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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인민과 중국의 동상이몽

중국몽의 탄생

 2012년 11월 중국공산당 총서기에 오른 시진핑은 ‘부흥의 길’이란 전시회에서 이뤄진 연설 중 처음 ‘중국몽(中國夢)’을 언급했다.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하는 것이 근대 이래 중화민족의 가장 큰 꿈’이라는 골자의 연설이었다. 단발성 표현으로 보였던 중국몽은 시진핑 체제가 내세운 중요 의제가 됐다. 시진핑은 중국몽을 필두로 중국이 근대 이전 대국으로 군림하며 아시아 전역에 영향력을 행사하던 모습을 되찾아 미국과 대등한 초강대국으로 부상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중국몽의 목표는

 중국몽은 ‘두 개의 백 년’이라는 구체적인 계획을 가지고 있다. 첫째는 공산당 창건 100주년인 2021년 전까지 모든 인민이 의식주 문제에서 해결된 ‘소강사회(小康社會)’에 진입하는 것이다. 인민 간 빈부격차를 줄이고 사회 보장 제도가 충분히 정비돼 빈곤 인구가 없는 사회, 사회주의 현대화를 어느 정도 완료한 사회를 뜻한다.

 둘째는 건국 100주년인 2050년 전까지 ‘국가부강, 민족 진흥, 인민 행복’을 달성해 사회주의 현대화를 완성한 부국, ‘대동사회(大同社會)’를 완성하는 것이다. 단순히 이 3가지 목표에만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닌 민주, 법치 같은 국내 사회 질서뿐만 아니라 국제적 영향력 등 전 분야에서 선진화된 국가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중국몽은 누구의 꿈인가

 두 개의 백 년에서 대동사회 계획 중 국가부강과 인민행복은 정부가 당연히 추구해야 할 가치지만 ‘민족 진흥’에 대해선 이질감이 든다. 중국몽은 ‘중화민족’의 꿈이므로 필연적으로 모든 인민의 꿈이어야 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시진핑은 중국몽을 처음 언급한 지 얼마 안 된 2013년 연설에서 “중국의 꿈과 중국 인민 개개인의 꿈은 결코 다르지 않다. 인민 모두가 재능을 발휘해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발언했다. 모든 인민의 꿈과 중국의 꿈이 같아야 한다는 의지를 피력한 연설이었다. 현재 중국 인구는 14억에 달한다. 그렇다면 국가와 같은 꿈을 꾸지 않는 인민에 대해 중국은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는지 의문이 생긴다.

 

인민의 꿈이 과연 중국의 꿈인가

 2018년 6월경부터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세간의 의혹을 불러일으킨 중화권 유명 배우 판빙빙은 그해 10월경 SNS에 사과문을 게재했다. ‘국가의 이익, 사회의 이익과 개인의 이익 관계에 대해 정확히 다루지 못해 탈세 문제가 발생하게 됐습니다’라는 내용을 담은 사과문이었다. 그 해 10월 3일, 중국 공안은 판빙빙을 탈세 혐의로 4개월동안 구속 조사했음을 발표했다. 지명도 높은 연예인을 언론 보도와 구속 사유 사전 공표 없이 4개월동안 구속한 것이다.

 일반인이나 지명도가 낮은 인물이 범죄를 저지르거나 국가와 다른 생각을 가졌을 때 겪게 되는 상황은 더 암울하다. 중국 국적 첫 인터폴 총재였던 멍훙웨이는 작년 9월 임기 도중 연락이 두절돼 인터폴 내에서 혼란을 빚었다. 이후 인터폴이 중국 정부에 공식적인 해명을 요구하자 그때서야 공안은 멍훙웨이를 부패 혐의로 구속하고 있으며 그가 인터폴 총재직을 사임한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멍훙웨이의 부인은 프랑스 라디오 방송 인터뷰에서 “그들이 우리를 납치하려는 것 같았다. 여러 번 괴상한 전화가 오고 주차해놓은 차가 부서졌으며 계속 우리를 미행했다”고 주장했다. 홍콩과 대만 언론은 본 사건이 시진핑 지도부 파벌이 아닌 멍훙웨이를 제거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멍훙웨이는 기소된 이후 재판 결과 보도 외엔 소식을 들을 수 없으며 공안에 의해 여전히 구속된 상태다.

