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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편리한 배송에 가려진 그늘, 배송 기사 노동 여건

 ‘로켓 배송’, ‘새벽 배송’, ‘당일 배송’. 유통업계의 배송 경쟁은 나날이 심화되고 있다. 익일 배송을 넘어 당일, 새벽에까지 고객에게 더 빠르게 물건을 배송하기 위한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편리함은 누군가의 피와 땀을 대가로 한다. 그들은 바로 배송 노동자들이다. 유통업계의 치열한 배송 경쟁 속에서, 배송 노동자들은 과연 안녕할까.

 

과다한 업무에 시름하는 배송 기사

 배송 노동자들은 과다한 업무에 시달리고 있다고 주장한다. 전국택배노동연대(이하 택배노조)는 지난 6월 24일 청와대 앞에서 열린 ‘전국택배노동자대회’에서 택배기사 노동 여건 개선을 촉구했다. 택배노조 측에서 주장하는 ‘과다한 업무’의 골자는 ‘분류 작업’이다. ‘분류 작업’은 물건을 싣는 ‘집화’ 이전에 집화할 택배를 분류하는 작업이다. 배송을 담당하는 택배기사는 집화와 소비자에게 물품을 배송하는 ‘배송’ 업무를 수행하는데, 집화하기 전 알맞은 택배를 분류하는 사전작업에 부당하게 투입된다는 것이다. 택배노조는 장시간 노동은 긴 분류 작업 때문이며 별도의 인력을 선발해 분류 작업을 해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하며 장시간 노동 개선을 촉구하고, 주 52시간 근무와 휴식권 보장 등 노동 환경 개선을 주장하고 있다.

 

가을 배송물량이 넘쳐나는 모습 (출처: 전국택배연대노조)

치열한 배송 경쟁, 숨가쁜 택배 기사

 E-COMMERCE(온라인 유통)시장을 중심으로 유통업계의 배송 경쟁은 점점 격화되고 있다. 온라인 유통 기업 ‘쿠팡’은 ‘로켓 배송’으로 배송의 판도를 바꿔 놓았다. 6시 이전에 주문하면 다음날 받아볼 수 있다는 엄청난 이점은 배송업계의 속도 경쟁을 일으켰다. 택배 수령 시간대를 선택할 수 있는 신세계의 ‘SSG(쓱) 배송’, 다음날 새벽에 바로 신선한 식자재를 받아 볼 수 있는 마켓컬리의 ‘샛별 배송’ 등 이제 대한민국은 ‘배송공화국’이라고 불릴 만큼 빠른 배송 속도를 자랑한다.

 택배사들은 배송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더욱 빠른 배송을 추구한다. 그렇다면 과연 현장에서 발로 뛰는 배송 기사들은 어떨까. 상품 주문 시간은 더 늦어지고 배송 시간은 더 빨라짐에 따라 배송 기사들은 더욱 시간에 쫓기는 상황이다. 분기 평가 시 배송 할당량을 못 채웠을 때는 불이익이 있고 배송 속도가 지연되면 관리자가 연락해 빠른 배송을 요구하는 등의 통제 때문에 휴식할 겨를조차 없는 것이다.

 국민일보 인터뷰에 참여한 한 새벽 배송 기사는 ‘물량이 증가하고 있으나 4년간 임금은 동결된 상태다. 인력 충원도 많지만 그만큼 퇴사자도 많다’며 ‘근무 시간은 주 52시간으로 정해져 있는데 할당량은 하루 약 150가구이기 때문에 쉴 여유가 없다’고 새벽 배송의 어려움을 전했다.

 택배업계의 경쟁 격화에 따른 문제점은 이 뿐만이 아니다. 각 택배사들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택배 단가를 매년 인하하고 있다. 한국통합물류협회의 조사에 따르면 2011년 기준 건당 평균 2,534원이던 택배 단가는 2018년 기준 2,229원으로 하락했다. 그러나 국내 평균 택배 물동량은 2011년 기준 약 13억 건에서 2018년 기준 약 25억 건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택배 시장의 과열로 인해 택배사에서는 앞다퉈 단가를 줄였는데 이는 곧 택배기사의 수익 악화로 직결된다.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택배기사

 택배기사는 근로기준법상 ‘노동자’가 아닌 ‘개인사업자’다. 택배기사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 이기 때문에 배송 업무 중 택배 차량∙오토바이 사고가 발생하거나 배송상품 분실 시 본인이 전적으로 책임져야 하는 등 업무 중에 발생한 사고에 대해 제대로 보장받지 못한다. 또 CJ대한통운의 경우 택배노조의 교섭 요구에 대해 ‘택배기사가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에 노동조합으로 인정할 수 없다’며 교섭을 거부해온 바 있다.

 그러나 최근 서울행정법원은 최초로 노동조합법상 배송 기사가 노동자라고 판결하며 택배연대노조 또한 노동조합임을 인정했다. 하지만 이는 근로자와 회사의 관계에 중심을 두는 노동조합법상 노동자임을 인정한 것일 뿐 노동 권리와 직결된 근로기준법상으로는 여전히 택배 기사를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배송 기사는 아직 노동삼권과 같은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보장받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어 쿠팡플렉스, 배민커넥트 등 일반인이 배송 기사 업무를 수행하는 ‘1인 배송’ 시장이 커지며 이러한 1인 배송 노동자들의 권리 보장 문제도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1인 배송 노동자들은 쉽게 업무에 참여하고 일용 계약직으로 배송 업무를 수행한다. 산재보험 및 오토바이 사고에 대한 운전자보험도 본인 부담이다. 이처럼 노동 시 권리를 보장해 줄 수 있는 제도가 충분치 않아 규제 마련이 필요하다.

 

여건 개선을 위해 나아갈 길

 그렇다면 배송 기사의 여건을 개선하기 위해 나아가야 할 길은 무엇일까. 우선 배송 기사의 여건 개선을 위한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 지난 8월 발의된 ‘생활물류서비스법’은 10월 13일 열린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논의됐으나 법안 심의 절차에 대한 여야의 의견 차이로 부결됐다. 생활물류서비스법, 일명 택배법은 ▲주 52시간 근무 ▲휴식권 ▲노동환경 개선 등의 개정 방안을 담은 법안으로, 택배 기사들은 정부 차원의 제도 정립으로 배송 기사의 여건이 나아질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해 택배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더불어 배송 노동자를 노동조합법상만 노동자가 아닌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인정해 그들의 기본적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대리점과 택배회사 및 배송기사 간의 관계에서 실제 배송기사의 ‘진짜 사장’이 누구인지 규정짓고 노동권을 제대로 보장해야 한다.

 택배사는 택배기사에게 과도한 물량 부과·배송 업무 시 통제를 지양하고 택배기사의 복지를 늘리는 방법으로 배송 노동자의 여건 향상에 힘쓸 수 있다. 또 소비자들은 활성화되는 배송 시장 속에서 배송기사들의 고충에 대해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나날이 빨라지고 편리해지는 배송을 뒷받침하려면 실제 배송 노동을 하는 배송 노동자의 여건부터 개선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 빠르고 편리한 배송 뒤에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을 잊지 말자.

이정민 기자  12182301@inha.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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