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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래퍼 이그니토를 만나다

 

 본교 철학과 출신 래퍼 이그니토를 만났다. 그는 눈이 아픈 상황에서도 선글라스를 끼고 흔쾌히 인터뷰에 응해줬다. 어두운 분위기의 음악과는 다르게 밝은 에너지를 가졌고 저음의 목소리는 특히 매력적이었다.

 

Q.자기소개해주세요.

A. 안녕하세요. 저는 인하대학교 철학과 01학번이고 ‘이그니토’라는 이름으로 랩을 하고 있습니다.

 

Q. ‘이그니토’라는 예명의 뜻이 궁금해요. 어떻게 이름을 짓게 됐나요?

A. 뜻은 크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얼마나 발음하기 쉽고, 쓰기 쉽고, 기억하기 쉬운가’를 생각해서 지었어요. 뜻 자체는 동사 ignite의 ‘점화하다’인데 점화자로서 불 지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의미로 지었습니다.

 

Q. 2집 가이아 정규 앨범 이후 싱글 앨범이 한 번 발매됐어요. 이후 어떻게 지내셨나요?

A. 2018년 말에 싱글 발매 후 2019년에 앨범 계획을 세우고 동료들과 같이하는 프로젝트 앨범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6월쯤에 망막박리라는 질병에 걸렸어요. 병이 많이 진행된 상태에서 수술을 받았고, 그 이후 대학병원에 매주 가서 치료를 받다 보니까 작년엔 거의 아무것도 못 했어요. 그러다가 작년 말에 유튜브 채널에서 제의가 들어왔어요. 올해 초부터 시작해서 유튜브 콘텐츠를 통해 제작된 노래가 4월 초에 나와요. 유튜브 ‘사사로운 스튜디오’라는 채널인데 목표는 제가 좋은 노래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담는 거예요. 덕분에 노래를 발매할 수 있게 됐고, 건강 때문에 쉬고 있던 활동을 재개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작업이나 활동을 열심히 해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작년에 투병 중일 때 철학과 김진석 교수님께서 연락을 주셔서 철학과 학술제에서 공연도 했어요. 교수님들도 뵙고 후배들도 만나는 좋은 시간을 보냈죠.

 

Q. 인하대학교 힙합 동아리 개로 1기로써 활동이 특별하셨을 것 같아요.

A. 그렇죠, 사실 인생을 바꿔 놓은 계기였던 거 같아요. 대학동아리를 통해서 음악을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흥미를 느꼈기 때문에 지금까지 온 거 같아요. 또 많은 사람과 인연을 맺을 수 있었고요.

 

Q. 개로 활동에서 지금도 기억에 남는 게 있나요?

A. 너무 많죠. 그때 00, 01 학번이 합쳐서 1기로 시작했는데 동아리라고 할 수도 없었어요. 정식 동아리가 아니었기 때문에 동아리방이 없어서 전전긍긍하다가 2년 만에 동아리방이 생겼어요. 그땐 동아리방 시설이 좋지는 않았어요. 그냥 공간을 합판으로 막아 놓은 방이었어요. 옆 동아리 눈치를 보면서 밀면 살짝 공간이 넓어지고 밀리면 방이 좁아지는 곳이었는데도 동아리방이 생긴 게 너무 좋아서 선배랑 통화하면서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있어요. “우리가 드디어 동아리방이 생겼습니다”라고 하면서. 그 기억이 강렬하게 남아있어요.

 

Q. 현재 ‘개로’에서 활동하고 있는 후배들에게 한마디 해주세요.

A. 사실 요즘 동아리 후배들은 저랑 학번 차이가 크게 나서 잘 찾아가지 못하고 보지도 못해서 제가 선배라고 하기 부끄럽네요. 옛날에는 힙합도 인기가 없었고 힙합을 하는 사람, 듣는 사람들이 다 이상한 취급을 당하던 시절이었지만 지금은 완전 힙합이 대세가 됐는데요. 그래서 지금 힙합동아리에서 힙합을 하면서 즐기고 누릴 수 있는 것이 매우 많을 것 같아요. 그 시간을 정말 그냥 행복하게 즐겼으면 해요. 아마 ‘인생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시간들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행복하게 즐길 수 있는 것들 모두 즐기면서 동아리 활동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Q. 철학과를 졸업하셨는데 가사를 쓸 때 철학에 많은 영향을 받나요?

