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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클리셰를 배제한 창작물은 없다

클리셰는 자주 반복돼 진부해진 표현 또는 상투구를 의미한다. 만들어 놓은 기성품처럼 클리셰는 사회적으로 익숙해져 있다. 반복적인 특성을 지니지만 반복된다고 해서 모두 클리셰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장르의 규범(norm)과 클리셰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 규범은 오랜 시간 동안 축적돼 의미 있는 규칙으로 굳어진 것인 한편, '앵두 같은 입술'과 같이 예전에는 독창적이고 나름 진지한 의미를 지녔던 말들이 어느 순간 무의식적으로 반복되고 있을 때 이를 클리셰라 명한다.

 

우리는 이러한 익숙한 표현들이 진부하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것들에 환호하며 그러한 생각을 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래서 종종 예상 가능한 이야기를 들으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기도 한다. 하지만 생각보다 그 익숙함은 소중하다. 클리셰를 들여다보고 그 의미를 살피는 것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창작물 속 클리셰

보통 창작물에서는 오랫동안 습관적으로 써 뻔하게 느껴지는 내용이나 캐릭터, 카메라 스타일 등을 포괄적으로 지칭한다. 이것의 시작은 대중에게 신선한 충격을 가져다주기 위함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며 이를 모티브로 차용한 작가들에 의해 하나의 클리셰가 만들어지게 된다.

 

악당은 영웅을 기다려준다

애니메이션 <원피스>에서 주인공 루피는 고무 고무 열매를 먹어 자신의 몸을 자유자재로 늘어뜨릴 수 있다, 이 능력은 악당을 물리칠 때 유용하게 작용한다. 팔을 기둥에 감은 후 뒷걸음을 쳐서 수십 미터 가량 팔이 늘어나면 고무줄과 같은 탄성을 가지게 되는데, 그것을 이용해서 적에게 자신의 몸을 부딪쳐 치명상을 입힌다. 사실 루피가 팔을 기둥에 감고, 뒷걸음을 칠 때 악당에게는 충분히 그를 공격할 시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루피가 자신을 공격할 때까지 기다려준다. 또 다른 애니메이션 <파워레인져>에서도 레드, 블루 등을 포함한 모든 구성원이 합체할 때, 각각 자기소개하며 하나하나 합체를 함에도 악당은 그 모습을 지켜본다. 이 클리셰는 많은 애니메이션에 등장한다.

 

주인공은 죽지 않아!

물론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주인공의 죽음은 작품에 큰 영향을 준다. 하지만 해도 해도 너무한 장면들이 속출한다. 총 한 번 맞으면 죽는 조연들과는 달리 주연들은 온몸에 방탄조끼를 입었는지 아무리 총을 맞아도, 칼에 찔려도 죽지 않는다. 심지어는 회복도 빠르다. 영화 <검사외전>에서는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간 주인공이 법정에서 무죄를 주장하러 가는 도중 누군가의 사주로 칼에 찔리게 된다. 심각한 부상이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했지만, 상해를 간단하게 치료한 후 법정에 서게 된다. 영화 <메이즈러너>는 낯선 미로에서 탈출하는 영화다. 탈출 의지가 있는 동료들을 모아 미로를 탈출한다. 그 일행 중 비중이 적은 몇몇은 죽게 되지만 주인공과 그들을 많이 돕는 일행들은 죽지 않는다. 이를 플롯 아머라고 하며 대부분의 창작물의 클리셰다.

 

선택받은 자

영화 <해리포터>의 주인공 해리 포터는 위압적인 버논 숙부와 냉담한 이모 페투니아, 욕심 많고 버릇없는 사촌 더즐리 밑에서 갖은 구박을 견디며 계단 밑 벽장에서 생활한다. 그러던 중 11살 생일을 며칠 앞둔 해리에게 초록색 잉크로 쓰인 한 통의 편지가 배달된다. 그 편지의 내용은 다름 아닌 해리의 11살 생일을 맞이해 전설적인 ‘호그와트 마법학교’에서 보낸 입학초대장이었다. 해리의 생일을 축하하러 온 거인 해그리드는 해리가 모르고 있었던 그의 진정한 정체를 알려주는데. 그것은 바로 해리가 굉장한 능력을 지닌 마법사라는 것이다. 이처럼 영화 속 주인공들은 보통 사람들과는 다르게 누군가에게 선택을 받게 되고 그 선택을 알게 되거나, 평소에는 겪지 못했던 특이한 경험을 하게 되면 그때부터 주인공의 인생이 달라진다. 또 다른 예로는 영화 <스파이더맨>, 영화 <부르스 올마이티> 등이 있다.

