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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체육계 미투, 적폐 뿌리 뽑나

 

지난 1월 유명 빙상 스포츠 선수가 전 대표팀 코치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2014년부터 지난해 평창올림픽 직전까지 상습적으로 성폭행이 이뤄졌다는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이 폭로를 시작으로 다른 종목에서도 잇따라 ‘나도 당했다’는 미투운동(ME TOO)이 전개됐다. 전 유도선수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언론 인터뷰를 통해 고등학교 재학시절 때부터 고교 졸업 후까지 약 20차례 성폭행을 당했다는 사실을 밝혔다.

 

#ME TOO

유명 빙상선수가 고등학교 2학년 때인 2014년 여름부터 전 대표팀 코치로부터 4년 동안 태릉선수촌과 진천선수촌의 빙상장, 라커룸 등에서 강제 추행과 성폭행을 당했다고 고백했다. 이런 성폭력이 평창 올림픽이 열리기 2달 전까지, 즉 4년 동안 지속적으로 이뤄졌다는 내용이었다. 또한 범행을 저지를 때마다 주변에 알리지 못하도록 협박했다고 밝혔다.

 

빙상선수의 용기 있는 고백으로 다른 종목에서도 성폭행을 당했다는 폭로가 이어졌다. 전 유도선수는 “다른 선수의 폭로가 용기를 줬다”고 밝히며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코치가 4년간 20차례 성폭행했으며 협박까지 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3월 코치를 성폭행 혐의로 고소했지만 코치는 연인관계라고 주장하며 혐의를 부인했다. 유도선수는 “연인관계라는 주장은 거짓이며, 악몽 같은 시간이었다”고 호소했다. 이어 “유도는 자신의 전부였기 때문에 성폭행을 당했다는 사실을 폭로하면 유도 인생이 끝난다는 생각에 두려워 밝히지 못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50만원을 줄 테니 없었던 일로 하자는 코치의 어이없는 태도 때문에 고소를 진행하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 1월 21일 젊은빙상인연대(이하 빙상연대)는 빙상계 성폭력 피해자 5명을 추가로 폭로했다. 한 빙상선수는 10대 때 빙상장에서 강습을 받던 중 한 코치로부터 수차례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선수가 이를 거부하자 해당 코치는 폭언을 일삼으며 국가대표 선발과정에서 경기력에 지장을 줄 수 있는 행동을 의도적으로 했다고 밝혔다. 빙상연대는 특히 한국체대 전명규 교수가 가해자를 옹호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피해자들은 신원이 공개될 경우 빙상계를 좌지우지하는 ‘전명규 사단’으로부터 2차 가해를 당할까 두려움에 떨었다”고 전했다.

 

체육계 성폭행 적폐

체육계 성폭력은 10년 전에도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다. 당시 여자 프로농구팀 성폭력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오르며 가해자에게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정부와 대한체육회는 재발방지책을 마련했다. 2010년 12월에도 체육계는 성폭력 등의 문제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의 가이드라인을 받은 적이 있다. 이 가이드라인에는 엘리트 체육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하고 성폭력을 근절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적폐를 뿌리 뽑지도, 추가 피해를 막지도 못했다.

 

체육계 성폭력 사건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매우 유사한 패턴을 보인다. 감독이나 코치가 선수에게 폭력을 행사해 저항하기 힘든 심리적 상태에 빠지게 만들고 성폭행까지 저지른다. 참다못한 피해자가 폭로하면 가해자는 이 사실을 전면 부인한다. 가해자는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으며 피해자는 운동을 그만두게 된다.

 

체육계의 수직적인 권력관계도 성폭행 폭로를 방해하는 요인 중 하나이다. 피해사실을 밝히기가 힘들고, 범죄가 더 악질적인 경우가 많다. 지도자와 선수 간 엄격한 위계질서와 외부와 단절된 폐쇄적인 합숙시스템이 성범죄와 폭행 등 인권침해가 발생하는 근본 원인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체육계 성폭력 범죄를 근절하려면 가해자 처벌과 인권교육을 강화하는 것으로 끝내는 것이 아닌 체육 국가대표 관리체제의 개선 또한 필요하다. 더불어 2차 피해를 막기 위한 제도 도입을 고려해야 한다.

 

정부가 내놓은 대응책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는 빙상선수의 폭로가 있었던 다음날인 1월 9일 곧바로 근절 대책을 발표했다. 1주 뒤인 16일 후속 조치까지 발표하면서 신속한 대처에 나섰다. 특히 이번 후속 조치에는 강경책들이 포함됐다. 이미 11일 감사원에 공익 감사 청구를 마쳤고 국가인권위원회의 직접적인 조사 또한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체육계 비리 업무를 전담하는 독립기관 ‘스포츠윤리센터’의 설립을 지원하고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또한 민간 전문가를 포함한 특별 전담팀을 구성해 성폭력 관련 징계체제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하고 징계기준과 수위를 강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체육계에서 성폭력, 폭력을 근절시키기 위한 구체적인 조치는 내놓지 못했다는 지적이 계속된다. 기존에 발표한 대책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성폭력과 성폭행 근절을 위한 근본적인 처방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권위는 처음 체육계 성폭력 사건이 발생한 2008년 스포츠계 성폭력 전담팀을 구성해 2010년까지 성폭력을 조사했지만 상황은 개선되지 않았다.

