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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를 즐기다_책] 바깥은 여름

“안에선 하얀 눈이 흩날리는데, 구 바깥은 온통 여름일 누군가의 시차를 상상했다” 책 속의 한 구절이다. 풍경이, 계절이 우리만 빼고 모두 자전하듯 시간은 끊임없이 흐르는데 어느 한순간에 붙들린 채 제자리에 멈춘 기분이라면 어떨까. 그때 우리는 어디로 갈 수 있을까. 갈 곳 없는 얼굴로 어딘가를 돌아보고 있지는 않을까.

「바깥은 여름」은 ‘죽음’과 무언가의 ‘상실’ 이후를 다룬 김애란 작가의 단편 소설집이다. 앞서 말한 한순간에 붙들린 채 제자리에 멈춘 사람들은 상실을 경험한 사람들이다. 첫 번째 단편 ‘입동’은 아이를 잃은 젊은 부부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부부는 후진하던 어린이집 차량에 아들을 잃었다. 아이를 잃은 슬픔에 부부는 삶을 살아갈 의욕을 잃는다. 이들을 더욱 괴롭게 하는 것은 주변의 시선이다. 이웃들의 수군거림과 몰이해는 부부를 더욱 옥죈다.

두 번째 단편 ‘노찬성과 에반’은 어린아이 노찬성과 반려견 에반의 이별, 세 번째 단편 ‘건너편’은 오랜 시간 함께한 연인의 이별을 다룬다. 너무도 익숙하고 편해서 사랑했던 것을 잃었을 때의 우리는 어떤가. 너무 사랑하지만 결국에는 이별해야 하는 순간을 맞이할 때 우리는 어떤 표정을 지을 수 있을까. 이 두 단편의 주인공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과도 너무 닮아 있다. 이별을 맞이했을 때 우리가 어디로 나아가야 할 지 쉽게 짐작할 수 없음은 주인공들과 마찬가지다.

‘가리는 손’의 주인공인 열다섯살 혼혈아 재이에게는 “시간이 매일 뺨을 때리고 지나가는 기분이었을 것”이라고 엄마는 짐작한다. “엄만 한국인이라 몰라”라고 말하는 아이에게 엄마는 “너도 한국인이야”라고 말해주지만 혼혈아를 대하는 우리 사회의 편견과 멸시를 받은 아이는 자신이 한국인이라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혼혈에 대한 차별만이 이 단편의 주제는 아니다. 재이는 어느 날 중학생들이 노인을 폭행하고 숨지게 만드는 사건의 목격자가 된다. 여느 부모와 다름없이 엄마는 재이의 순진을 절대적으로 믿지만 소설 말미에서 자식에 대한 믿음이 흔들린다. 평생 사랑을 준 자식에게 믿음이 깨진 그 순간, 엄마는 그동안 재이에게 준 것이 무엇이었을지 큰 상실감에 빠졌을 것이다.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에서 주인공 명지는 사고로 남편 도경을 잃고 에든버러로 여행을 떠난다. 그의 남편은 바다에 빠진 아이를 구하려다 사고를 당했다. 여행을 갔음에도 그는 숙소에 틀어박혀 스마트폰 인공지능 음성 앱과 대화를 할 뿐이었다. 주위 사람들에게선 찾을 수 없던 예의를 갖춘 이 기계에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나요?’라는 질문을 던지자 기계는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라고 반문한다. 여행을 끝내고 돌아온 명지는 죽은 남편이 구하려 했던 학생의 누나에게서 편지 한 통을 받는다. “겁이 많은 지용이가 마지막에 움켜쥔 게 차가운 물이 아니라 권도경 선생님 손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마음이 조금 놓여요”라고. 이 편지로 명지는 남편의 선택을 이해해보려 한다.

이외에도 사라지는 언어가 읊는 마지막 시를 담은 ‘침묵의 미래’와 억울하게 범죄를 덮어쓰고 승진의 기회까지 박탈당하는 대학 강사의 이야기인 ‘풍경의 쓸모’도 죽음과 상실을 다룬다. 그 쓸쓸하고 외로운 풍경을 작가는 책 속에 덤덤하게 담았다.

이 소설집에서는 웃음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찾을 수 있다한 들 쓴웃음을 짓게 하거나 불길한 웃음 뿐이다.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모두 죽음 혹은 상실을 경험한다. 이를 “없던 일이 될 수도 없고, 잊을 수도 없는 일”이라 말한다. 이들은 모두 어디서 와 이제는 어디로 가고 싶은걸까. 이들처럼 어디로 갈지 모르는 막막한 상황을 껴안은 채 우리는 살아갈 것이고 그러한 순간은 우리에게 반드시 찾아올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어디로 갈 수 있을까.

 

엄현수 기자  12172975@inh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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