 인권변호사 류샤오보는 1989년 발생한 ‘천안문 항쟁’에 참여하기 위해 미국에서 귀국한 이후 폭력에 반대하며 중국 내 인권보호운동을 전개했다. 민주화 지도자들이 해외로 망명하는 와중에도 중국에서 활동을 이어간 그는 일당 독재 비판과 함께 집회•결사의 자유, 언론의 자유를 주장하며 정치•사법개혁을 요구했으나 국가전복을 꾀했다는 혐의로 11년 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2010년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됐지만 구금 중이라 시상식에 참석하지 못했고 투옥 중 위암에 걸렸음에도 제대로 치료받지 못한 채 2017년 숨을 거뒀다.

 국제엠네스티는 2016년 ‘중국 정부가 인권변호사와 활동가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을 중단해야 한다’고 공식 입장을 냈다. 로젠 라이프 국제엠네스티 동아시아 조사국장은 ‘중국 인민의 인권을 옹호한 운동가에 대해 제도적 공격을 가하는 것을 중단해야 한다’면서 1년 사이 최소 248명 이상의 인권운동가들이 공안의 표적이 됐다고 발표했다.

 이어 ‘공안은 법제화된 구금 방식을 벗어나 용의자를 장기간 구금할 수 있어 고문과 부당대우 위험이 매우 크다’고 설명하면서 ‘중국 정부는 법치주의를 수호한다고 주장하지만, 법치주의를 옹호하려 한 변호사들에게 종신형을 내리는 것은 개탄할 일’이라고 말했다.

 중국이 제시한 2050년의 사회상, 대동사회는 물질적 풍요와 더불어 민주, 법치도 함께 달성해야 한다. 그럼에도 개인의 욕심이든 사회 변혁에 대한 열망이든 다른 꿈을 가진 인민에겐 법치가 적용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홍콩의 꿈은 중국이 좌지우지할 없었다

 중국은 1997년 영국에게 홍콩을 양도받았다. 홍콩의 공산화 가능성 때문에 양도하기를 주저하던 영국을 설득해낸 것은 중국의 ‘일국양제’제안이었다. ‘한 국가 안에서 자본주의, 사회주의가 공존하는 제도를 운영해 홍콩의 자율성을 일부 인정하고 기존 사회체제를 존중하겠다’는 것이 일국양제의 골자다.

 영국과 중국이 맺은 홍콩 양도 조약은 홍콩의 자율적인 법 집행을 인정했다. 따라서 중국은 홍콩에 공안을 투입해 공권력을 행사할 수 없고 범죄자를 중국으로 이송시킬 수 없다. 홍콩에게 있어 자율적 공권력 행사는 자치를 인정받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중국이 범죄인을 홍콩에서 본토로 이송할 수 있게 되면 중국 정부에 반대하는 인사들을 자의적으로 체포할 수 있게 되며 표현∙사상의 자유를 비롯해 홍콩의 민주주의와 일국양제의 약속이 무너질 수 있다. 즉 홍콩이 법 집행 절차에서 중국의 간섭을 받게 된다는 것은 홍콩의 중국화, 공산화를 의미한다.

 친중파로 분류되는 캐리람 홍콩 행정장관이 홍콩 범죄인을 중국으로 인도할 수 있게 하는 ‘범죄인 인도 법안’을 입법하기로 결정하면서 촉발된 시위가 6월부터 시작돼 법안 철회가 발표된 9월까지 계속됐다. 대규모 집회가 이어지던 시기엔 집회 추산 200만 명이 넘는 시위대가 모였으며 홍콩 인구를 고려했을 때 홍콩 시민 중 30%가 시위에 참여한 것이었다. 결국 9월 4일 행정장관은 범죄인 인도 법안의 철회를 공식 발표했다. 그럼에도 홍콩시민들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고 시위는 민주화운동으로 확산되는 양상이다.

