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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무너지는 산업의 현장, ‘청계천밸리’상인들의 반대 뒤로한 채 강행되는 재개발 사업…쫓겨나는 원주민들
청계천밸리에 인접한 을지로3가역 3번출구. 을지로 골목으로 향하는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서울의 중심엔 청계천 물길을 따라 미국의 실리콘밸리 부럽지 않은 ‘청계천밸리’가 있다. 종로 1가부터 시작해 5가, 청계 1가부터 8가, 을지로, 동대문에 이르는 거대한 산업단지가 띠를 이루고 있다. 의류산업부터 제조산업, 인쇄산업 등 오랜 한국 산업의 역사가 이곳에 뿌리내리고 있다. 상인들은 전국의 옷 중 동대문을 거치지 않은 곳이 없고, 을지로를 거치지 않은 제조품이 없다고 말할 정도다. 그 역사를 느끼기 위해 청계천을 따라을지로를 직접 걸어봤다.

 

을지로 골목에서 즐겁게 맥주를 즐기고 있는 사람들. 위에 걸린 재개발 결사반대 현수막과 대비되는 모습이다.

떠오르는 힙스터들의 성지, 을지로

 최근 들어 이태원의 ‘경리단길’을 모티브로 한 서울의 여러 작은 골목들이 생겨났다. 망원동의 ‘망리단길’, ‘익선동 한옥마을’ 등이 대표적인 예다. 을지로에는 약 2년 전부터 아기자기한 카페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서울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임차료가 저렴한 인쇄소 골목의 허름한 건물 꼭대기로 가난한 예술가들이 이주해왔다.

 

 실제로 을지로에 방문해보니 이러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굽이굽이 좁은 골목의 인쇄소와 제조사 사이 어울리지 않는 카페가 곳곳에 숨어있었다. 오래된 서울 한복판에 예술과 예쁜 카페의 조화라, 요즘 젊은 사람들이 열광할 만하다. 실제로 스마트폰으로 감성 카페를 찾아 길을 찾는 젊은이들이 골목 여기저기에 있었다. 그러나 마냥 감성적으로 보이는 을지로의 소박한 화려함 뒤에는 숨겨져 있는 아픔이 있다.

 

한 때는 2차산업의 중심이었던 거리. 지금은 인적 없이 휑하다.

을지로 재개발, 한 장소 두 모습

 대한민국의 다양한 산업의 역사 을지로. 을지로는 제조업, 인쇄업 등의 다양한 2차산업이 입지해 있는 곳이다. 그러나 2018년 연말부터 급물살을 타기 시작한 세운상가 주변 지역의 재개발을 두고 철거를 추진하는 시행사와 재개발을 반대하는 측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을지로 재개발 사업을 요약하자면 현재 세운상가군 양 옆 블록에 자리 잡고 있는 도심형 경공업, 상업 지구를 철거하고 그 자리에 주거용 아파트 단지를 조성하겠다는 계획이다. ‘세운상가’라 통틀어 부르는 상가군은 종묘 앞부터 충무로역까지 1km나 이어지므로, 재개발 대상 지역의 면적이 무려 44만㎡에 이른다. 이 거대한 영역의 재개발 사업의 토지만큼 쫓겨난 원주민의 수도 많다. 하나의 유기체인 인간의 허리를 자르듯, 자본주의의 욕심은 청계천밸리의 허리를 무자비하게 끊어 놓았다.

 

 현장을 직접 보면 그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있다. 이전에 길게 늘어섰던 산업단지는 사라져버리고 아파트를 짓기 위한 공사판이 곳곳에 펼쳐져 있다. 공사판 벽면에는 상가가 다른 곳으로 이주했다는 안내문이 여기저기 붙어있다. 활발한 산업의 중심이었던 곳을 밀어버리고 남은 허허벌판은 싸늘한 시체처럼 차가워 보였다. 을지로 거리의 상점 중 관광 서비스로 이용할 수 있는 유명 음식점을 제외하곤 전부 허물어버렸다.

 

 을지로 거리, 한적한 골목들을 조금만 지나보면 언제 그렇게 조용했냐는 듯 발디딜 틈도 없이 인파로 가득 찬 거리가 등장한다. 한 발자국만 뗐을 뿐인데 180도 다른 풍경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재개발을 중단하라는 현수막 아래 셀 수 없을 정도의 많은 인파가 맥주 한 잔을 즐기며 일과 후의 피로를 달래고 있었다. 아무도 을지로 거리에 나앉아 울부짖고 있는 이들의 서러움에는 관심이 없어 보였다.

 

 길 건너에선 상인들의 울음과 절규가, 그 반대편에서는 서울 시민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숨겨지는 상인들의 눈물

 청계천 옆 을지로 거리를 걷다 보면 주변 경관과 이질감이 드는 천막 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 이는 ‘청계천 생존권사수 비상대책위원회’가 머물고 있는 곳이다. 이들은 재개발로 인해 밀려난 을지로의 상인들이다. 직접 방문해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재개발 사업으로 밀려난 후 저항하기 시작한지 6개월 이상이 지나 많이 지친 모습이었다.

 그들은 을지로에 카페들이 들어서는 것을 전형적인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재개발사업으로 인해 을지로는 활성화되고 외부인과 돈을 유입해 임대료는 자동적으로 상승한다. 이로 인해 원주민들은 어쩔 수 없이 떠나게 된다. 땅을 뺏겨서 떠나고, 자본주의의 욕심에 삶의 터전을 잃는다.

 

 이어 서울시나 국가에 특별하게 바라는 것이 없다고 말했다. 그저 살아가는 주민들의 의견을 무시하지 않고 쫓아내지 않는 것, 원래 살던 대로 살게 내버려두는 것이 바라는 것의 전부라고 했다. 이들이 흘리는 눈물은 사람들의 무관심과 자본주의의 이기심 속에 숨겨지고 있다.

 

“청계천 재개발! 한 번 속지 두 번 속지 않는다!!”

사라지는 서울 산업의 역사

 60여년전 한 두 사람이 모여들어 만들어지기 시작됐던 청계천밸리. 을지로를 바라보며 필자는 미국의 자동차 도시 ‘디트로이트’가 떠올랐다. 디트로이트는 미국 제조업의 흥망성쇠를 여과없이 보여주는데, 이는 을지로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다. 현재 디트로이트는 위기를 모면하고 새로운 산업이 들어섰지만 이 점에서는 지금 을지로의 양상과 다르다.

 

 청계천 생존권사수 비대위는 을지로가 ‘유령도시’가 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서울에 불어오는 ‘무슨 골목’과 ‘감성’이라는 유행은 금방 식기 마련이다.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으로 물밀 듯 들어왔던 외부인은 유행이 지나면 떠나버릴 것이 분명하다. 디트로이트는 다른 제조산업으로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지만 이미 을지로에는 빽빽하게 아파트가 들어설 준비중에 있다. 밀려난 상인들이 남기고 간 자리는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포기하지 않고 그들을 쫓아내는 세력에 저항하려는 의지를 표명하고있다. 이어서 많은 사람들, 특히 젊은 사람들이 소외된 채로 외로운 싸움을 하는 이들에게 많은 관심을 줄 것을 당부했다.

 

 눈 앞의 달콤함 만을 좇다 뒤를 돌아보면 결국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텅 빈 거리, 무너진 산업 앞에서 땅을 치고 후회해봤자 때는 이미 늦었을 터. 지금이라도 외로이 맞서고 있는 이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을지로를 나서는 발걸음은 참 쓸쓸하고, 씁쓸했다.

 

엄현수 기자  12172975@inh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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