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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불편한 자유의 나라, 미국
미 서부의 라스베가스에서 발견한 뉴욕. 진짜 뉴욕은 미 동부에 있다.

흔히 미국의 역사를 두고 “서부 개척의 역사”라고 일컫는다. 본디 현대 미국은 동부에서 시작해 서부로 영토확장을 거듭하며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이 중 가장 서쪽에 있는 도시, 캘리포니아를 포함해 네바다주, 유타주, 애리조나 주에 가봤다.

미국은 먼 나라다.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한 국가답게 연일 뉴스를 비롯한 여러 매체를 통해 접하기 때문에 가지는 짧은 심리적 거리와 달리 그나마 가까운 캘리포니아주조차 한국과 시차가 16시간이나 날 정도로 멀다.

인천에서 대략 12시간의 비행시간을 통해 도착한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은 생각보다 초라했다. 크기는 인천국제공항의 절반도 되지 않지만 항공기 이착륙 회수는 무려 두배가 조금 넘는 수준이다. 좁은 공항에 항공편은 많으니 공항 내부는 미어터지기 일쑤다. 입국심사도 미국 내 타 공항에 비해 까다로운 편이라고 해서 약간 긴장했으나 다행히 몇 가지 간단한 질문만 하고 통과했다.

약 40분간 버스를 타면 금방 LA 한인 타운에 도착할 수 있다. 한인타운 근처부터 영어와 한글이 공존하더니 한인타운에 들어서면 한글의 비중이 우세해지는 진풍경을 볼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에 다시 온 것 같지는 않았다. 한인타운에 한인만 사는 것도 아니고 고층빌딩으로 대표되는 한국 거리와는 달리 높아봐야 5층 내외의 낮은 건물로 가득한 이국적인 풍경이다.

인종 스테레오타입

한국인의 미국 이민의 역사는 길지만 지금의 위치에 오른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라고 한다. 아직까지도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는 1992년 LA 폭동의 최대 피해지역이 바로 한인타운이었고 경찰이 고의로 폭도를 한인타운으로 유도했다는 정황이 포착된 적이 있을 정도였다. 이때만 해도 한국계 미국인을 바라보는 미국 주류사회의 시각은 이주노동자, 외부인에 불과했다. 국적이나 영주권보다 인종이 더 우선시된 것이다.

그러나 현재 적어도 LA에서는 많이 달라진 것으로 보였다. 오히려 최근 멕시코의 상황이 매우 악화되면서 멕시코를 포함한 중남미 이민자 유입이 늘면서 이미 정착한 한국계 고용주와 이민 온 히스패닉 고용자 구도가 굳어진 듯했다. 처음부터 이민을 통해 건국된 나라라는 말과는 달리 굴러온 돌과 박힌 돌 사이의 격차는 여전한 것으로 보였다.

미국 문화와 할리우드

미국 문화가 곧 세계적인 문화가 되는 첫번째 방법은 바로 할리우드 영화다. 본디 할리우드는 LA 시내의 한 거리 이름인데, 주변에 영화 스튜디오가 많아 영화 촬영의 본산이 돼 미국 영화의 대명사로 자리잡게 됐다. 전세계 문화가 한곳에 모이는 나라 답게 이곳의 중심에는 중국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영화관이 자리하고 있다. 차이니즈 시어터 앞에는 할리우드 스타들의 손, 발도장과 사인이 새겨져 있다. 최근 배우 이병헌 씨와 안성기 씨도 이곳에 아시아계 배우로 최초로 도장을 찍어 화제가 된 바 있다.

자유의 나라라는 이름에 걸맞게 할리우드는 자유로워 보인다. 그러나 이 자유로움이 불편함을 안겨준다. 잘 하는 것은 절대로 공짜로 해주면 안된다는 시장자유경쟁의 나라라는 것을 자랑하듯, 영화나 만화 캐릭터로 가장하고 관광객들과 사진을 찍고 그 대가로 돈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줄지어 서있다. 이들은 마치 취미생활이라는 듯이 서있지만 호객행위를 하며 돈을 받는 ‘꾼’이다. 이들 외에도 본인이 녹음한 데모 CD를 나눠주며, 자신이 언더그라운드 아티스트인데, 사인을 해주고 기부금을 받는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 역시 관광객의 호의를 미끼로 돈을 노리는 것. 사실 할리우드뿐만 아니라 유명한 거리에서 언제나 이들을 볼 수 있지만 할리우드가 특히 악명이 높다.

서부 개척

미국의 자연 경관은 대륙다운 웅장함과 아름다움 말고도 지질학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미 서부지역에 산재한 여러 이름의 협곡은 지질학, 고고학자들이 상주하다시피 머무는 곳이다. 협곡과 그 근처 지역은 사람이 많이 살지 않고 개발도 거의 진행되지 않은 곳이 많아 한눈에 보기에도 척박해 보인다.

