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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를 즐기다_영화] 1987

 어느 날, 중앙일보 신성호 기자가 한 검사를 만났다. 검사는 신 기자에게 남영동에서 조사받던 서울대 언어학과 학생이 ‘또 이런 식으로 죽었다’는 정보를 흘린다. 남영동은 대공분실이 있는 곳이므로, 이 말은 곧 대학생이 고문으로 죽었다는 얘기다. 신 기자는 공중전화로 달려가 편집국에 이를 전한다. 그리고 얼마 뒤 발행된 신문 속 2단짜리 단신, “경찰에서 조사받던 대학생 쇼크사.” 그 학생의 이름은 바로 박종철이었다.

 기자들은 일제히 이 사건에 주목했다. 치안본부는 이를 무마해보고자 기자회견을 열었다. 어쩌다 죽었냐는 기자의 질문에 박처원 대공수사처장은 ‘조사관이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쓰러져 죽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의사 오연상은 진실을 알고 있었다. 박종철의 상태가 심상치 않자 경찰들이 오 교수를 불렀던 것이다. 하지만 이미 오 교수가 도착했을 때 그는 사망한 상태였다. 대공분실 바닥엔 물이 흥건했고, 그의 폐에서는 수포음이 들렸다. 목격자라는 이유로 경찰에 감시받고 있던 오 교수는, 자신과 얘기하려 화장실에 숨어있던 윤상삼 기자에게 이 사실을 털어놓는다.

 ‘물고문’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윤 기자는 이곳저곳 뛰어다니며 진상을 밝히기 위해 노력했다. 경찰에게 맞고 넘어져 팔을 다치기도 하고, 유족이 탄 자동차 번호판을 보기 위해 전경 방패 아래쪽으로 엎드리기도 했다. 그러던 중, 그는 이 사건에 관련된 검사를 찾아가 부검결과서를 얻게 된다. 그가 황급히 펼쳐본 부검결과서는 물고문이 확실함을 말해주고 있었다.

 결국, 그렇게 ‘물고문으로 인해 대학생 사망’ 기사가 터졌다. 박종철을 고문했던 경찰 두 명은 감옥에 수감됐다. 하지만 수감된 경찰들은 억울함을 토로했다. 자신들은 직접적으로 고문을 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박처원이 직접 찾아와 입을 다물라며 두 경찰을 협박하기도 했다. 이 얘기들은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던 교도관들을 통해 밖으로 새어 나갔고, 그들이 전한 이야기는 천주교 사제들에게로 흘러들어갔다.

 그리고 1987년 5월 18일, 명동성당에서 진실이 밝혀졌다. “故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의 진상이 은폐, 조작되었다.” 이 말과 함께 장면은 성당에서 대공분실로 전환된다. 그 안에선 이미 수감된 경찰 2명을 포함한 경찰 5명이 고문에 적극적으로 가담하고 있었다. 이날의 폭로로, 박처원을 비롯한 사건 관련자들은 모두 구치소에 수감됐다. 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노력이 빛을 발했다.

 이 영화는 1987년 그때의 절규, 열정을 모두 느낄 수 있는 영화다. 실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더 와닿는다. 피 같은 노력으로 모두가 이뤄낸 세상. 그 세상 위에 지금 우리가 서 있다. 그 시절을 간접적으로나마 겪어보고 싶다면, 아직 ‘1987’을 본 적 없다면, 이 영화를 통해 그 순간의 열기를 같이 느껴보는 건 어떨까.

 

박지혜 기자  wisdom99@inha.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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