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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우울증을 바라보는 한국사회

모두가 기억하는 4년 전 오늘, 한국사회에는 슬픔이 범람했다. 사랑하는 이들을 잃은 슬픔은 한 지역을 메우고 넘쳐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당사자가 아닌 이들도 무기력증과 우울을 앓는 일이 이어졌고, 전문가들은 한국사회가 ‘집단적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진단 내렸다. 지난해 겨울과 올해 봄, 많은 이가 사랑했던 한 가수와 배우가 목숨을 끊었다. 사유는 우울증이었다. 그러자 많은 언론과 전문가들은 이들이 죽어야 했던 이유를 다시 돌아봐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울증’은 한국사회가 논의해야 하는 문제로써 수면위에 떠올랐다.

 

1. 한국사회의 고질병, 우울증

우울증은 의욕저하와 우울감을 주요 증상으로 해 다양한 인지 및 정신 신체적 증상을 일으켜 일상 기능의 저하를 가져오는 질환이다. 현재 전 세계 3억 명 이상이 우울증 증상을 앓고 있으며, 우울증 증상을 호소하는 사람들은 나날이 증가 중이다. 이에 세계보건기구(이하 WHO)는 21세기 인류를 괴롭힐 심각한 질병으로 ‘우울증’을 꼽기도 했다.

한국사회의 우울증 또한 연령 및 성별을 가리지 않고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건강보험 및 의료급여 심사 결정 자료에 따르면, 국내의 우울증 환자 수는 2013년 약 50만 명대였으나 2016년에는 약 64만 명으로 증가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자신의 상태를 소극적으로 말하는 응답자들 성향까지 감안해본다면, 실제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은 진료받은 이들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실제로 WHO는 한국의 우울증 환자를 약 214만일 것으로 추정했다. 이럴 경우 우울증 진료 환자 외 숨겨진 환자가 150만 명에 이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연령별로 살펴봐도 우울증의 증가 추세는 뚜렷하다. 청년 세대는 가장 가파른 우울증 증가세를 보인다. 현대 경제 연구원에 의하면 우울증에 시달리는 청년 비율은 매년 평균 4.7%씩 증가했다. 이는 전체 연령대의 우울증 평균 증가율인 1.6%의 3배에 달하는 수치다. 노인 세대의 우울증 또한 심각한 수준이다. 우울증으로 내원하는 만 60세 이상 환자의 수는 2013년 23만 명을 기록한 이후 꾸준히 증가해, 2016년에는 28만 명을 기록하기도 했다.

특히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 문제는 우리나라의 심각한 사회적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우리나라는 13년간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를 기록해왔다. 복지부·중앙심리부검센터의 '2015 심리부검 결과'에 따르면 사람들이 자살을 택한 주요 원인 중 32.2%는 우울증이었다. 자살의 결정적인 요인이 아니더라도 88.4%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던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우리나라 노인 자살률은 10년 넘게 OECD 국가 중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자료: 건강보험심사평가원

2. 우울증에 무관심한 한국사회

그러나 이러한 상황임에도 우리나라의 우울증 치료에 대한 중요성은 좀처럼 부각되지 않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정신질환 실태 역학 조사(2016)에 따르면 국내성인 중 우울증을 포함한 정신건강 문제로 의사와 상담한 적이 있는 비율은 10%도 채 되지 않았다. 또 실제로 정신질환을 겪은 성인 중에서도 단 22.2%만이 상담이나 치료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우울증을 치료하는 약물인 항우울제의 복용률 또한 낮다. OECD의 ‘한눈에 보는 보건의료 2015’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항우울제 소비량은 OECD 국가 중 최하위권이다. 2013년 기준 한국의 하루 항우울제 소비량은 1000명당 20DDD로, OECD의 하루 평균 소비량보다 3배 이상 낮은 수준이다. 자살률 1위를 기록하는데도 우울증 치료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우리 사회의 모습은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걸까. 답은 우울증을 바라보는 한국사회의 태도에 있다.

 

3. 우울증을 바라보는 한국사회의 태도

01.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

“우울증은 하나의 질병의 문제와 같아야 한다” 영국 정신건강 전문가인 패트릭 홀포드 박사의 말처럼, 우울증은 엄연히 생물학적 질환이다. 우울증은 뇌 속에서 사고와 판단 등을 담당하는 전두엽과 본능과 수면, 기억 등을 담당하는 변연계의 기능이 저하되며 발생한다. 이로 인해 무기력증, 불면증, 집중력 저하 등과 같은 증세가 나타난다. 우울증의 가장 극단적인 증상으로 거론되는 자살 충동 또한 전두엽과 변연계가 줄어듦에 따라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신체의 반응이다. WHO는 우울증을 건강을 판단하는 하나의 기준으로써 인정하며, 우울증에 걸린 이를 ‘환자’로 분류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좀처럼 우울증에 시달리는 이들을 환자로 인정하지 않는다. 우울증과 건강을 별개로 바라보는 인식 때문이다. 한국에서 우울증을 비유하는 데 쓰이는 표현 ‘마음의 감기’에는 우울증이 개인의 마음, 즉 감정의 문제 때문에 비롯됐다는 전제가 드러나 있다. 한국사회에서 감정과 관련된 문제는 신체적인 증상보다 훨씬 가볍게 여겨진다. 이러한 탓에 우울 증세를 보이는 이들은 ‘정신력이 나약하다’는 비판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우울증에 대한 부족한 오해가 문제가 되는 건, 이로 인해 치료가 적절한 시기에 이루어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국 우울증 진료 현황 조사에 따르면 환자가 우울증을 직접 자각하는 비율은 30% 이하에 그친다. 대부분의 환자는 두통, 식욕저하, 불면증 등 신체 증상을 겪지만 이를 우울증이라고 쉽게 생각하지 못한다. 이로 인해 다른 과들을 전전하다가 마지막에야 정신건강의학과를 내원, 우울증을 진단받는 것이다. 우울증은 초기 치료 시 완치율이 2개월 안에 70-80% 안에 달한다. 그러나 우울증에 대한 부족한 이해로 인해 병이 방치되고 있다.