A. 받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철학은 현실과 완전히 괴리된 학문이 아니기도 하고 글을 쓰는 입장에서 문장과 어휘에 굉장히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에요. 다만 제가 항상 조심하는 것은 ‘어떤 학자가 얘기한 철학적인 내용을 그대로 담아서 가사를 쓰는 것은 피하자’는 생각이에요. 학자 얘기를 그대로 가사에 쓰는 것은 어떻게 보면 1차원적인 지식 나열에 불과한 거니까요. 분명히 철학과에서 배운 것들이 제 삶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고 그렇게 변한 제가 쓰게 된 가사인 거죠. 그러니까 제 안에서 한 번 더 녹아서 섞이고 변하는 식으로 영향을 미쳤던 거 같아요.

 

Q. 본인이 쓴 가사 중에 가장 마음에 들거나 마음속 깊이 남는 가사는 무엇인가요?

A. 저는 한 문장마다 의미를 담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도드라지는 문장은 없는 것 같아요. 문장들의 편차가 크지 않다고 해야 하나? 그래도 굳이 하나를 뽑자면 제 노래는 아니고 마일드비츠 프로듀서님 음반에 랩으로 참여한 곡의 가사예요. ‘회귀반복’이라는 노래인데 거창한 것을 담아보겠다며 삶과 인생에 대한 가사를 썼어요. ‘봄을 견뎌내고 얻은 젊음이 춤추던 여름 추락을 여는 가을을 품고 전투로 맞이한 겨울’. 이렇게 사계절을 가져다 쓴 구절이 있거든요. 이게 라임도 잘 들어간 것 같고 삶의 탄생과 결말을 얘기하는 건데 마지막 추락이라는 가을을 딛고 겨울을 전투로 맞이한다는 표현이 마음에 드네요.

 

Q. 앨범을 만들 때 가장 신경 써서 작업하는 게 어떤 부분인가요?

A. 당연히 가사예요. 앨범을 만들 때 한 곡, 한 곡을 만든다는 생각보다 열 곡이면 열 곡의 전체적인 서사를 생각해요. 곡 별로 배치하고 나눠서 전체 작품의 일부라는 생각으로 만들기 시작하거든요. 그래서 피처링에 참여하거나 싱글을 내는 것과 다르게 앨범을 만들 때는 가사에서 부담이 더 큰 거 같아요. 저는 한 앨범이면 가사들이 하나의 큰 연결된 주제를 이루는 것을 좋아해서 큰 그림을 그리는 것에 신경을 씁니다.

 

Q. 이그니토 음악을 처음 듣는 사람들에게 어떤 식으로 들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나요?

A. 지금 힙합이 대세이고 랩이 대중과 친근해졌지만 그 안에서도 제 음악은 이질적이거든요. 그래서 음악을 들으셨을 때 불편할 수도 있고 가사들이 와닿지 않거나 취향에 맞지 않아서 오는 거부감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제 음악의 전체적인 무드 자체도 되게 어두운 음악이기 때문에요. 하지만 선입견이나 가사에 대한 불만을 먼저 가지기보다는 듣는 음악으로 ‘저 사람이 랩을 어떻게 하는가’를 먼저 어주시면 더 좋을 것 같아요. 목소리, 리듬감, 하드웨어적으로 들리는 발음, 발성 그런 것들에 초점을 맞춰서 친숙해지면 좋겠어요. 그냥 ‘한 명의 래퍼다’라고만 생각하시고 랩이나 기술적인 부분들에 귀 기울이면 재미 요소가 꽤 있을 것입니다. 가사 때문에 사람들이 그런 부분들을 잘 캐치하지 못하시는 것 같아서 좀 아쉬운 부분이 있었거든요.

 

Q. 어떤 뮤지션으로 기억되고 싶나요?

A. ‘이그니토라는 장르를 만들고 있다’라는 표현을 들으면서 되게 뿌듯했어요. 지금 힙합이 우리나라에서 부흥한 시기이고 당분간은 이런 시기가 또 없을 거 같아요. 또 그 시기에 마침 저도 활동을 어느 정도 하고 있죠. 힙합의 바람과 부흥에 맞춰서 성공을 거두고 이름을 알린 래퍼들도 물론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나중에 돌아볼 때 그 부흥기에 활동했던 수많은 래퍼 중의 한 명이 아니라 시대와 상관없이 언제 보더라도 유일하고 독보적이며 자기 색깔을 가지고 있는 장르를 완성해낸 아티스트로 평가받고 싶어요.

 

 

박유정 기자  12182941@inha.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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