도시를 형성하고 있는 LA를 벗어나 고속도로로 몇 시간이고 달리다 보면 조슈아 트리가 늘어 서있는 사막을 관통하게 된다. 길고 단조로운 도로를 지루하다고 느낄 때가 되면 갑자기 사막 한복판에 도시가 어느새 나타난다. 바로 지상 최대 환락도시, 라스베가스다.

황금을 찾아 서부로 이주해온 개척민들이 광산 폐쇄 이후 생존수단을 찾아낸 것이 바로 카지노였고, 라스베가스를 중심으로 카지노 호텔이 발달하게 됐다. 현재 라스베가스를 품고 있는 네바다 주의 모든 호텔은 카지노 시설을 두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우리가 하는 라스베가스는 사실 라스베가스 시에 소속돼있지 않다는 것이다. 카지노 형성 초기 마피아들이 시와 카운티, 네바다주, 연방 등에 여러 번 내는 세금을 줄이기 위해 라스베가스 시 외곽의 사막지역을 ‘구역(Unincorporated Region)’으로 개발해 카지노 사업을 벌였기 때문이다. 카지노 사업이 커지면서 이 구역이 라스베가스 시와 밀접하게 돼 사실상 같은 행정구역으로 취급될 뿐, 아직까지도 엄연히 다른 행정구역, ‘파라다이스’ 구역에 속한다. 미국 전역에는 이런 특정 시에 속하지 않은 독립된 구역이 존재하는데, 사람이 사는 곳을 두고 선을 그은 것이 아니라 개척을 통해 사람이 이주하기 시작했다는 미국 역사에 걸맞은 제도라고 할 수 있겠다.

라스베가스의 호텔들은 그 화려함에 비해 숙박비 자체는 오히려 저렴한 편인데, 수익의 상당수를 카지노를 통해 얻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넓은 영토와 희박한 인구밀도로 치안이 절대적으로 좋다고 할 수 없는 미국에서 아이러니하게 라스베가스의 치안은 매우 좋은 편이라고 한다. 워낙 경제 규모가 크고 현금 유통량이 높다보니 역으로 경찰 행정력 또한 밀집돼 그 어떤 대도시보다 치안이 좋다고 한다. 오히려 네바다주는 미국에서 손꼽히게 복지가 잘 돼있는데, 도박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어두운 이미지와는 달리 카지노로 통해 벌어들이는 세금이 상당하기 때문에 인프라에 대한 투자도 수준급이라는 것. 실제로 라스베가스 주변 도시권에 사는 인구만 해도 200만 명이 넘으며, 지속적인 증가추세에 있다고 한다.

도박, 유흥, 환락이라는 도시 이미지와는 달리 카지노가 밀집한 파라다이스 구역은 공창제를 시행하고 있지 않다고 한다. 그럼에도 라스베가스 스트립은 그야말로 성인광고로 가득한데, 당연히 그러한 업소 중 대부분이 불법이다. 다만 대마초를 피우는 사람이 많아 조심할 필요가 있다. 처음 대마초 냄새를 맡으면 이게 무슨 냄새인가 싶을 정도로 역한 냄새가 난다.

캐니언과 아메리카 인디언

과거에 만들어진 서부영화나 만화 등을 보면 아메리카 인디언이 황야에서 말을 타고 다니며 유목생활을 하는 모습이 일반적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이들이 처음부터 사막이나 협곡 근처에서 산 것은 아니다. 이들도 여느 민족과 다르지 않게 강이나 바닷가 근처에서 수렵 채집 생활과 농경생활을 겸하는 생활을 했다. 이들이 황무지로 쫓겨난 것은 유럽 이민자들의 상륙이 근본적인 이유였다. 사람이 살기 좋은 곳은 전염병과 유럽의 압도적인 화력으로 모조리 빼앗기고 도망생활을 하다 1928년이나 돼야 시민권을 인정받고 ‘원주민 보호구역’이라는 명목으로 거주권을 보장받게 된다. 그러나 이미 이주민들이 과거 원주민의 땅을 모두 차지했고, 미국 정부는 미 정부의 땅이나 사유지가 아닌 땅을 원주민의 땅으로 규정해 아무도 소유하고 싶지 않은 황무지가 보호구역으로 지정됐을 뿐이다.

황무지 근처 도로를 달리다 보면 띄엄띄엄 집이 들어서 있는데, 그곳이 바로 보호구역 내 원주민들의 거주구역이다. 근처에 관공서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으며 편의시설이라고는 최소 수 킬로미터는 떨어져 있는 월마트가 전부다. 생활환경이 이 지경이니 평균 수명은 50세 내외이며 범죄율도 백인의 3배, 실업률은 50%를 넘는 부족도 비일비재하다. 원주민 보호구역은 미국 법률의 효력이 정지된 곳으로, 마약 유통이 쉬워 약물 중독 문제도 심각하다. 절망적인 생활 환경 때문에 보호구역 내 원주민 자살률은 미국 평균의 12배에 달한다.

