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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눈물

 

<악플의 눈물>

 만약 당신이 친구에게서 비난의 말을 들었다면 어떤 기분이 드는가? 심지어 그 비난의 근거가 사실 여부조차 확인되지 않은 사안이라면? 아마도 속상하고 억울한 기분이 들 것이다.

 그렇다면 모르는 사람에게 비난받는 것은 어떤가? 혹자는 ‘모르는 사람인데 뭘’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한두 명이 아니라 열 명, 백 명, 천 명, 아니 수천수만 명의 모르는 이들이 당신을 비난한다면 어떨까? 그 익명의 공포 속에서 눈물을 흘린, 어쩌면 지금도 흘리고 있을 많은 이들이 있다. 바로 사이버 공간의 ‘악플’ 때문이다.

 악성 댓글, 일명 ‘악플’은 사이버 공간에서 이뤄지는 비난 목적의 댓글이다. 본래 댓글 서비스는 콘텐츠 게시자와의 양방향 소통과 피드백이라는 긍정적 취지로 시작됐다. 그러나 콘텐츠 수용자들의 건전한 ‘비판’이 아닌, 무분별한 ‘비난’이 문제가 되고 있다. 사실 여부와 관계없는 날 선 공격을 가하는 데는 오직 몇 초간 자판을 두드리는 간단한 노동만이 소요된다.

 

이름 모를 공격악플의 공포

 지난 7월 말 한 스포츠 선수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 그 선택의 이유 중 하나로 ‘악플’이 지목됐다.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한 인플루언서가 악플로 인해 활동을 중단하는 등의 사건들이 이어졌다. 이 같은 악플 폭력 사건들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0년 한 연예인의 학력 의혹은 루머가 돼 그와 가족에 대한 무분별한 사이버 폭력의 시발점이 됐다. 작년 말과 올해 초에는 평소 악플에 시달리던 연예인이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했다.

 이처럼 악플 문제가 오랫동안 지속한 만큼, 악플을 근절하고자 하는 움직임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여전히 ‘악플러’들은 누군가를 눈물짓게 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눈물이 반복되는 이유는

“장난으로 던진 돌에 개구리는 죽음을 맞이한다

 악플의 무서운 점 중 하나는 가해자들이 이를 한낮 유흥으로 치부해버린다는 점이다.

 이를 가능하게 한 일등 공신으로 온라인 공간상의 ‘익명성’이 꼽힌다. 인터넷상에서는 직접 상대를 마주하지 않고, 아이디나 닉네임만으로 대화한다. ‘나’라는 개인이 완전히 숨어 있기 때문에 거리낌 없이 상대를 공격할 수 있는 것이다.

 익명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터넷 실명제’를 도입하자는 목소리도 꾸준하다. 인터넷 실명제는 2004년 처음 시행됐지만 이후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2012년 위헌 판결을 받았다. 작년 한 가수 겸 배우의 극단적 선택 이후 청와대 국민청원에 인터넷 실명제 시행 청원이 올라오기도 했으나, 실명제는 표현의 자유 자체를 침해하고, 해외 SNS에는 적용할 수 없기 때문에 근본적인 해결 방법이라고 보기 어렵다.

 온라인 공간에서 악플과 그로 인한 루머가 퍼져 나가는 속도는 아주 빠르다. 진위와 상관없이 어떤 일이 터지면 집단으로 몰려와 비난하는 ‘아니면 말고’ 식의 태도는 그 불길에 기름을 붓는다.

 누군가의 눈물은 그들의 한낮 유흥거리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악성 댓글로 인한 눈물이 멈출 수는 없는 것일까.

 

악플의 눈물을 멈추기 위해

 포털서비스 네이버는 8월 7일을 기해 스포츠 뉴스 댓글 서비스를 잠정 중단했다. 스포츠 선수들에 대한 지속적인 비난이 이어지자 스포츠 뉴스 댓글 규제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네이버는 “최근 ‘악성’ 댓글의 수위와 그로 인해 상처받는 선수들의 고통이 간과할 수준을 넘는다”라고 밝혔다.

 포털 서비스의 뉴스 댓글 규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해당 포털을 포함해 다음, 네이트 등은 지난 3월경 연예 뉴스 댓글 서비스를 폐지했다. 그러나 여전히 유튜브 등 SNS에서는 연예인에 대한 무분별한 악플이 만연한 실정이다.