02. 집단주의 속 병드는 개인

한국사회의 사회적 분위기 또한 우울증 치료가 난관을 겪는 요인이다. 한국에는 견고한 ‘집단주의’가 형성돼 있다. 가정, 회사 등 다양한 공동체의 가치는 개인의 것보다 강조된다.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공동체 생활 중 개인적인 사정을 드러내는 것은 ‘프로페셔널 하지 못한 것’으로 여겨진다. 육아휴직을 내는 것도 동료들의 업무량이 늘까 봐 눈치가 보이는 실정이다. 하물며 질병으로 쳐 주지도 않는 우울증에 대한 시선은 더욱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실제로 한 국내 연구에 따르면, 직장인 1000명의 56.1%가 ‘직장 내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이 있는 경우 일할 때 생산성이 떨어질 것 같다’고 생각했다. 또한, 그러한 분위기를 인식한 듯, 실제 우울증에 걸린 이들 중 31%만 병가를 냈으며, 이들 중 66%는 병가 신청 사유를 거짓으로 기재한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03. 우울증 ‘괴담’

한없이 냉소적인 인식 속에 우울증 치료에 대한 수많은 소문이 양산된다. 예컨대 항우울제의 부작용은 마치 ‘괴담’처럼 널리 퍼져 있다. ‘한번 먹으면 평생 끊을 수 없다’, ‘약을 먹으면 바보가 된다’, ‘약 때문에 성욕이 떨어진다’ 등의 내용이다. 2012년의 한 연구(총 384명의 우울증 환자와 일반인 대상)에서 ‘항우울제가 처방돼도 복용하지 않겠다’고 답한 이가 74.2%에 달했던 결과는 항우울제에 대한 사회의 불신을 여실히 드러내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러나 전문의에 따르면, 이러한 소문에는 부풀려진 점이 많다. 일단 ‘한번 먹으면 끊을 수 없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항우울제는 중독성이 없기 때문이다. 이는 신경안정제나 항불안제 같은 일부 중독성 있는 정신과 약 때문에 생긴 오해일 가능성이 크다. 혹은 우울증약을 갑작스럽게 끊을 경우, 신경전달물질 체계가 일시적으로 깨져 불안한 기분이 드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는 결코 중독 증세가 아니며, 약을 한 번에 끊지 않고 용량을 단계적으로 줄여나가면 충분히 예방이 가능하다. 또한, 항우울제를 복용하면 ‘바보가 된다’거나 ‘성욕이 저하된다’는 소문의 경우, 그러한 증상을 유발하는 약들이 있기는 하나 전문의의 처방과 관리를 통해 피할 수 있는 문제다. 전문의들은 사람들이 이처럼 과장된 부작용을 듣고 항우울제를 회피함으로써 병을 더욱 악화시키는 경우가 많다는 입장이다.

한편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들 사이에서는 ‘정신과 진료 기록이 있으면 취업이 어렵다’는 소문이 돈다. 그래서 청년들은 정신과 진료기록을 ‘F코드’(정신 및 행동 장애)가 아닌 ‘Z코드’(일반장애)로 기재함으로써 이를 숨기려고 한다. 그러나 약물 처방전의 경우 F코드에만 의료보험이 적용된다. 결국, 진료기록을 Z코드로 기재한 청년들은 비보험 처리로 비싸게 약물 처방을 받는다. 보험 처리된 약과 비보험 처리된 약의 가격차는 매우 크다. 예컨대 보험을 받을 경우 약값이 3만 원이라고 한다면, 비보험일 경우 약값은 12만 원 정도다. 결국, 배로 늘어난 부담 앞에서 청년들은 정신과 진료 자체를 포기해 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청년들의 염려와 달리 정신질환 진료 기록은 취업에 아무런 영향을 미칠 수 없다. 정신질환 진료 기록은 의료법 제21조 제1항을 통해 보호되기 때문이다. 이에 따르면 의료인이나 의료기관의 종사자가 명시된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환자의 동의 없이 제삼자가 환자의 진료기록을 열람하거나 발급받을 수 없다. 건강보험공단에서 보관하는 진료기록도 본인이나 대리인만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회사에서는 이러한 기록을 임의로 조회하는 것 자체가 불가하다.

 

4. 잃어서는 안 되는 이들을 위해  

누군가를 잃는다는 것은 얼마나 아픈 일인가. 숱한 참사들과 스스로 떠나는 이들을 수없이 목격해온 한국사회는 상실의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역사는 더 이상 반복되어서는 안 되기에, 우리는 사회 속에 도사리고 있는 우울을 직면해야 한다. 국가는 우울증 치료를 막는 요인들을 규제해야 할 것이다. 예컨대 F코드가 진료기록에 있기만 해도 부당하게 사보험의 가입을 제한하는 사례는 여전히 만연하다. 이 경우 제도를 만드는 것에 그치지 않고 꾸준한 감시와 엄벌이 이어져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한국사회의 ‘색안경’을 벗어 던지는 일이다. 우울증의 고통을 개인의 나약함으로 치부하는 무지함, 집단을 위해 개인의 아픔을 모른 척하는 사회적 분위기, 또 정신병에 대해 ‘낙인’을 찍는 사회인식이 개선돼야 할 것이다. 더 이상 잃어서는 안 되는 이들을 위해, 모두의 노력이 필요한 때다.

배주경 기자  skwnru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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