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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담론] ‘내일’을 죽이는 오늘의 무관심

“정치에 참여하기를 거부함으로써 치러야 하는 대가 중 하나는 결국 자신보다 열등한 사람들에 의해 지배당하는 것이다” 플라톤은 저서 ‘공화국’에 다음과 같은 문장을 남겼다. 그 책은 시민이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에 적극 참여해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지키지 않는다면 혹독한 결과에 직면하게 될 것을 경고한다. 고대 플라톤은 이 시대의 청년들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어차피 우리가 뽑는다고 달라지지 않아요”, “그 시간에 공부하는 게 살아남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지난 총선 당시 언론에 소개된 투표의사에 대한 한 청년의 답이다. 취업과 구직의 공포로 얼어붙은 청춘들의 마음처럼 투표에 대한 청년의 시선도 차가운듯하다.

현실적인 많은 문제에 당면해 있는 청년들이 정치적으로도 소외당한다고 느끼는 것은 그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정당이나 사람에게 투표하지 않았기 때문 아닐까. 당장 오늘날 우리의 정치 참여에 대한 태도부터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2016년 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20대·30대 투표율은 49.4%였다. 60세 이상 투표율이 70.6%인 점을 두고 봤을 때 미진한 수치다. 저조한 투표율로는 청년의 의사를 반영하기 어렵다. 청년 실업 아르바이트환경 등의 청년층 요구가 괄목할만한 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높은 투표율이 그 바탕이 돼야 한다. 청년층은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고 어두운 단면을 조명해 의미 있는 변화를 이끌어 내기도 한다.

최근 역대 지방선거에서 20대·30대 전반의 투표율이 다른 연령대에 비해 꾸준히 증가한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상대적으로 지역이나 이념적 투표 성향이 약한 젊은 유권자들을 위해 일자리 주거복지 등의 정책을 각 당이 앞다퉈 수립했다. 이처럼 지속해서 젊은 유권자들이 관심을 둔다면 청년의 목소리가 더 울리지 않을까.

관심과 참여 없는 비난은 우리를 아프게만 할 뿐이다. 개미가 모여드는 계곡의 물은 직접 손으로 퍼 담아야 맛을 볼 수 있으며 높은 산봉우리에 핀 꽃향기는 볼을 가까이 대야만 비로소 그 향을 맡을 수 있다. 우리가 꿈꾸는 계곡과 산봉우리로 가려면 더 전진해야 하지 않을까. 당장 내일과 ‘나의 일’을 위해서라도 투표소로 발걸음을 떼는 일은 언젠가 반드시 빛날 것이다.

박준서 기자  12182886@inh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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