일정 중 들른 언탤롭 캐니언은 원주민 보호구역 내에 위치해 있는데, 외부 가이드를 인정하지 않고 오로지 원주민 가이드만이 허용된다. 또한 가방을 소지한 채 입장하는 것을 엄격히 금하고 있는데, 그 이유에서 원주민 차별에 대한 편린을 엿볼 수 있다. 가방 소지를 금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느냐는 질문에 원주민 가이드는 “캐니언 내부가 좁기 때문에 가방이 거추장스러워 위험하며, 캐니언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며 덧붙여 “세상은 정신이 나갔기 때문에 가방에 무엇을 숨겨 들어올지 모른다”고 대답했다. 정부로부터 금전적인 지원 외에 공공서비스는 전혀 받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대비로 읽혔다.

주변 지역을 여행하다 보면 원주민에 국한된 일은 아니지만 미국의 총기 규제가 느슨한 이유도 이해가 간다. 정부의 치안 서비스는 멀고 당장 우리집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모르는 상황에 대한 공포는 미국인이 아니라면 이해하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미국의 식문화

미국의 비만율은 전세계 최고라고 한다. 당장 호텔 뷔페에서 제공하는 음식의 양과 종류만 봐도 이해가 갔다. 농경지 근처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신선한 채소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고 샐러드로만 겨우 섭취할 수 있었다. 그마저 샐러드에 곁들이는 드레싱의 짠맛은 한국이나 일본 등 동아시아에서 찾아볼 수 있는 수준 이상이었다.

흔히 미국인들이 주로 먹는 식단을 보면 그다지 고칼로리, 고지방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샌드위치나 스테이크 같은 요리는 본디 유럽에서 시작된 균형 잡힌 메뉴지만, 미국은 가능한 모든 음식을 패스트푸드로 만드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하향평준화 됐다. 드넓은 영토로 인해 육류의 품질은 매우 좋은 편이지만, 가격이 워낙 저렴해 과다섭취를 유도하는 듯하다. 대표적으로 햄버거의 가격은 대체로 한국보다 훨씬 저렴한 편인데, 그 양은 훨씬 많아 특히 저소득층의 비만율에 한몫을 하는 것 같았다. 햄버거의 크기도 크기지만, 감자튀김의 양은 한국의 두세배는 돼 보였다. 이미 소금을 뿌려서 나오는 것은 한국과 동일했지만, 추가로 소금을 더 주는 것은 충격적이었다.

한국에서도 인지도를 높여가는 샌드위치 체인점인 ‘서브웨이’의 경우 미국에서 편의점 역할을 하는 주유소마다 보일 정도로 대중적인데, 현지인이 선택하는 채소의 종류가 한국인들의 그것보다 훨씬 적어 보였다. 유럽이나 아시아에서 샌드위치는 적어도 고열량 패스트푸드라는 인식은 적은 편이지만 미국에서 샌드위치는 햄버거와 같은 패스트푸드였다.

음료수 가격 역시 매우 저렴했다. 인건비가 비싼 미국에는 자판기가 많은데, 생수와 탄산음료의 가격은 동일했다. 가격부터 소비자에게 손짓을 하니, 특별히 건강에 신경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면 탄산음료에 손이 가는 것은 당연하다. 수년 전 코카콜라는 자신의 경쟁자로 물을 지목했는데, 미국에서는 콜라가 경쟁에서 승리한 것으로 보였다. 이렇게 고열량의 파도 속에서 아이러니하게 가장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말은 제로칼로리, 즉 무열량이라는 말이다. 커피숍에 가도 일반적인 설탕 옆에 0 칼로리 설탕이 있으며 다이어트 콜라도 매우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모순을 느꼈다. 짭짤한 감자튀김에 소금을 뿌려 먹으면서, 커피에 넣는 설탕을 덜 먹으며 자기만족을 느끼는 괴악한 문화를 목격했다.

미국에서의 삶

한국 도시에서 살던 사람이 미 서부로 가면 불편한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제일 먼저, 인터넷환경이 척박하다. 이제 한국에서는 당연히 여겨지는 LTE 통신은 미국에서 도심에서만 잡히고 조금만 교외로 나가면 전화조차 되지 않는 곳이 비일비재하다.

그럼에도 여행 도중에 만난 한국계 미국 이민자들의 생각은 달랐다. 수십년 전에 미국에 처음 왔을 때는 문화 차이로 인해 고생을 많이 했고 지금도 급변하는 미국 사회 구조에 적응을 완료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말을 했다. 그러나 미국이라는 나라가 이민으로 건국됐기 때문에 그 어떤 이민자라도 본인의 능력 위주로 평가된다고 한다. 흔히 미국을 1%대 99%의 사회구조로 비유하곤 하지만, 99%의 삶이라 할지라도 본인이 거주하는 집 한 채와 중형차를 가지고 있는 중산층으로의 삶은 썩 나쁘지 않다고 한다.

최창영  12163094@inha.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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