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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배움에 있어 쉼표는 있어도, 마침표는 없다” 용마루학교에 가다

“코처럼 뾰족한 게 코사인이라고 했어요!” “피타… 아유 끝까지 가고 싶지두 않아(피타고라스의 정리를 배우며)” “나는 못 풀었시유” 가족과 오순도순 둘러앉아 저녁 먹기 좋은 시간인 오후 6시. 중학 검정고시 문제를 놓고 열띤 토론이 오가고 있는 이곳은 ‘용마루학교’다.

야학은 근로 청소년이나 정규교육을 받지 못한 성인을 대상으로 야간에 수업을 하는 비정규적 교육기관을 말한다. 일제강점기엔 한글을 가르쳐 민족성을 일깨워주려는 계몽적 성격이 강했고, 점차 시간이 흐르며 ‘노동야학’과 ‘검정고시 야학’으로 이어졌다.

후문에서 20분 남짓 이동해 만난 오늘의 주인공은 바로 ‘배움에 있어 쉼표는 있어도, 마침표는 없다’는 용마루학교다. 용마루학교는 늦깎이 학생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주는 야학이다. 1974년 출발해 올해로 개교 47년째에 접어들었다. 중앙동아리 ‘용마루’에서 운영을 맡고 있다. 재단이 있는 인근 야학들과 달리 이곳은 대학생들 스스로 운영하고 있었다. 즉 교장과 교사가 모두 학생이다.

용마루학교 대문에 써진 글귀

용마루학교는 일반적인 교육과정과 달리 매년 4월에 있는 검정고시에 맞춰 학사일정을 진행하고, 학기는 6월부터 시작한다. 교육비와 교재비, 필요한 필기구 모두가 전액 무료다. 수업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저녁 6시 10분부터 9시 40분까지 50분씩 4교시로 진행된다.

평소 같다면 방학이 한창일 4월 말. 교사도 학생도 쉬어가는 시간이어야 하지만, ‘보충수업’이 막 시작되고 있었다. 배성재(건축공학·4) 교장은 코로나19가 겹쳐 지난 중졸검정고시에서 낙방한 학생이 많아 미안한 마음이 컸다고 한다. “이대로 떠나기가 용납이 안 되더라고요. 저뿐만 아니라 다른 교사들도 동의했고, 그래서 (지금은) 보강을 하는 시즌이에요”라고 했다.

용마루학교에 도착했을 땐 1교시 수학 수업이 시작하려던 참이었다. 수업 직전 갑작스러운 시험에도 학생들은 불평 하나 없이 진지한 태도로 임했다. 분위기는 수능 시험장을 방불케 했다.

이어서 시험 문제 해설 과정에서 ‘도수분포표’ ‘삼각비’ ‘원주각’ 등의 내용이 칠판을 채워나갔고, 학생들은 판서를 받아 적으며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에 대해선 꼬치꼬치 캐묻고 넘어갈 만큼 열의가 돋보였다.

1교시 수업, 정재훈 선생님이 수학을 가르치고 있다

2교시가 끝나고 쉬는 시간이었다. 내용을 복습하는, 수다 떠는 소리가 가득한, 출출한 속을 채우기 위해 간식을 먹는 일반적인 학교와 똑같은 장면이 그려졌다. 취재를 위해 구석진 뒷자리에 앉아 있던 낯선 이에게 사탕을 건네주기도 했다. 비대면 강의 1년, ‘오랜만에 학교를 온 듯한’ 묘한 감정이 느껴졌다.

이곳에서 중졸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는 방명자(60) 학생은 대학 졸업이 최종 목표다. “원래는 가족들 저녁을 챙겨주고 오지만, (웃음) 오늘은 간 크게 먼저 왔다”며 말을 시작했다. 그는 과학과 영어 성적이 잘 나오지 않아 걱정이라고 한다. “어우~ 알파벳, 안 보고는 못써요 그것도… 이제 배워야죠”라며 웃음을 보였다. 이어 “스트레스 안 받으려고 노력해요. 스트레스 받으면 배운 것도 엉키잖아요. 오며 가며 트로트만 들어요”라고 말했다. 고등학교 시절 휴대폰에 유선이어폰을 꽂고 가요를 들으며 등교했던 모습이 떠올랐다.

용마루학교는 비록 비정규 교육기관이지만 공부와 학교생활을 경험할 수 있는 ‘진짜 학교’와 비슷하다. 배 교장은 “학교생활에 공부만 하면 재미없고, 공부만 하는 곳이 학교가 아니잖아요?”라며 “공부 외에 다양한 것들을 하며 ‘진짜’ 학교생활을 경험하실 수 있도록 하고 있어요”라고 설명했다.