 현재 확산되는 민주화 시위는 중국에 대한 홍콩시민들의 반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캐리람과 같은 중국공산당의 꼭두각시가 행정장관으로 임명된다면 홍콩의 민주주의는 무너진다는 위기감이 시민들 사이에 팽배하다. 또한 홍콩시민들은 중국의 꿈과 전혀 다른 꿈을 가지고 있음을 강하게 피력하고 있다.

 9월 30일 시진핑은 공식석상에서 중국몽을 재차 언급했다. 시진핑은 연설에서 “중화민족은 두 개의 백년 실현과 중국몽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며 “홍콩과 마카오는 반드시 조국과 함께 발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홍콩, 마카오, 대만에 관한 발언에서 “조국의 완전한 통일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발표했다. 시위대는 시진핑의 발언이 영국과 중국의 조약이 끝나는 2047년, 홍콩을 완전 병합하겠다는 의중을 반영했다고 판단했다. 결국 이 발언은 홍콩 민주화 운동의 새로운 기폭제가 됐다.

 이달 홍콩 시위대가 경찰의 총에 맞는 일이 발생하면서 시위대와 경찰의 무력 충돌이 격화되고 있다. 캐리람 행정장관이 계엄령에 준하는 긴급조치를 발동한다는 소식에 맞춰 지난 4일 시위대는 임시정부 설립을 선언했다. 지난 6일엔 홍콩 주둔 중국군과 시위대가 최초로 접촉했고 중국군이 시위대에 경고 메시지를 보낸 것이 확인되면서 제 2의 천안문 항쟁이 일어나는 것은 아닌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무력 진압 위협에도 홍콩의 시민 대다수가 중화민족이 되는 것에 극렬하게 반대하며 민주화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시진핑은 홍콩, 대만, 마카오 인민 모두가 중국몽을 위해 노력하길 바라고 있으나 홍콩의 상황을 보고 대만, 마카오 인민들이 중화민족에 찬동해줄진 미지수다.

 

중국몽은 어떻게 것인가

 위 사례들로 미뤄볼 때 중국은 인민이 중국과 다른 꿈을 꾸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려는 것으로 보인다.

 2016년 국제 엠네스티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중국은 2014년부터 2016년 사이 최소 931명을 처형했다. 2016년 중국을 제외한 전 세계의 사형 집행 건수가 1,032건인 것을 고려하면 적은 수치가 아니다. 또한 중국은 사형 관련 정보를 국가기밀로 간주하며 사형 판결을 내렸을 때 공판 기록을 공개하지 않는다.

 개인의 인권이 보장되지 않을 때 국민이 국가에 반하는 의사 표현을 한다면 치명적인 위협을 감수해야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는 자연스럽게 표현•사상의 자유를 억압하는 상황으로 이어진다. 국가가 경제에 과도하게 간섭할 경우 시장은 어려운 상황에 직면한다. 중국몽의 일환으로 인민의 사상에 지나치게 간섭하는 것 또한 같은 맥락에서 실패를 초래할 것이다.

 중국이 개방 경제를 향해 조금씩 편입되는 움직임을 보였던 1900년대 말 이후, 중국은 자유 진영에 점진적으로 편입될 것이라는 낙관론도 있었다. 하지만 2010년대 시진핑 주석 집권 이후 중국몽 통치가 시작되며 중국과 다른 꿈을 꾼 인민들은 다시금 어려운 상황에 빠졌다.

 시진핑의 중국몽 언급 후 8년, 홍콩 시위와 미∙중 무역 분쟁이 겹치며 중국몽은 등장 이후 가장 위험한 시험대에 섰다. 이 시점이 민주와 법치에 무관심했던 중국몽의 마지막이 될지, 변화를 꾀해 새로운 의제를 만들어나갈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김범성 기자  12161416@inha.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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