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장르의 두 게임이 있다. 두 게임 모두 2~30대 남성을 대상으로 개발됐으며 시쳇말로 ‘오타쿠’ 게임이다. 편하게 A, B라고 부르겠다. A는 B보다 먼저 시장에 나왔다. 2016년, 외주를 받아 참여하게 된 한 성우가 SNS를 통해 남성에 대한 혐오 발언을 공유하고 공감했다는 점이 밝혀졌다. 당연히 대부분이 남성인 이용자들은 이에 반발했고, 게임 운영사가 모든 금전적 책임을 지고 재녹음을 했다. 나름 깔끔한 대처로 입소문이 났고 순간적으로 이용자 수가 급증했다. 그러나 이전부터 비판이 대상이었던 운영과 완성도에 대한 개선이 미미해 이용자 수를 유지하지 못했다.

2년 뒤, 두 게임 내에서 거의 같은 일이 또 발생했다. 외주를 받아 참여하게 된 일러스트레이터들이 SNS를 통해 남성에 대한 혐오 발언을 공유하고 공감 했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이용자들은 이번에도 반발했다. 그러나 두 회사의 대처는 정반대였다. A 게임 운영사는 아무런 대처를 하지 않았고 B 게임 운영사는 2년 전 A 운영사가 했던 대로 선을 그었다. 사실 B 게임 역시 완성도 면에서 비판을 받았고 어설픈 운영으로 서비스 시작 한달만에 ‘복귀유저(게임에서 손을 땠다가 다시 돌아오는 이용자)’를 대상으로 한 행사를 하고, 올해 5~6월에는 서비스를 종료할 계획까지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B 게임에 열광했다.

A 게임의 안일한 대처와 혐오발언에 질린 소비자들이 택한 B 게임은 단 며칠 만에 검색 빈도가 500배 이상 증가했고 PC방 이용 순위도 수십 계단 상승했다. 여기까지는 2년 전 A 게임에서 벌어진 일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B 게임 운영사는 완성도와 운영을 지속적으로 개선하던 중이었다. 단순히 서비스를 시작하자 마자 붙은 ‘망한 게임’이라는 꼬리표가 떨어지지 않았을 뿐이었다.

B 게임에 애정을 가지고 플레이 하던 이용자들은 신규 이용자들을 환영하며 이른바 ‘소매넣기(소매치기에서 파생된 신조어로, 상대방이 원하지 않아도 게임 내 아이템들을 기부하는 행위)’를 하는 훈훈한 모습도 펼쳐졌다. ‘소매넣기’는 온라인을 넘어서 급증한 이용자 수에 고생하고 있을 것이 분명한 회사 직원들에게 간식을 기부하는 형태로 행해졌고, 직원들은 남는 물품들을 본인들이 후원하던 자선단체에 다시 기부했다. 이 자선단체는 미혼모자 가정에게 경제적 지원을 주로 하는 단체였고 이 소식이 이용자들에게 알려지자 직접 B 게임의 이름으로 네이버 해피빈을 통해 해당 자선단체에 직접 후원하기 시작했다.

나비효과처럼 번진 ‘소매넣기’의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3개월동안 74명이 약 160만 원 모은 후원금은 4월 10일 낮부터 시작해 이틀 만에 5천만 원을 돌파했고 현재도 기부 릴레이는 이어지고 있다. 작년 한해 동안 이 단체가 해피빈을 통해 후원 받은 금액은 270만 원 남짓에 불과했다. 기부 릴레이 이전, 해당 자선단체의 재정 상태가 매우 열악했다는 점도 알려졌다.

어떠한 신념을 가지고 남성에 대한 혐오를 재생산하는 것과, 단순히 경쟁하듯 미혼모자 가정에 금전적 지원을 하는 것 중 무엇이 사회를 더 아름답게 만드는지는 5살짜리 아이도 알 수 있다. 남성을 혐오한다고 해서 여성의 지위가 올라가지도, 소외된 여성들의 처지가 나아지지도 않는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B 게임 이용자들은 실제로 소외된 사람들에게 도움을 줬다. 기부에 참여한 사람들은 특별한 사상이나 신념을 가지고 기부한 것이 아니다. 그저 회사의 선행에 감동해 자발적으로, 경쟁하듯 기부했을 뿐이다. “(게임 캐릭터에게 옷을 사주지는 못해도)이 돈으로 아기들에게 꼬까옷을 사줄 수 있다면, 그걸로 됐다”는 동화 속 이야기 같은 후기도 전해진다. 이 사례는 서로에게 애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일으킨 작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 분명하다.

이 기부 행렬 도중 그 어떤 혐오나 증오도 찾아볼 수 없었다. 기부가 이어지면서 대부분의 기부자들은 사건의 발단이었던 일러스트레이터들을 비난하지 않았다. 이미 그들에게 혐오는 전혀 중요하지 않은 화두다. “증오로 증오를 몰아낼 수는 없습니다. 오직 사랑만이 그것을 할 수 있습니다” 1963년 8월 28일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명연설 중에 언급된 문장이다.

최창영  12163094@inha.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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