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게시판이 ‘말의 쓰레기장’이 되어가고 있다. 각종 사이트 게시판에는 성인, 상업광고가 즐비하고, 욕설, 비방적 성격의 게시물이 난무한다. 이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터넷의 폐해라고 외치지만 ‘사회문화현상’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에 인하대학신문에서는 인터넷 게시판의 현실태와 사회, 심리적인 요인을 파악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욕구불만 해소하는 게시판 현 실태

“인터넷에서는 누구도 당신이 개라는 사실을 모른다”
　
미국의 만화가인 피터 스타이너가 미국의 주간지 ‘뉴요커’ 1993년 6월5일 호에 게재된 만화에서 인터넷 시대의 ‘익명성’을 풍자해 한 말이다.

현재 우리나라 인터넷의 현실을 비춰 볼 때, 피터의 풍자는 신빙성을 더하고 있다.
　
최근 ‘탤런트 변정수 자살설’이 한 네티즌을 통해 급격히 확산되는 등 이제는 ‘인터넷 범죄’라는 용어가 식상할 정도로 다양한 종류의 비방, 욕설 등이 인터넷을 통해 창궐한다. 더구나 요즘에는 ‘게시판 자동추출기’를 사용해 불특정 다수의 게시판에 음란·상업적 성격의 ‘스팸’을 날리는 업체도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정통부 통계를 보더라도 지난 2001년부터 작년까지 사이버 명예훼손 신고현황이 1백96건에서 3천6백16건으로 해마다 열 배 이상으로 급증했다.

처방약 마련 급급

이에 많은 인터넷 기업들이 자구책을 강구하고 있다. (주)NHN의 네이버는 스팸이나 욕설, 음란성 게시물을 차단하는 필터링을 도입했다. 문충식 ASP 팀장은 “다양한 스팸 차단 방안이 제공되는 메일에 비해 게시판은 특별한 대응책이 없어 게시판 이용자들이 불편이 커져 왔으나 이 시스템 도입으로 줄어들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또한 지난 9월 15일(수) 정통부에서는 이러한 폐해를 최대한 막기 위해 ‘인터넷 게시판 실명확인제’를 도입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발표하는 등 ‘처방약’ 마련에 고심 중이다.
　
이처럼 이제 사람들은 인터넷이라는 신매체의 등장으로 사회가 또 다른 혼란과 갈등 속으로 치닫는 것을 두려워한다. 지난해 대선이 끝난 뒤, ‘민주당 살생부’가 등장했을 때 정치인이 치를 떨고, 자살이 유행하니 ‘자살사이트’의 대대적 단속이 펼쳐지는 등 인터넷 게시판에 ‘목숨’을 거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

갈등관계 배출구로

하지만 현 상황을 단순히 표면적인 ‘인터넷’의 등장으로만 볼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화평론가 변정수는 그의 저서 ‘만장일치는 무효다(2003)’에서 “수직적 관계가 사회적 관계망의 주축을 이루던 시대에는 ‘윗사람’이 갈등의 조절자를 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사회가 아니다. 갈등을 조정해 줄 제삼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또한 “따라서 모든 사람들이 자기 나름의 입장에서 ‘억울한 피해자’일 뿐, ‘잘못한 사람’도 없고 ‘책임질 사람’도 없다”는 논리를 펼친다.
　
그의 말에 의하면 갈등의 상대방에게 책임을 미루지 않으면 내가 뒤집어 쓸 수밖에 없는 ‘제로섬 게임’에서 ‘쌍방향 의사소통’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이러한 갈등관계는 이제 ‘인터넷 게시판’으로 옮겨간다.
　
누구나 불특정 다수에게 자신의 견해를 자유롭게 표출할 수 있는 인터넷의 특성상 게시판에는 다양한 의견이 올라오고, 비논리적 비판과 감정 싸움도 자연스럽게 뒤따른다. 변정수 문화평론가는 “일상 속에서 여러 가지 이유로 표현하지 못한 갈등을 인터넷에서는 ‘물 만난 고기 마냥’ 마음껏 터뜨린다”고 설명한다.
　
일상에서 맞부딪치는 수많은 갈등들이 해소되지 못하는데 따르는 욕구불만을 게시판에서 분출하는 것이라는 분석이다. 결국, ‘공론의 장’을 표방했던 인터넷이 오히려 사회의 갈등 배출구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가벼운 사회 투영

한편, 인터넷 게시판의 부작용에 대한 ‘심리·문화적’ 분석이 나오기도 한다. “가벼운 사회를 살아가는 요즘 세대들의 성격이 게시판에서 그대로 반영된다. 스스로 ‘쿨’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정작 남이 욕을 하면 덩달아 욕을 한다”고 원용진 문화연대 매체개혁위원장은 밝힌다. 자신의 생각을 자신있게 표출하는 것이 인터넷에서는 와전돼 나타난다는 것이다.

군중 속의 고독

이처럼 ‘남이 나를 알아 줬으면’하는 기대 심리는 오늘도 인터넷에서는 여전히 유효하다. 활발한 토론과 타인과의 생각을 공유할 수 있다는 인터넷 게시판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낯선 사람의 글에 대한 또 다른 낯선 사람의 ‘열광적’ 분풀이는 이제 도를 넘어설 지경이다. 자신이 남긴 글에 대한 사람들의 뜨거운 반응에 만족하며 다시 ‘댓글’을 다는 이들. ‘군중 속의 고독’이 지독한 ‘넷’ 풍경이다.

홍준표 기자  webmaster@inh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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