 이렇게 댓글 창을 굳게 닫아 잠그는 것이 악플을 근절하고, 보이지 않는 폭력에 눈물 흘리는 피해자를 줄이는 방법이 될 수 있을까?

 악플을 달 수 없도록 뉴스 댓글 창 자체를 꽁꽁 걸어 잠가도 다른 창구를 사용하면 그만이다. 누군가가 악플에 강력히 대응하거나 신경 쓰지 않더라도, 그것이 악플을 ‘신경 쓰지 않으면 될 일'이라고 치부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 악성 댓글로 눈물짓는 일을 없애려면 악플 문제를 더 엄격히 다뤄야 한다.

 현재 일명 ‘악플법’이라 불리는 다양한 법안들이 발의됐다.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가 혐오 표현을 삭제하는 법안, 인터넷 주소를 표시하는 ‘준실명제’등이다. 이처럼 악플 근절을 위한 움직임이 일어나는 현재, ‘비판’할 자유와 ‘비난’을 효과적으로 구분해 문제를 해결할 방지법이 필요하다. 이는 단순히 댓글 창을 닫는 것보다 긍정적 효과를 불러올 것이라 생각한다. 또한 악플에 대한 처벌도 강화해, 손쉽게 누군가를 비난하는 경향을 잠재워야 한다.

 법안 제정 외에도 온라인상에서의 성숙한 댓글 문화 형성도 필요하다. 인식을 개선하자는 것은 뻔한 이야기일 수 있다. 그러나 ‘상대가 나를 모른다’는 이유로 몇 자 적은 것이 누군가에겐 비수가 되어 가슴에 꽂힌다. 만약 누군가 악플이 자유로운 ‘표현’이라고 생각했다면 그것은 ‘자유’에 대한 책임을 간과한 것이다. 남을 눈물 흘리게끔 하며 ‘자유’를 갈망하는 것만큼 모순적인 것이 있을까.

 

<악어의 눈물>

 악어는 먹이를 먹을 때 눈에서 눈물을 흘린다. 때문에 자신의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잡아먹는 먹잇감에 연민을 느끼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착각이다. 악어가 흘린 눈물은 일종의 윤활유 역할을 해 먹이를 더 잘 씹도록 돕는 ‘장치’일 뿐이다.

고대 이집트에는 나일강에 사는 악어가 사람을 잡아먹은 후 눈물을 흘렸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이후 셰익스피어가 작품에서 ‘악어의 눈물’을 거짓 눈물이라는 뜻으로 쓰면서 이는 ‘위선’을 통용하는 말로 굳어졌다.

 눈물을 ‘장치’로 사용하는 것은 비단 악어뿐이 아니다. 인간도 적극적으로 사용한다. 악어는 먹이를 소화하기 위해, 인간은 소기의 목적 달성을 위해 눈물을 장치로써 이용해왔다. 악어와 인간에게 차이점이 있다면 악어의 눈물은 자연의 섭리지만, 인간은 때때로 인위의 눈물을 연출한다는 것이다.

 

“제발 우리 아이를 도와주세요”

 ‘어금니 아빠’로 유명한 이영학 씨, 그가 모금을 시작한 것은 2003년부터였다. 전 세계적으로 수십 명만이 앓고 있다는 ‘거대백악종’으로 인해 그는 어금니 하나만 가지고 살아왔다. 더 큰 문제는 그의 딸이었다. 유전되지 않을 것이라던 의사의 말과는 달리 딸은 아버지와 같은 고통을 겪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수술비를 위해 명동 한복판에서 외쳤다. “도와주세요”라고. 가족들이 잠든 밤, 캠코더를 켜 눈물로 호소하는 영상을 찍기도 했다.

 그러나 이 씨의 실체는 전과 11범의 추악한 범죄자였다. 지난 2017년 9월, 그는 딸의 친한 친구였던 A양을 집으로 초대해 수면제를 먹인 뒤 강제 추행했다. A양이 의식을 되찾을 때쯤, 물을 묻힌 수건으로 A양의 얼굴을 눌러 살해했다. 강원도 한 야산에 시체를 유기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이 씨는 태연하게 다시 캠코더를 켰다.