 

2014년 대학 빙상팀 코치가 제자를 성폭행한 뒤 임신까지 시켜 대한체육회와 대한빙상경기연맹으로부터 영구제명 처리가 된 사건이 있었다. 하지만 영구제명을 당한 코치는 여전히 빙상계에서 지도자로 활동 중이다. 기관에서 영구제명된 코치들의 개인 레슨을 적발하기 쉽지 않다는 이유로 제대로 된 처벌이 가해지지 않았다.

 

하지만 앞으로는 성폭력 가해자의 복귀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전 대표팀 코치의 성폭행 관련 논란이 불거지자 문체부는 영구제명 대상이 되는 성폭력의 범위를 성폭행뿐만 아니라 성추행까지 넓히겠다고 밝혔다. 성폭력 관련 징계자의 국내외 체육 관련 단체 종사도 막을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또한 체육 단체 간 성폭력 징계정보 공유 시스템을 구축하고 국제올림픽위원회(IOC), 국가올림픽위원회(NOCs) 등과 협조체계를 만들어 해외 취업도 차단하겠다고 설명했다.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폭력과 성폭력 전력이 있는 코치들의 개인 레슨 부분도 확인해서 제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혼자가 아닙니다.

“여자선수들이 있기 때문에 룸살롱을 가지 않는다”라는 한 코치의 말은 체육계 성추행의 심각성은 물론 국민들에게 큰 분노를 일으켰다. 피해자는 ▲스트레스 장애 ▲우울증 ▲불안 장애 ▲수면 장애는 물론 정신적인 트라우마로 상처를 가지고 살아가지만 가해자는 자신의 혐의를 부인할 뿐 죄의식조차 없다.

 

가해자 개인의 윤리 부족 문제도 존재하지만 가해자들이 왜 성폭력을 저질렀는지 체육계의 구조적인 문제부터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형식적인 성폭력 교육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가해자의 처벌 수위를 강화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법적 조치와 피해자 보호를 위한 강력한 법안이 제정돼야 한다. 또한 2차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도 시급하다.

 

2차 가해 고통 막아야

대표적인 2차 피해로 체육계 미투가 확산되는 가운데 이를 보도하는 과정에서 가해자보다 피해자의 이름이 집중적으로 부각된 사례가 있다. 유도선수가 성폭행 피해를 폭로했을 때에도 그 선수의 SNS 사진을 무단으로 게재한 뒤 선정적인 제목을 부각했다. 성폭력 사건 2차 피해 방지를 위해 여성가족부와 한국기자협회가 지난 2014년 발표한 ‘성폭력·성희롱 사건보도 공감기준 및 실천요강’에 따르면 가장 먼저 주의사항으로 “피해자의 사생활 비밀과 자유를 보호하여야 한다”고 명시돼있다. 이어 “가해자의 범행 수법을 자세히 묘사하거나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보도를 하지 않아야 한다”는 항목과 “피해자의 신원이 노출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는 주의사항에도 불구하고 피해 선수들이 자신의 신분을 밝혔다는 이유로 이를 무시한 보도가 쏟아졌다.

 

이번 사건에서도 피해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문체부 소속 위원들은 체육계 폭력 근절을 위해 법안을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처벌을 강화하겠다는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 문제는 이 법안에 선수이름을 사용해 명명했다는 것이다. 대다수의 언론에서도 문제의식 없이 이를 사용했다. 가해자의 이름이 아닌 피해자의 이름이 계속 화제가 돼 피해자의 2차 피해에 일조했다.

 

마지막으로 체육계 미투 사건의 대다수 피해자 연령이 미성년자라는 문제점에 주목해야 한다. ▲교육 ▲보호 ▲감독 등 자신의 우월적 지위나 신뢰관계를 이용해 미성년자인 선수들을 폭행하고 성범죄를 규제하는 법안이 필요하다.

현행법에는 성년 코치와 미성년 선수 사이에 발생한 성범죄를 처벌할 수 있는 명확한 법 조항이 없다. 또한 만 13세 미만의 경우 미성년자의 합의가 있더라도 법적 처벌을 받지만 13세 이상일 경우 합의가 있었다고 상대측이 주장하면 처벌대상이 아니다. 이 경우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원한다면 강제성이 있었다는 사실을 피해자가 입증해야 한다.

체육계 미투 사건의 대다수 피해자 연령이 13세 이상~19세 미만에 집중돼 있어 가해자 처벌을 위해서 강제성에 대한 규제가 추가적으로 필요하다.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오지 않고 악습이 더 이상 반복되지 않도록 실행력이 뒷받침되는 근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이연진 기자  12182295@inh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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