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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치] 차이나타운에서 신포동까지

떠나고 싶다. 하지만 ‘여행’ 가기엔 부담스러운 시기가 계속된다. 그렇지 않아도 학점·취업 등 걱정이 태산일 텐데 거기에 감염병 위기까지 겪고 있으니, 여느 대학생이나 선뜻 떠나기 어렵다. 하지만 가까운 곳에서 ‘여행지’ 만큼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면 어떠한가. 용현동에서 수인선 두 정거장을 건너 만난 오늘의 주인공은 인천 중구, 개항장 거리다. 함께 가벼운 마음으로 개항장 일대를 거닐어보자.

인천은 강화도조약 이후 1883년 개항된 항구도시다. 개항으로 외래의 근대문화가 전면적으로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인천은 외래문화와 만나는 첫 접점지대였다. 항구의 문이 열린 그해 9월, 인천에 약 7,000여 평의 일본 조계와 이듬해 4월 일본 조계 서쪽 약 5,000여 평의 대지에 청국조계가 설치됐다. 조계제도란 일정한 지역 범위 안에 외국인 전용 거주지역을 설정해, 그곳의 지방행정권을 외국인에게 위임하는 제도를 말하며, 조계 내에선 치외법권 또한 인정됐다.

개항 당시부터 외국과 오가는 국제 정기항로가 있었던 인천은, 외국인들의 조계지와 여러 나라의 공사관이 존재했던 만큼 동서양 외국인들로 붐볐다. 그렇게 이국적인 공간이 만들어졌다. 먼저 과거 청국 조계였던 차이나타운을 느껴보자.

손님을 맞이하고 있는 황금빛 패루

코앞에서 마주한 차이나타운

정문에서 수인선을 타고 6분이면 목적지인 인천역에 도착한다. 개찰구를 거쳐 역에서 나오면 곧바로 차이나타운을 알리는 거대한 황금빛 패루(牌樓)가 손님을 맞이하고 있다. ‘패루’는 붉은 기둥 위에 지붕을 얹은 중국식 전통 대문으로, 보통 기념할 일이 있을 때나 마을의 입구라는 의미로 세워졌다. 이곳 차이나타운엔 4개의 패루가 동서남북 사방을 둘러싸고 있다. 그중 하나인 중화가(中華街)를 지나 안쪽으로 들어갔다.

오르막길이 안내하는 방향을 따라 일자로 쭉 올라가다 보면, 간판부터 건물까지 중국 특유의 ‘붉은색’이 거리를 원색으로 물들이고 있다. 차이나타운을 걷다 보면 중국식 근대 상가주택을 볼 수 있다. 마치 한 채의 건물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벽체를 공유하면서 여러 개의 상가주택이 연립해 있다. 좌우로 관광객을 겨냥한 음식점과 가게들이 빽빽하게 늘어서 있지만 찾는 이는 그리 많지 않았다. 거리는 생활 소음만이 들리는 정도였다.

좌우로 상점가를 구경하다가 “포춘 쿠키 700원”을 보고 충동을 못 참았다. 오늘의 내 운세는 어떨까. 거스름돈을 받자마자 비닐을 뜯고 확인했다.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뜨거운 열정을 묵혀두지 말고 마음껏 표출해보세요. 자신감과 의욕이 더해져 전에 없던 놀라운 성과를 내게 될 것입니다.” 선생님, 이번 기사가 학보사에서의 마지막 글입니다만.

바삭하면서 달달한 옛날과자 맛이었다. 군것질거리가 눈에 밟힌 이유가 있었다. 이윽고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울려 퍼졌다. 서둘러야 했다. 놀러 와서 굶고 있을 순 없지 않은가.

 

빼놓을 수 없는 먹거리

‘100년 짜장면의 맛’이라는 유명 중화 요릿집을 찾았다. 차이나타운 내에서도 맛집으로 소문이 자자했던 곳이었다. 평소 식사 시간에 맛 한번 보려면 긴 줄을 서야만 했으나, 기다림 없이 바로 들어가 자리를 안내받았다.

햇볕도 뜨겁고 오르막길을 걷다 보니 더웠던 찰나, 메뉴판에 냉면이 눈에 들어왔다. 중국식 냉면. 주문하고 5분이 채 안 돼서 마주했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달큼한 냉면 국물과는 달랐다. 한 젓가락 들고 나니 함께 나온 땅콩소스가 눈에 들어왔다. 넣기 전후 모두 굉장히 깔끔한 맛이었다. 매끈한 면발에 시원한 육수가 묻어 입안으로 쭉 빨려 들어온다.

인천에서 지내다 보면 ‘차이나타운 가서 중국 요리 먹지 마라’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허나 그렇지만은 않다. 부산 가서 회 먹고 춘천 가서 닭갈비 먹지 않는가. 다 먹고 나서 그들 ‘가격이 험악하다’는 생각이 들 수는 있겠지만 맛에 실망하진 않았을 것이다. 차이나타운도 그렇다. 거리에 있는 가게 어디를 들어가도 배신하지 않는다. 인천에서 나고 자란 22년 토박이가 보장한다.

