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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파놉티콘과 현대사회

방학이라는 단어는 放(놓을 방)과 學(배울 학)이 결합한 단어로 배우는 것을 멈추고 편히 쉬라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를 휴식하지 못하게 하는 현대 사회에서 대학생에게 ‘휴식’은 없다. 학기 중에는 과제에 시험에 바쁜 나날을 보낸다. 종강을 해도 ▲토익 공부 ▲컴퓨터 활용 능력 자격증 취득 ▲대외 활동 등을 하느라 눈코 뜰 새 없다. 각종 SNS에서는 방학 맞이 외국어 강의나 대기업 서포터즈 활동을 광고한다.

 

우리가 대학에 진학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저 정해진 루트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는가. 마치 미술 대학 학생들이 그림을 그릴 때 자주 쓰는 색깔은 본인이 좋아하는 색깔이 아닌 학교 수업에 따라 정해지는 것과 유사하다. 생각해보면 개개인의 삶이 자신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마치 감옥에 갇힌 죄수들처럼 누군가의 감시하에 정해진 대로 움직이는 것 같다. 자꾸만 무언가를 해야 하고 휴식을 취하면 본인도 모르게 죄책감이 드는 현상,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이것을 느껴왔다. 이와 관련해 프랑스 철학자인 미셸 푸코가 한 이야기를 살펴보려 한다. 이를 통해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원형의 감시탑, 파놉티콘

 

파놉티콘(Panopticon)은 영국의 철학자이자 법학자인 제러미 벤담이 제안한 일종의 감옥 건축양식을 말한다. 파놉티콘의 어원은 그리스어로 '모두'를 뜻하는 'pan'과 '본다'를 뜻하는 'opticon'을 합성한 것으로 벤담이 소수의 감시자가 모든 수용자를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감시할 수 있는 형태의 감옥을 제안하면서 이 말을 창안했다. 벤담은 자신의 제안서에서 이 감옥의 본질적인 장점을 한 단어로 표현하기 위해, ‘진행되는 모든 것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하는 ‘파놉티콘’이라 칭했다. 벤담에 의하면 파놉티콘에 갇힌 죄수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항상 자신을 감시하고 있을 간수의 감시 시선을 내화해서 자신을 감시하게 된다고 했다. 푸코는 벤담의 파놉티콘을 '잔인한 철장'이라 불렀다.

 

 

갇혀있는 현대인들

 

현대인들이 파놉티콘에 갇힌 것처럼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죄수도 아니고 감옥에 갇혀있지도 않지만 누군가가 자신을 감시한다는 생각이 들면서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죄책감에 휩싸이기도 한다.

미셸 푸코는 감시자가 있든 없든 감시 효과가 나타나는 파놉티콘이 현대 사회와 비슷하다고 말한다. 우리 사회가 진짜로 파놉티콘처럼 어느 특정한 감시자에 의해 감시당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감시당하는 것 같은 효과에 의해 자유가 침해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죄수들이 권력의 시선을 내면화해 자신을 통제하게 하는 것이 파놉티콘의 가장 무서운 위력이다. 특정한 감시자는 없으며 현대 사회는 모두가 모두를 감시하는 형태다. 파놉티콘은 감시자가 언제 수형자를 감시하는지 알 수 없는 구조로 인해 '수형자가 감시자의 존재와 상관없이 자신의 행동을 일정하게 통제하도록 강제하는 공간'이며, 이처럼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의 행동을 통제하게 하는 것을 근대화의 예라 설명한다.

 

 

우리는 미디어를 통해 감옥으로 간다

 

과거에는 사람의 수가 적어 소수의 권력자가 직접 사람들을 감시할 수 있었지만, 현대에는 사람의 수가 증가해 미디어를 통해 우리를 옭아맨다. 이를 정보 파놉티콘이라 한다. 정보 파놉티콘이란 전자 기기를 이용한 감시 체계를 가리키는 말로써 전자 파놉티콘이라고도 불린다. 여기서 말하는 '정보'란 벤담의 파놉티콘에서의 '시선'을 대신해서 규율과 통제의 기제로 작동하는 것을 말한다. 시대가 변하면서 감옥의 통제와 규율의 기제는 시선에서 정보로 진화했다. 즉 정보 감시는 시선에 근거한 감시 메커니즘의 연장선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벤담의 파놉티콘과 정보 파놉티콘은 '불확실성'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파놉티콘에 갇힌 죄수가 자신이 감시를 당하는지 아닌지 모르듯이, 전자 파놉티콘의 정보망에 노출된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이 언제 다른 이에게 보여 질 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의 행동이나 작업에 주의를 기울인다.