 

이별은 열대우림에서 하는 걸까

90년대 인기 댄스그룹 R.ef의 대표곡인 <이별공식>의 가사에 ‘이별 장면에선 항상 비가 오지, 열대우림기후 속에 살고 있나’라는 내용이 나온다. 많은 가사에서도 사용될 만큼 비가 오는 날의 이별 공식은 계속 반복되고 있다. 드라마나 영화 속 이별 장면에선 자주 비가 내리고, 익숙한 스토리임에도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난다. 류수연 문화 평론가는 ‘이별이라는 것이 아무리 반복하더라도 결코 익숙해지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의 공감을 끌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비가 오는 장면에서 이별을 하는 것은 수많은 사람의 공감을 자아낸다. ‘빗속 이별’이 영상물에서 너무나도 흔한 클리셰가 됐기 때문에 요즘엔 영상물보다는 음악에서 이 클리셰를 활용한다. 종현의 <투명 우산>, 비투비 블루의 <비가 내리면>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개인행동은 죽음을 불러오고

애니메이션 <명탐정 코난>에서 볼 수 있는 흔한 설정은 혼자 방에 가거나 밖으로 나가는 사람은 죽거나 다치게 된다는 것이다. ‘눈 덮인 산장 살인사건’ 편에서는 혼자 방 안에서 텔레비전을 보던 오야마라는 남자가 살해됐다. ‘산장 붕대 남 살인사건’ 편에서도 혼자 있는 주인공 미란이가 살해될 뻔했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소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에서도 늦잠을 잔 로저스 부인, 장작을 패던 로저스, 바닷가에서 놀던 에드워드 조지 암스트롱 의사 모두 혼자 활동할 때 피살됐다. 이렇듯 개인행동이 불러오는 죽음은 추리물에서 흔한 클리셰가 됐다.

 

클리셰 비틀기

 

‘하늘은 하늘색이 아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싶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맞는 말이다. 밤에는 검은색, 저녁엔 주황색, 물론 날이 좋으면 하늘색이 나오기도 하지만 항상 하늘이 하늘색이라는 명제는 틀렸다. 이처럼 ‘남성은 남자답다’와 ‘여성은 여성스럽다’라는 말은 모두 아닌 말이 아닐까. 같은 하늘이라고 같은 색깔이 아니듯이 같은 남자, 여자, 또는 그 이외의 성을 가지고 있는 그들도 모두 같지 않다. 울음이 많으며 분홍색을 좋아하는 남자 그리고 힘이 세고 머리가 짧은 여자는 더 이상 남성스럽거나 여성스럽지 않다는 말로 비난받지 않아야 한다. 그 이외의 성에 대한 우리의 시선 또한 바로잡아야 한다. 드라마에서는 종종 동성애자를 이상하게 묘사하곤 한다. 이러한 몰상식한 생각, 표현, 조롱 등은 이제는 더 이상 통용돼서는 안 된다. 영화 <트랜스패런트>에서는 성전환 수술을 한 아버지 모트가 등장한다. 아버지의 성전환과 그를 이해하지 못하던 가족들이 시련을 겪으며 점점 이해해나가는 과정을 담은 영화다. 이 영화의 마지막 대사는 인상 깊다. 주인공의 딸인 세라가 “앞으로도 계속 여자처럼 옷을 입으시겠다는 건가요?”라고 묻자 모트는 “나는 평생 남자처럼 옷을 입고 다닌 거란다. 지금 이게 바로 나다”라고 한다.

 

 

클리셰를 파괴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알아본 이 진부한 설정들은 오히려 작품을 진부하지 않게 한다. 이러한 아이러니함은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에 혁혁한 공을 세운다. 하지만 그만큼 제작자가 자신만의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부족하다는 말도 되므로 다소 부정적인 의미로도 쓰일 수 있다. 작가들은 종종 식상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클리셰를 파괴한 작품을 만들곤 한다. 하지만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들이 많아짐에 따라 클리셰 파괴 행위 자체가 되려 클리셰가 돼 버린 경우가 생기게 됐다. 특정 영화를 보고 ‘이 영화는 미국식 영웅주의를 파괴하려 했군’이라고 말하는 것이 만연하다 보면 그 자체가 클리셰가 된다는 것이다. 즉, 클리셰 뿐인 창작물은 있어도 클리셰를 배제한 창작물은 없다. 클리셰라는 것이 사실 사람들이 쉽게 흥미를 느끼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깨는 것은 힘들다. 당연히 창작물은 대중의 관심을 받아야 세상에 알려질 수 있기 때문에 클리셰를 깨야만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따라서 클리셰를 따르는 창작물을 무조건 비난할 수 없다.

서정화 기자  12182947@inha.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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