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문화
[문화를 즐기다_문화인] 박경리

 1926년, 경남 통영에 한 아이가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새 살림을 차리려고 집을 떠났고 학창시절을 홀어머니와 함께 보냈다. 결혼 후에는 대학을 졸업하고 교사 생활을 하며 잠시 평온한 시기를 보냈으나 한국전쟁이 발발해 배우자는 물론 세살 배기 아들마저 떠나보냈다.

 평탄하지 않은 삶 속에서도 그는 독서와 습작 활동에 집중하며 자신의 분노를 승화시켰다. 그의 본명은 ‘박금이’, 20세기 한국문학의 기념비적 작품 ‘토지’의 작가 ‘박경리’다.

 거친 삶을 살았음에도 그의 문체에는 담담함이 묻어난다. 감정을 끌어올리기 위한 노골적 장치나 공감을 이끌어내려는 과장된 서술이 없음에도 독자의 깊은 감정이입을 이끌어 낸다. 그가 서술하는 인물의 시련을 읽고 있으면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생각마저 주저하게 된다

 그렇다고 박경리가 비관론자라거나 만물을 부정적으로만 보는 사람은 아니다. 그의 배경 묘사를 보면 어떻게 독자가 자연과 만물을 사랑하게 할지 고민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논의 새, 뗏목이 떠다니는 강, 하인이 들고 가는 물동이까지 사물 묘사를 읽고 있으면 마음이 따뜻해져 어떤 슬픈 이야기가 전개돼도 이겨낼 용기가 생긴다.

 인물 묘사 또한 주인공부터 이름이 주어지지 않은 이까지 어떤 차림, 행동, 성격을 하고 있는지 미리 상정하고 적은 것처럼 공들였다. 어떤 인물은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서술에 정성을 담았다.

 박경리의 글은 비극적인 내용이라도 읽을 용기가 생긴다. 내용과 별개로 글에 담긴 온기가 문장에서 느껴지기 때문이다. ‘정말 가슴 아프고 상상하기 싫은 일들이 쓰여있겠지만 결국 담담하게 넘어갈 수 있다’고 독려해주는 것 같은 따뜻함이 항상 함께 한다.

 토지 서문에서 그는 ‘할 말을 줄이고 또 줄여야 하는 인내심에는 억압적 속성이 있으며, 부정적 성향에다 모순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늘 현실도피를 꿈꾸고 있기 때문인데 내게는 어떤 것도 합리화할 용기가 없다. 솔직히 말해서 그 동안 나는 토지로부터 도망치고 있었다. 생각하는 것도 말하는 것도 지겨웠고 부담스런 짐을 부리고 싶었다’고 감상을 적었다.

 그는 자신이 사랑하는 전통적 가치를 그리워했고 글 쓰는 것을 포함한 속물적인 것에 때론 근원적인 회의감을 느꼈던 조금은 여린 인물이었다.

 그는 스스로에 대해 ‘나의 출생은 불합리했다’고 평했다. 불합리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사랑하는남편과 아들을 고통스럽게 떠나 보냈다. 토지 연재 중 암에 걸려 생사의 고비를 넘겼었고 사위가 사형선고를 받는 등 온갖 시련 속에서도 글을 놓지 않았다.

 그는 글에 자연과 전통의 온기를 올곧게 담아냈고 우리의 근현대사를 민중의 입장에서 다룬 문제작을 25년 동안 연재했다. 시련과 투쟁하며 자신의 온기를 글에 온전히 녹여낸 그의 삶은 그가 쓴 이야기만큼 극적이었다.

 모진 시련을 다 이겨낸 그도 창작의 동반자였던 담배를 끝내 놓지 못했고 2008년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그가 남긴 글은 지금도 겪어보지 못한 것에 대한 그리움과 온기를 느끼게 한다.

김범성 기자  12161416@inha.edu

<저작권자 © 인하프레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범성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