정규 수업 활동 외에도 C. A.(Club Activity), 학생 회의, 여름 소풍, 개교기념일 행사, 졸업여행 등이 있다. 그중 CA는 교사들이 학생들과 함께 명함 만들기, 체육 활동, 과학 실험, 영어 팝송 배우기 등을 한다. 그리고 한 달에 한 번은 반드시 열리는 학생 회의에선 학생회장과 반장을 뽑고, ‘이번 달 생활 목표’를 정하거나 ‘지난 달 반성하기’ 등을 하며 이야기를 나눈다고 한다. 지난 추억을 회상하며 배 교장은 “졸업여행을 가면 이제 교사들의 재롱잔치가 시작된다”며 “교사들이 트로트 부르고 학생분들은 박수치고 참 재밌는데 (코로나 19로 인해서 하지 못해) 너무 안타까워요”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학교 내부를 둘러보던 중, 책상 위에 있던 글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중검정고시 합격하고 장사하려고 야학을 그만 두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인이 용마루 학교를 추천해주었습니다. 와서보니 학생수도 없고 그래서 조금 낯설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들께서 너무 자상하게 가르쳐주셨습니다. 그중에 우리 담임 선생님이 제일 열심히 잘 가르쳐 주셔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너무 짧은 시간이었지만 너무 행복했습니다.

용마루 학교가 최고 짱입니다.

가자 가자 용마루학교 갑시다.”

-한 학생이 담임선생님에게 삐뚤빼뚤한 글씨로 쓴 편지.

비록 글씨체가 휘황찬란하지는 않았지만, 예쁘고 짜임새 있는 글은 아니었지만 어떤 마음으로 썼을지 단번에 와닿았다. 옆쪽엔 가지각색의 글들의 행렬이 이어졌다. 학생들의 소망이었다. ‘검정고시 합격하기’ ‘대학 졸업하기’ ···

용마루학교 교사증. 그들의 자부심이 묻어있다

기억에 남는 순간에 대해선 모두 한데 입을 모아 비슷한 이야기를 전했다. 정재훈(체육교육·2) 선생님은 “학생분들 검정고시 마치고 나오실 땐 수능 보고 마중 나온 부모님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며 “마지막 시험 보고 나오실 땐 감격했다”고 말했다. 또한 배 교장도 “(한 학생분이) 전화로 우시면서 합격했다고, 고맙다고 말씀하시는데 저도 눈물이 나더라고요”라며 “회의 도중에 울어서 사람들이 왜 울고 있냐고 물어봤던 적이 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용마루학교가 걸어온 길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학교가 사용하고 있는 공간에 대해 배 교장은 “좁고, 비가 오면 물이 올라오고, 벌레들이 날아다니고,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춥고, 단열은 안 되고, 옆방 소리도 다 들리고 그래요”라고 설명했다. 곧바로 기자들에게 보여준 사진 속엔 열악한 환경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학교가 2층에 위치하고 있지만 비가 오기만 하면 장판 위로 물이 넘쳐 버려 바닥에 행주와 박스를 가득 깔아놓을 지경이었다.

재정적으로 어려움이 있어 운영에 차질을 빚었던 시기도 있었다. 그러나 폭풍우 몰아친 뒤 무지개 뜨듯, 최근엔 교육청, 교직원 공제회, 평생교육진흥원, KT&G 등에서 지원을 받으며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있다. 바로 ‘학교 이사’다. 교사와 교장 모두 이사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웃음꽃이 피었다. 한 교사가 “얼른 가고 싶어요”라고 하기도, 교장은 “좋은 환경으로 가게 됐죠”라고 할 정도다.

왼쪽부터 정재훈(체육교육·2), 배성재(건축공학·4), 전예지(사회교육·3) 선생님

취재를 마치고 용마루학교에서 나오는 참에, 한 학생이 “진짜 기자님이에요? 저는 기자 처음 봐요. TV에서만 봤는데” 하고 말을 건넸다. 조금 더 ‘학생 여러분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직전 수업을 참관하면서 본 모습이 번뜩이며 지나갔다. 이미 수업 시간을 3분이나 침범한 상황에서 더 빼앗을 수는 없는 법. 간단한 인사로 마무리 짓고 문을 나섰다. 오후 8시 즈음, 3교시 사회 수업이 막 시작하던 순간이었다.

일교차가 컸던 4월의 어느 날. 밖은 해가 저물어 쌀쌀한 기운이 감돌았지만, 학교 안에선 배움을 향한 뜨거운 열정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용마루학교 학생 여러분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그 길을 응원합니다.

김동현 편집국장 inhanews@daum.net

김범수 기자 kbs@inha.edu

김동현 편집국장  inha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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