 

사방의 감시자

파놉티콘과 정보 파놉티콘 사이에는 뚜렷한 차이가 있다. 파놉티콘의 감시 기제인 시선은 그 영향 범위에 한계가 있지만, 정보 파놉티콘의 감시 기제인 '정보'는 컴퓨터를 통해 국가적이고 범지구적으로 수집된다. 철학자 들뢰즈는 이러한 인식을 한 단계 더 추상적인 차원으로 일반화시켜서 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가 푸코의 규율 사회를 벗어난 새로운 ‘통제 사회’라고 주장했다. 그에 의하면 규율사회는 증기 기관과 공장이 지배하며 요란한 구호에 의해 통제되는 사회였지만, 통제 사회는 컴퓨터와 기업이 지배하고 숫자와 코드에 의해 통제되는 사회다. 벤담의 파놉티콘이 규율 사회에 적합한 감시의 메커니즘이라면 정보 파놉티콘은 통제사회에 적합한 감시의 메커니즘이다.

파놉티콘과 정보 파놉티콘 사이에는 다른 질적인 차이도 있다. 파놉티콘에는 죄수를 감시하는 간수가 중앙에 있는 탑에 숨어서 주변의 감방을 감시했지만, 정보 파놉티콘의 경우에는 이러한 중앙의 위치가 뚜렷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우리를 감시하는 모든 CCTV는 독립적으로 분산돼 존재한다. 감시자가 피 감시자를 일일이 알아서 규율을 강제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많은 경우 사람들은 CCTV가 자신을 찍고 있다는 것도 모르고 지낸다. 전자 감시는 벤담의 감옥이라는 제한된 공간을 뛰어넘어 ▲도시 ▲국가 ▲세계로 관장 영역을 넓혔지만 동시에 이를 관장하는 권력자가 위치하던 중앙의 감시탑과 같은 공간도 다양한 네트워크의 그물망으로 분산시켰다. 예를 들어 경찰 순찰차에 장착된 컴퓨터에서 즉석 조회가 가능한 것은 중앙 감시탑의 역할이 모든 순찰차로 분산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앙 감시탑의 역할이 네트워크의 그물망으로 분산된 것이다. 중앙의 감시능력이 주변으로 분산됨에 따라 더 광범위한 감시가 이루어진다. 순찰차에 탄 경찰관은 시민을 감시하지만 동시에 자신도 감시된다.

 

사라지고 있는 감시의 경계

감시하는 시선을 절대시하는 푸코와 달리 슬로베니아 류블랴나 대학교 사회과학 연구소의 연구원인 슬라보예 지제크는 감시자의 시선이 항상 전능할 수 없다고 말한다. 감시자는 대상을 감시하지만 동시에 그 대상이 또한 자신을 감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불안해한다. 이러한 감시에 대한 역 감시를 ‘시놉티콘’이라 한다. 노르웨이 범죄학자 토마스 마티센도 언론과 통신을 통해 다수가 소수의 권력자를 감시할 수 있는 체제로 발달했다고 주장했다. 현대 사회는 인터넷의 발달, 활발한 시민운동 등으로 인한 정보사회로 접어들면서 파놉티콘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일방적 감시가 아닌 상호감시가 가능하게 됐다. 감시를 받던 피 감시자들이 역으로 감시자들을 감시하게 됐으며 소수만이 권력과 언론을 독점하고 다수의 일반 시민을 통제하는 체제가 아니라 시민들도 권력자를 감시하고 통제한다.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비판적인 의식의 교류 ▲부정적인 현실의 고발 ▲중요사안에 관한 의견 결합 등 네티즌들의 조사로 권력자들을 감시하는 역발상 체제가 바로 이것에 해당한다. 시놉티콘에 크게 기여한 것은 바로 인터넷의 익명성이다. 이를 통해 권력자에게 쉽게 말할 수 없는 내용을 서로 익명 체제하에 교류하고 투합할 수 있게 됐다.

 

감옥에서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현대사회는 푸코가 말한 파놉티콘과 매우 유사하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세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현실에서 억지로 꿈을 만드는 것을 강요받아왔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제는 매일 매일을 감시자의 눈치를 보며 내 삶을 꾸미는 것이 아닌 자유로운 생각과 의지로 억지로 꾸미지 않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특별해지려 하지 않아도 존재 자체로 특별하다. 아무리 평범하게 보이는 사람도 저마다의 매력이 있다. 행복해지려고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틀에 박힌 사람이 될 필요가 없다. 대학에 가지 않아도, 방학 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다. 자신이 다른 사람이 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자신을 믿어보자. 이제껏 잘해왔고 지금도 잘하고 있다. 그래도 바깥이 두려워 감옥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면, 또는 감옥 속 세상이 편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한번 묻고 싶다. 당신은 그 감옥 속에서 정말로 안녕하십니까?

서정화 기자  12182947@inha.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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