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과대학에 문화콘텐츠전공이 개설되었습니다. 올해 1학년 인문학부에 입학한 학생 중 30여 명이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문화콘텐츠라는 새로운 학문의 길에 접어들게 되는 셈이지요. 새로운 분야여서 그런지 관심들이 많습니다. 동료 선후배 교수와 학생들은 물론, 학부모들까지 전화 문의를 해오는데, 그때마다 이 전공의 개설을 준비하고 지금 전공주임을 맡게 된 나 역시 '희망 반, 걱정 반'의 감정을 떨칠 수 없습니다.
　얼마 전, 5호남 151호에 문화콘텐츠전공사무실을 개설하고, 조촐하게 개소식을 마련했습니다. 개소식의 끝 무렵, K양도 들렀지요. 도대체 문화콘텐츠전공은 무엇을 배우는 곳인가요? 그곳에 가기 위해서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죠? 취업은 어느 분야에서 가능하죠? K양의 많은 질문을 한꺼번에 답하기는 어려웠습니다.
　21세기는 문화의 시대이고, 문화산업의 시대입니다. 지금껏 우리가 알고 있는 문화는 인간에게 가장 가치 있고 소중한 어떤 것, 즉 좋은 것(good)을 가리키는 개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문화는 가장 부가가치가 높은 어떤 것, 즉 잘 팔리는 상품(goods)이라는 개념과 밀접하게 연관되기 시작했습니다. 내 상식으로는 가장 좋은 것이 가장 잘 팔리지는 않습니다. '좋은' 물건과 '좋아하는' 물건이 같을 수는 없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제 소비자가 주인이 되는 사회입니다. 그리고 소비자가 좋아하는 것은 어느 순간, 정말 마법처럼, 좋은 물건으로 변하기도 합니다. 소비자가 문화의 소비와 생산 주체가 되는 순환고리는 대중문화 시대가 가질 수 있는 최상의 장점입니다. 많은 인문학자들이 현대 대중문화를 걱정하고 비판하지만, 그들이 문화를 창조하지는 못했습니다. 논리적이기보다는 그저 감성적인 존재로만 보이는 패션 디자이너는 내년의 유행을 예상하고, 심지어는 내년의 유행을 창조해내기도 하는데 말입니다. 이제 문화엘리트로부터의 비판보다는 패션 디자이너의 현장감을 배우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기도 합니다.
　문화콘텐츠전공의 미래에 거는 기대는 큽니다. 그러나 저는 이렇게 답합니다. 좀더 기다립시다. 그리고 스스로 노력합시다. 집 한 채를 짓는 데에는 몇 달이면 충분하지만, 거기를 사람 사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제도, 합의, 공동체적 가치까지 보태져야 합니다. 무엇보다 사람이 중요하기 때문이지요. 데카르트의 비유도 생각나는군요. 데카르트는 과거의 모든 믿음을 버리고 완전한 '회의와 부정'의 정신을 근대과학의 초석으로 삼고자 했습니다. 손톱으로 태양을 가릴 수 있는데, 태양이 손톱보다 더 크다는 근거는 무엇인가? 이런 질문도 데카르트는 서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런 비유도 했습니다. 헌 집을 버리고 새 집을 짓기 위해서는 헌 집을 허무는 일도 필요하지만, 헌집이 없을 때 머물 임시의 집도 필요하지 않은가 하는 선택 말입니다.
　문화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이기보다는, 유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입니다. 축적되어 있는 문화적 유산을 배우는 일이야말로,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는 방법론입니다. 문화콘텐츠전공은 새로운 학문입니다. 그러나 문학, 사학, 철학 등의 기초가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경영학적 마인드와 공학적 접근 방법을 몰라서도 안 됩니다. 또한 외국어 하나쯤도 필수이겠지요. 그리고 우리 주변을 돌아다보며, 모든 문화적 소재들을 자산으로 삼아보는 훈련도 필요합니다. 길거리의 광고판, 내 곁을 스쳐가는 사람들 하나하나가 모두 문화적 소재들이기 때문입니다. 집들이에 오신 손님들, 감사합니다. 너무 걱정만 마시고, 문화콘텐츠전공이 성장할 수 있도록 많은 격려 부탁드립니다.
　

김만수 (문화콘텐츠 전공, 부교수)  webmaster@inh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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