않았다. 부산의 경우 본래 독립적 체제를 운영하는 도시였지만 직할시라 명명되지 않았다. 직할시라는 명칭은 1981년 생겨났다. 이때 인천은 대구, 부산과 함께 직할시로 승격됐다. 직할시의 승격 기준은 명확하게 규정돼 있지는 않았지만, 대체로 인구 100만 명이 넘으면 직할시가 되곤 했다. 인천도 당시 인구 100만이 넘었기에, 승격 대상이 될 수 있었다. 승격 당일, 현판식과 기념식 등을 진행하며 많은 시민은 함께 직할시 승격을 기념했다.

승격 이후 인천시에 생긴 변화 중 하나는 인천시 내부 조직 중 재무국이 신설됐다는 것이다. 직할시가 되기 전에는 인천이 경기도에 속했기 때문에 단독으로 예산을 편성하고 사용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직할시로 승격된 이후에는 신설된 재무국을 통해 예산을 인천시 단독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이처럼 시청의 내부 구조가 바뀌면서, 공무원들이 가장 먼저 직할시 승격을 체감했다고 한다.

시청 직원들처럼 직할시 승격을 일찍 체감한 사람들이 또 있었다. 바로 교원들이다. 당시 시스템상 교원들의 근무지가 인천부터 경기도까지 무작위로 정해졌는데, 어느 순간부터 조금씩 인천 내부로만 발령이 내려졌다고 한다. 이때부터 교원들은 ‘인천이 곧 독립하겠구나’라는 것을 짐작했고, 승격 이후에는 줄곧 인천에서만 근무하면서 확실히 느끼게 됐다.

공무원들만큼 시민들도 직할시 승격을 실감했을까? 사실 시민들은 인천의 직할시 승격 직후에는 큰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직할시가 됐다고 해서 동네 이름이 바뀐 것도 아니고, 눈에 띄는 외적인 변화도 없었기 때문이다. 승격 이후 주소와 현판 등에서 ‘인천직할시’라고 표기되는 사례들이 점점 늘어나면서 그제야 시민들은 직할시로의 승격을 체감했다.

 

인천의 정체성을 나타내다

주소와 현판 등 시각적인 요소를 제외하면 시민들은 경기도에 속해 있을 때와 크게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그 때문에 인천시는 승격 이후 인천만의 정체성을 시민들에게 각인시키고자 다양한 시도를 꾀했다. ‘인천직할시’로는 처음 참가하는 전국체전을 준비하며 인천시에 대한 정체성을 어떻게 나타낼지 고민했다. 그때 생각해 낸 것이 바로 항구도시다. 바다와 접해있는 지리적 특성을 살려 개항 이후 인천의 역사를 담은 책을 발간하는 등 항구도시라는 타이틀을 전면에 내세우기 시작했다. 이후 항구도시를 발판 삼아 국제도시로 발전하기 위한 준비를 했다.

 

직할시 승격 40주년,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인천시

인천은 1995년부터는 명칭이 변경돼 인천광역시로 이어져 오고 있다. 직할시 승격 직후 내세운 ‘항구도시’라는 정체성에 걸맞게 발달한 항만뿐 아니라 큰 규모를 자랑하는 인천국제공항까지, 바닷길과 하늘길을 모두 담당하고 있는 도시로 성장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최근 인천은 인천공항 제2여객터미널, 송도 국제도시 등이 새롭게 생겨나며 더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이처럼 인천은 앞으로도 더 많은 발전이 기대되는 도시이자, 본교가 속해있는 도시인만큼, 그 역사를 알고 있으면 좋지 않을까.

인천 직할시 승격의 역사를 만나볼 수 있는 ‘어서오십시오, 인천직할시입니다’ 전시는 7월 1일부터 이달 3일까지 진행됐다. 한 달간 진행 예정이었던 전시는 시민들의 많은 관심 덕분에 기간 연장 후 3개월 동안 계속됐다. 전시의 양은 그렇게 많지 않았지만, 오랜 시간 머물며 관람할 만큼 의미와 가치가 있는 역사가 담겨 있었다.

옛 시장 관사를 개조한 송학동 ‘인천시민愛집’은 인천시 등록문화재 1호로 선정됐으며, 시민들을 위해 개방할 예정이다. ‘인천시민愛집’에서는 여러 전시를 함께 진행하며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울창한 나무들 속 고즈넉한 근대 한옥 건물인 이곳은 물론, 주변 공원을 포함한 산책로에 볼거리가 많으니 한 번쯤 방문해 보는 것은 어떨까.

‘인천직할시’로 표기하기 시작한 당시 현판

장민서 기자  judy73jh@inha.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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