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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룡논단] 2019년 톺아보기

 찬바람이 제법 매섭던 주말, 추위를 피해 들른 서점 안을 한 바퀴 휘둘러보았다. 삶이 각박해진 탓일까. 몇 년 전부터 서점 진열대에는 행복, 삶의 균형, 인간관계, 소통 등을 주제로 한 자기계발서인 듯한 에세이들이 가득하다. ‘힐링 에세이’로 불리는 이들 책은 일상에서의 ‘소확행’과 삶의 의미,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상처에 대처하는 법 등을 이야기하고 있다. 혹자는 힐링 에세이를 지배계급이 선사한 마약성 진통제라 평한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아닌 피상적인 위로와 대책 없는 희망 고문일 뿐이란 지적일 테다. 하지만 힐링 에세이의 인기는 식지 않는 것은 갑질과 부조리가 난무하는 우리의 팍팍한 삶이 일회성일지라도 끝없이 위로를 갈구하며 마음의 평안을 찾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힐링 에세이의 또 다른 특징은 책 제목이 독백 혹은 일상 대화체라는 것이다. 책 제목을 읽다 보면 나지막이 독자에 말을 건네는 저자의 목소리가 떠올려진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오늘은 운동하러 가야 하는데’ 등을 마주하는 독자 역시 마음속으로 한 마디 한 마디를 건네게 되지 않을까. 에세이 코너를 막 지나가던 중 나도 모르게 혼잣말이 툭 튀어나왔다. “그럼, 당연하지. 나이를 먹는 게 그런 거지.” ‘마음에도 근육이 붙나 봐요’란 한 저자의 물음에 강한 동의를 담아 그렇게 되뇌었다.

 통계학에서는 변인 X값이 증가함에 따라 Y값 또한 증가할 때 X와 Y 간에 정적 상관관계가 존재한다고 말한다. 마음의 근육과 정적 상관관계를 지닌 변인은 살아온 세월, 나이가 아닐까 싶다. 물론 사람마다 겪어온 삶의 강도와 헤쳐 나온 역경은 다를 테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마음의 근육 또한 두터워지는 것이 인생의 순리다. 올 한 해 내가 이루고 얻은 것 혹은 실패하고 잃은 것은 무엇인지를 되새기다 보면, 눈물이 날 만큼 행복했던 시간도 죽을 만큼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시간도 어찌 됐든 다 지나갔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힘들 때마다 되뇌는 ‘이 또한 지나가리다’의 법칙처럼 말이다. 일이든 인간관계든 성공과 실패를 경험하고 겪어내며 마음의 근육도 쌓이는 것이 나이를 먹는 것이다. 두터워진 마음 근육 덕에 지금보다는 실패를 덜 두려워하고 인간관계에 덜 아파하며 스스로 더 사랑할 줄 알고 더 행복해질 수 있다. 그렇기에 나이가 들수록 더 강해지는 세상의 모진 풍파를 겪어내고, 궁극에는 성숙한 삶과 마음의 평안을 얻으리란 희망을 이어간다. 군대를 갔다 와야, 결혼은 해야, 부모가 되어야 진짜 어른이 된다고 하지만, 매해 붙는 마음의 근육 또한 나잇살만큼이나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증거다.

 신년 계획을 세운 것이 엊그제 일 같은데, 눈 깜짝할 사이 한 해의 마지막 12월이 돌아왔다. 작심삼일로 끝난 계획들이 태반일 테지만, 한 해를 잘 마무리해야 얻을 수 있는 것이 다가올 새해에 대한 설렘이 아닐까. 첫 단추는 2019년의 삶을 되돌아보는 일이다. 열과 성의를 다했을 SNS 속의 기록, 휴대폰 사진앨범, 메모, 일기, 책상 달력을 들춰보면 올 한해의 희노애락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갈 테다. 한해를 돌아본 후에는 첫째, 스스로 대견한 일, 좋은 방향으로 성장하고 변화한 것에 대해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말자. 성장과 변화의 기준은 타인과의 비교가 아닌 오롯이 나 자신이어야 한다. 둘째, 한 해 동안 고마웠던 사람들을 떠올리며 감사의 마음을 표현해보자. 표현하지 않는 마음은 절대 전해지지 않는다. 셋째, 후회되는 일, 아쉬웠던 선택, 부끄러웠던 행동들을 적어보며 ‘셀프디스(자기비판)’의 시간을 갖자. 종이 위에 꾹꾹 눌러쓰며 한 번 더 기억하고 반성하지 않으면 실수는 되풀이된다.

 슬프고 힘들었던 일, 나에게 상처 준 사람, 잊고 싶은 실수들을 겪어내는 사이 우리 마음에는 또 한 겹의 근육이 쌓였으리라. 기말고사, 종강파티, 송년회로 바쁜 12월이지만 한 해를 톺아보는 의식을 치러보자. 올 한해를 잘 마무리하는 것은 행복 가득하길 소망하는 2020년 새해에 대한 마중물이 될 것이다.

성지연 언론정보학과 겸임교수

인하대학신문  inha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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