 다른 살인 사건과 달리 이영학의 범죄가 국민적 공분을 사게 된 이유는 그가 행했던 ‘위선’ 때문이었다. 그가 카메라 앞에서 흘린 눈물에 사람들은 도움의 손길을 건넸다. 그러나 이영학이 방송에 나와 ‘눈물’을 팔아 모은 12억 중 딸의 치료비로 사용된 금액은 단 700만 원이었다.

 그러면서 본인은 수천만 원가량의 문신을 온몸에 두른 채 BMW를 비롯한 고급 세단을 굴리며 사치스럽게 생활했다. 그러나 이를 눈치챈 사람은 없었다. 온 국민이 그가 흘린 ‘악어의 눈물’ 한 방울에 속아 넘어갔다.

 그렇게 진정성을 가장한 눈물은 대중을 선동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됐다.

 

 반성문 등을 미루어 보아 가해자가 진심으로 뉘우치고 있다고 판단,”

 지난해 미성년자와 유사성행위와 음란물 제작·유포로 3년 형을 받은 이 아무개 씨는 재판에서 감형받았다. 그가 제출한 반성문 덕분이었다. 법원은 반성문 등을 미루어 보아 가해자가 진심으로 뉘우치고 있다고 판단했다. 눈물을 팔아 죄를 던 셈이다. 그러나 이 씨는 올해 n번방 성착취 사건과 관련해서도 불법 동영상을 제작, 유포한 것으로 밝혀졌다. 결국 이 씨가 흘린 눈물은 참회의 눈물이 아닌 악어의 눈물이었다.

 ‘박사’ 조주빈과 ‘갓갓’ 문형욱으로 대표되는 n번방 디지털 성착취 사건은 가해자 집단이 피해자를두고 벌인 일종의 인격살인이었다. 박사와 갓갓은 피해자에게 성 착취 영상을 강요했고, 그 방의 공모자들은 더 자극적인 행위를 요구했다.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오른 후 검찰은 강요죄 등 총 14개 혐의로 조주빈을 기소했다. 그러자 조주빈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후회한다는 듯 반성문을 제출했다. 하루에 한 통씩, 모두 100통이 넘었다. 반성문의 주된 내용은 “깊이 반성하고 뉘우치고 있다”는 것이다.

 그가 진정으로 반성하고 있을까.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간의 존엄성마저 저버린 채 반인륜적 범죄를 저질렀던 범죄자가 하루아침에 ‘잘못했다’고 말하는 상황에서 반성문의 의도가 다분히 악어의 눈물과 닮았다고 말하면 비약일까.

 한 인간의 인격을 짓밟으며 쌓아 올린 그 거대한 악행이 거짓 눈물 한 방울에 씻겨 나갔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다른 악인들도 죄를 덜기 위해 눈물을 이용했다. 이들은 악어의 눈물을 흘리며 피해자가 흘릴 눈물마저 앗아갔다. 과연, 진정으로 눈물 흘려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

 

<을(乙)의 눈물>

갑질 : 사회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는 자가 자신의 신분, 지위, 직급, 위치 등을 이용해 상대방에 무례한 언행과 인격적 모독을 하며 제멋대로 구는 행위

 ‘갑질 횡포’에 관한 기사를 매일 볼 수 있을 정도로 갑질은 우리 주변에서 만연하게 일어나고 있다. 갑질이란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는 자가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상대방이 자신의 방침에 강제로 따르게 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계약서상에서 돈을 주고 일을 시키는 당사자와 돈을 받고 일을 하는 상대를 가리키는 일명 갑을(甲乙) 관계에서 비롯됐다. 갑이 을에게 횡포를 부릴 때 흔히 ‘갑질한다’고 표현한다.

 갑질 폭력은 어디서나 일어나고 있다. 직장, 학교, 가게, 아파트까지 약자를 괴롭히는 갑질의 폭력은 우리 주변에 팽배해 있다. 지난 5월 한 아파트 입주민이 주차 문제로 아파트 경비원에 수차례에 걸쳐 폭언과 폭행을 일삼아 결국 경비원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뉴스를 볼 수 있었다. 을이 갑질에 벼랑 끝으로 내몰려 추락해버린 것이었다. 수많은 ‘을’들은 ‘갑’의 횡포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며 고통스러운 나날들을 보냈고, 그들의 눈물은 누구도 닦아줄 수 없었다.