밖으로 나와서, 후식으로 달곰한 걸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던 참에 화덕만두가 시선을 빼앗아 갔다. 고구마 맛을 주문하자 주인이 "고기가 맛있는데 왜 고구마를 드세요" 하고 웃음을 보였다. 바로 집어갈 수 있었다. 한때 최소 30분은 기다려야 맛볼 수 있었던 가게였지만.

손에 쥐고 주변을 한참 헤맸다. 이걸 어디서 먹어야 하나 고민하던 순간에 쉼터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한중원"이었다. 한중 문화교류 활성화 및 관광객 휴식을 위해 조성됐고, 중국 전통수목인 대나무, 장미, 모란 등을 식재해 중국의 정취를 느낄 수 있도록 조성했다고 한다. 늘어서 있는 대나무가 인상 깊다. 화덕만두 하나를 다 먹는 동안 혼자였다. 옆에서 눈길 한번 주지 않으신 참새 선생님을 제외하면 말이다. 함께 사진을 찍으려고 카메라를 들자 날아가셨다.

중구청 앞 일본풍 거리

일본 조계에서

차이나타운을 동쪽으로 빠져나오면 회색 계단이 보인다. 중국과 일본을 가르는 ‘청일 조계지 경계 계단’이다. 계단을 바라보는 방향에서 왼쪽으론 차이나타운이, 오른쪽으론 일본풍 거리가 놓여있다. 지금부터 걸어갈 일본풍 거리엔 근대 일본의 점포주택인 마치야(町家) 형으로 리모델링한 건물이 늘어서 있다. 이국적인 풍경이 연출돼 있지만, 주민들이 사는 보통 동네다.

오르막과 내리막을 계속 걸어 다니다, 지친 몸을 이끌어 카페로 들어갔다. 건물 외벽에 있는 근대문화유산 현판을 보고 끌려왔다. “팟알은 120년 된 목조건물이며 문화재입니다.” 이곳은 마치야 양식을 유일하게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팥빙수를 먹으면서 잠깐 쉬었다. 최고였다. 수북한 단팥과 네 점의 찹쌀떡, 살짝 뿌려진 우유와 곱게 갈린 얼음의 조화. 화려한 단맛이 혀를 감쌌다. 이대로 시간이 멈추길 기도했다. 스피커에서 나오는 유재하의 ‘사랑하기 때문에'를 들으면서 잠시 휴대폰을 놓고, 창밖에서 이따금 지나가는 자동차와 사람을 구경했다.

카페 '팟알'의 팥빙수

카페를 나와서 보이는 중구청은 일제강점기에 인천부청으로 사용됐다. 당시 주변에는 경찰서와 상공회의소 등 식민지 주요 통치기관이 설치돼 있었다. 일본인의 개척지이자 이주지로서 최초의 호텔, 우편국, 미두취인소 등 신식 문물이 이곳에서 시작됐다. 하지만 일본풍 거리가 보여주는 근대 건축물의 화려함과 달리, 아픈 역사를 가진 곳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미두취인소를 통한 일제의 쌀 수탈이 있겠다.

일본 조계 긴 길에 차례로 최초의 서구식 호텔인 대불호텔 전시관, 1960~1970년대 생활사 전시관, 인천개항박물관, 인천개항장 근대건축전시관이 이어진다. 옆 사거리에서 아래로 내려가면 근대문학관까지, 이 지역의 역사와 그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들을 감상할 수 있다. 근대문학관에서 나오면 곧바로 보이는 아트플랫폼에선 전시도 관람할 수 있다.

 

자유공원, 그리고 돌아오며

조계지 계단으로 돌아와 다시 올라가면, 자유공원이 나온다. 공원을 오르는 길엔 수많은 초록빛 나무들과 다양한 색의 꽃들이 펼쳐져 있다. 그리고 끝에서 전망을 바라보자. 개항장 일대가 한눈에 들어오는 곳. 밝을 때는 아름답고, 어두울 때는 황홀하다.

걷다 보면 얼마 걸리지 않는 신포시장에도 가보자. 공갈빵 하나 사서 돌아오는 것이 ‘국룰’이다. 근처에 신포역이 있어 학교로 돌아오기도 좋다. 그리고 오는 길에, 하루 동안 찍은 사진을 보며 개항장을 곱씹어 보는 것이다.

적지 못한 많은 명소와 이야기가 있다. 잠깐이면 된다. 집중이 되지 않을 때, 마음이 힘들 때. 반나절이면 충분하다. 못다 한 이야기를 독자들의 이야기로 채워보는 것이다.

김동현 편집국장  inha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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