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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를 즐기다_책] 아홉 살 인생

 호기심 많고 꿈 많을 나이, 세상을 알기엔 어리지만 한 편으로는 세상을 알 수 있을 나이, 바로 아홉 살. <아홉 살 인생>은 주인공 백여민이 아홉 살 한 해 동안 보고 느꼈던 일들을 그린 소설이다. 여민이는 가족들과 함께 부산에서 서울로 상경해 셋방살이를 전전하다 겨우 달동네 꼭대기에 정착했다. 집은 비록 여민의 환상 속과 달리 너무 초라했지만 그게 뭐 어떠랴. 눈칫밥 먹어가며 주눅 들었던 과거와 작별하고 비로소 ‘내 것’이 생긴 것만으로도 위안이 된다. 꿈과 현실은 언제나 어긋나는 때가 많기 때문에 실망할 필요가 없다. 이것이 아홉 살 여민이가 달동네로 와 처음 느낀 세상이다.

 산동네에 살며 여민이는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된다. 거짓말을 일삼지만 부모를 여의고 누나와 함께 사는 기종이, 골방에 갇혀 꿈만 꾸는 골방 철학자와 자식이 있는 지도 모른 채 죽음을 맞이한 토굴할매. 이들은 어려웠던 지난 60~70년대 시절에 가난한 이들 중에서도 더 찢어지게 가난했던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보여준다. 그리고 ‘가난’을 먹먹하게 다가오게 만든다.

골방 철학자는 욕망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다 결국 자살을 택하고 토굴할매 역시 쓸쓸한 죽음을 맞는다. 토굴 할매의 죽음 이후 여민이는 아버지와 이런 대화를 나눈다. “죽음이나 이별이 슬픈 까닭은 우리가 그 사람에게 더 이상 아무것도 해줄 수 없기 때문이야. 잘해 주었든 못 해주었든, 한 번 떠나 버린 사람한테는 아무것도 해줄 수 없지.” ‘죽음’이 무엇인지 여민이는 아홉 살 나이에 알아버린 것이다.

 기껏 적응한 동네에서 벗어난 여민이가 이사 후 처음 만난 친구가 바로 기종이다. 기종이와 첫 만남은 그리 좋지 않았다. 자신의 어머니를 애꾸눈이라 놀리는 그를 흠씬 패 줬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종이의 집안 사정을 알고 나서 직접 화해의 손길을 건네고 그렇게 그 둘은 친구가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여민이가 전국 국민학교 최우수 그림상을 받게 되고 이 상 하나로 학급 인기 스타 반열에 오른다. 이것을 계기로 기종이와 사이가 멀어진 여민이는 혼자 생각하는 시간을 가진다. 학교를 하루 빼먹고 자신의 아지트인 숲으로 들어가 홀로 지내는 상상을 해본다. 그리고는 세상이 아무리 힘들어도 홀로 산다는 것은 너무나도 어리석은 생활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어떤 슬픔과 고통도 피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우리가 회피하려 할 때 도리어 커진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이것이 아홉 살 소년이 세상 속에서 느낀 교훈이다.

 저자는 아홉이 정말 묘한 숫자라고 말한다. ‘아홉은 쌓아 놓았기에 넉넉하고, 하나밖에 남지 않았기에 헛헛하다.’ 그리고 서양의 한 작가는 이런 말을 했다. “지나치게 행복했던 사람이 아니라면, 아홉 살은 세상을 느낄 만한 나이이다.”라고. 어른이 되며 오히려 작은 일에 연연하고 실망하지는 않았을까. 고통은 아프니 더 피하려 하지는 않았을까. 어쩌면 이 책은 아홉 살 여민이를 위한 것이 아닌 아홉 살보다 나이를 더 먹은, 책을 읽는 어른들을 위한 교훈일지도 모른다.

엄현수 기자  12172975@inh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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