 흔히 기업의 대표자 혹은 경영진 일가의 인물들이 직원들을 마치 물건 다루듯 마구 대하는 폭언을 하거나 폭행을 일삼는 갑질을 많이 볼 수 있다. 국내 유명 항공사 부사장이 객실 승무원의 견과류 제공 서비스를 문제 삼아 항공기를 유턴하게 만든 일명 ‘땅콩 회항’ 사건은 재벌형 갑질로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또, 한 국회의원이 공항에서 수행비서에게 여행용 가방을 전달하던 ‘노 룩 패스(No Look Pass)’도 많은 이슈가 되며 여러 패러디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모 유업이 오랜 기간에 걸쳐 지역대리점에 물건을 강매했다는 고발과 함께 막말 녹취록이 공개돼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에 따르면 올해 6월 19일부터 25일까지 전국 19~55세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지난 1년간 상급자 등에게 직장 내 괴롭힘(직장 갑질)을 당했다고 응답한 비율이 45.4%에 달했다. 지난해 7월 16일 시행한 개정 근로기준법 1주년을 앞두고 한 조사였다. 유형별로는 모욕과 명예훼손(29.6%), 부당지시(26.6%), 업무 외 강요(26.2%)가 많았다. 따돌림·차별(19.6%)과 폭행·폭언(17.7%)이 뒤를 이었다. 직장 갑질 행위자는 임원이 아닌 상급자(44.5%)가 가장 많았고, 임원 또는 경영진(21.8%), 비슷한 직급 동료(21.6%)도 적지 않았다.

 

 “상사가 이름이나 직급 대신 ‘아가’라고 부르면서 성희롱했습니다. 용기를 내 문제를 제기했지만 사과받지 못했고 오히려 집단 따돌림을 당했어요”

 “말 잘 들으면 정규직으로 전환해준다며 성희롱을 일삼던 상사를 회사에 신고했는데, 그 이후로 가해자와 친한 상사가 인사도 받아주지 않고 업무공유도 해주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권력 관계에서 비롯되는 성희롱 또한 수도 없이 일어나고 있다. 직장 내 성희롱·성추행 사례는 회식 자리에서 특정 신체 부위를 만지는 노골적인 성추행부터 상사가 부하직원에게 민감한 사생활을 묻거나 외모를 품평하는 행위까지 다양하다. 가해자는 ‘그냥 내 딸 같아서’, ‘장난으로 웃자고 한 말’이라고 치부해버리지만 이는 그저 가해자의 입장이다. 성희롱 피해자는 가해자의 언행에 절대 웃고 넘길 수 없다.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가 생기기도 하며, 피해를 당했던 장소에서 가해자와 함께 일해야 할 뿐이었다. 오히려 ‘민감하게 반응했다’고 피해자의 탓으로 되돌려지기까지 했다. 그들의 피눈물은 계속 흐를 수밖에 없었다.

 

 ‘감정노동자’들에게 행해지는 고객들의 갑질도 빼놓을 수 없다. ‘감정노동자’로 불리는 서비스업 종사자들은 고객과 응대하는 과정에서 폭언과 성희롱 등 감정적인 고통받는 일이 허다하다. 이들은 실제 느끼는 감정을 억누르고 친절한 태도로 고객을 맞아야 한다. 사람을 상대하는 업무다 보니 일부 고객들로부터 욕설을 포함한 언어폭력, 즉 갑질을 당하는 것이다. ‘갑질 손님’, ‘진상 손님’ 논란은 꾸준히 있고 감정노동자들의 감정은 보호받지 못했다.

 정말 많은 곳에서 눈물로 살아가는 ‘을’들이 있다. 갑이 을에게 행하는 부당한 대우는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당연하게 이뤄진다. 한 책에서 나온 ‘갑질의 낙수효과’라는 말처럼 갑과 을은 누구나 될 수 있다. 뉴스에서 본 내용이라도 결국은 우리 주변 이야기이고, 내 이야기가 될 수 있다. 남의 아픔이 아닌, 내 아픔인 것이다. 그러니 을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좀 더 나은 세상, 을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이정민 기자 12182301@inha.edu

김범수 기자 12202998@inha.edu

박유정 기자 12182941@ina.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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