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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담론] 공공기관의 언어 사대주의, 이대로 괜찮은가

 ‘오픈 유어 스토리지’, ‘스타트업 큐브 앤 메이커 스페이스’, ‘피스 앤 라이프 페스티벌’, ‘아티언스 대전’. 언뜻 봐서는 이해조차 잘 되지 않는 이 명칭들은 각각 2019 서울 사진 축제, 강원대 창업 지원 공간, 강원도 접경지역 문화 축제, 대전시 지역 예술가 축제를 가리키는 말로 모두 우리나라 공공기관에서 주관하는 행사의 이름이다.

 한글날 573돌을 기념하기 위해 네이버는 ‘한글한글 아름답게’라는 캠페인을 진행해 손글씨 공모전을 개최했다. 또 인기 뷰티 플랫폼 스타일 쉐어는 국내 브랜드와 협업해 한글 상품을 출시했다. 이처럼 민간 기업에서는 우리말 사용을 위한 노력들을 하고 있는데도 공공기관은 외국어를 지나치게 사용해 지적 받는 상황이다. 대부분의 공공기관이 외국어를 오남용하는 현 실태 속에 ‘공공기관이 오히려 외국어 사용을 조장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러한 지나친 외국어 사용은 우리말을 오염시킬 뿐 아니라 단어의 의미 자체에도 혼동을 줘 시민들이 행사에 대해 이해하는 것도 방해한다. 우리말로 표현해도 될 것을 굳이 영어를 사용해 표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외국어를 사용하는 이유가 막연히 멋있어 보이고 의미 전달이 잘 될 것 같아서라고 말한다면 이것은 명백한 문화 사대주의다. 국어 기본법 제 4조에는 ‘국가와 지방단체는 국어의 발전과 보전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제 14조에는 ‘공문서를 어문규범에 맞추어 한글로 작성해야 한다’고 명시돼있다. 다양한 정책과 행사를 통해 시민들에게 직간접적 영향을 미치는 공공기관은 더욱 우리말 사용에 앞장서야 하고 잘못된 표현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만연한 공공기관의 외국어 사용은 문화 사대주의를 조장할 우려가 있다.

 국립국어원은 공공 언어 통합 지원을 통해 올바른 우리말 사용을 장려하고 있다. 또 기관마다 국어 책임관을 임명해 대내외적 공문서에 관한 책임을 지게 하고 있다. 국립국어원에 접수되는 외국어 오남용 사례는 매년 100여건에 달한다. 하지만 우리말 사용을 강제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부족하고, 전문지식을 가진 공무원이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실효성이 떨어지는 상황이다. 우리말을 사용하도록 강제할 수단이 필요하다는 것이 얼마나 모순적인 일인가.

 우리말 대신 영어를 사용하면 뭔가 더 고급스러워 보이고 세련돼 보이는 것은 모두 우리의 잘못된 인식 때문이다. 우리 머릿속에 깊이 박힌 문화 및 언어 사대주의가 지금의 ‘우리말 소외’를 낳은 것이다. 외국어 사용을 지양하도록 하는 제도도 필요하지만 그보다 우선돼야 하는 것이 우리의 인식 개선이다. 그릇된 문화 사대주의를 버리고 한글과 한국어에 대한 자부심과 긍정적인 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한 실질적인 방안이 필요하다.

 세계는 한글의 위상을 높이 평가하고 있지만, 정작 국내에서는 한글이 홀대 받는 것이 현실이다. 한글의 가치를 높일 권리와 책임 모두 우리에게 있다. 지나친 외국어 사용을 지양하고 한글에 대한 주인의식을 가져야 한다.

박정인 기자  12192845@inha.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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