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이 못하는 총기 사고를 자신들이 막겠다며 미국 고등학생들 수만 명이 거리로 나왔다. 플로리다 주 마조리 스톤맨 더글러스 고교에서 총격으로 17명이 희생된 지 한 달만인 3월 14일, 동맹 휴업을 하고 총기 규제 강화 법안 입법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인 것이다. 이들은 미국 곳곳에서 오전 10시부터 가두 행진을 하며 희생자들을 추모했고 "더 이상 침묵하지 않겠다, 생각과 기도만으로는 아무 것도 변하지 않는다"고 외쳤다.

이렇게 대규모로 고등학생들의 동맹 휴업 시위가 벌어지는 것은 미국에서 흔한 일이 아니다. 미국에서는 총기사고로 매년 1만 명이 사망한다. 미국은 총기 소유의 자유가 헌법(수정헌법 제2조)에 보장되어 있다. 총기 사고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지만 총기 규제가 쉽지 않은 이유이다. 총기규제 강화 법안을 입법화하려는 시도도 많았지만 매번 실패했다. 총기판매상으로부터 거액의 후원금을 받아 먹고 사는 적지 않는 정치인들 때문이다. 특히 최근 대규모 총기참사가 주로 학교 내에서 일어난다는 데 우려가 더 커지고 있다. 가치관이 성숙되지 않은 10대가 충동적인 분노에 방아쇠를 당기고 꿈도 피어 보지 못한 죄 없는 10대가 친구가 겨눈 총부리에 죽어가는 비극이 지금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플로리다 주 총기 참사 이후 미국 사회에서 총기 규제 강화를 촉구하는 시위가 한 달 넘게 이어지는 이유이다.

이 거대한 물결을 주도한 10대들에게 교육당국이 무더기 징계를 내렸다. 시카고 교외 도시의 한 교육구가 시위에 참여한 1천여 명에게 디텐션(격리학습: 학수위보다 수위가 낮은 일반적인 징벌)조치를 통보한 것이다. 심지어 정학 통보를 받은 학생들도 있었다. 징계사유는 이랬다. 수업 거부 시위에 앞서 교육청 대표들이 학생들을 만나 수업을 빠지지 않고도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여러 가지 대안을 제시했으나 학생들이 거부했다는 것이다. 이들이 시위를 하는 동안 대다수 학생들은 교실에 남아 수업을 받았다고도 했다.

학생들의 징벌 소식에 뉴욕 주지사가 제동을 걸고 나섰다. 앤드류 쿠오모 뉴욕주지사가 수업 거부 연대 시위를 막은 학교들을 조사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학생들의 권리를 막는 것은 끔찍한 행위라며 그들에게 주어진 ‘표현의 자유’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교육국에 지침을 내려 시위를 막으려 했던 학교들을 파악하고, 학생들이 어떠한 징계도 받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학생들의 총기 규제 강화 촉구 시위 문제를 두고 벌이는 교육당국과 뉴욕 주 수장 간의 상반된 권한행사를 두고 어느 쪽이 옳고 그른지를 따지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학생들에 벌을 내린 교육당국의 해명이 밉살스럽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규정에 따라 학생들에 징계 방침을 정하긴 했지만 왜 이런 징계를 내려야했는지 설명하는 해당교육감의 글이 의외로 신선하고 인상적이었다. 행크 틸리 교육감이 학부모들에 띄운 공문은 이렇다.

“그들은 신념에 따라 진심으로 항거했고 개인적인 대가를 치르면서까지 권리를 위해 일어섰다는 징표로 여긴다. 시위에 참여한 학생들이 ‘행동의 결과’를 받아들임으로써 시위에 참여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깨달으며 완전한 시민 교육 효과를 얻게 될 것이다.”

어느 부모가 이 글을 보고 “당신들의 철없는 아들, 딸이 잘못을 했으니 당연히 벌을 감수하라”는 따가운 질책으로 받아들일까? 오히려 ‘신념과 진심에 따라 용감하게 행동한 데 대한 칭찬과 지지이며 수업을 제끼고 거리로 나갈 수밖에 없었던 아이들의 정당성을 대변해주고 싶어 하는 속내가 읽혀진다. 어쩌면 자식의 목숨이 경각에 달렸는데도 침묵하는 학부모들에게 “어른으로서 자책감과 미안함을 느껴라, 그리고 이제 어른들이 나설 때”라고 호소하는 것은 아닐까. 교육감은 아이들이 행동에 대한 결과를 받아들일 수 있는 교육효과까지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물론 필자가 지나치게 아전인수(我田引水)격으로 해석하려는 것일 수도 있지만 이 특별한 공문서 글이 내내 머리와 가슴속에서 사라지지 않는 것은 왜일까.

이 이야기는 미국 국내외 언론에서 크게 부각되지는 않았지만 총기사고로 인한 혼란과 갈등 속에서도 미국 사회는 여전히 희망적이란 메시지를 던져 준다.

플로리다 고교 총기 참사 5주 만에 메릴랜드 주 그레이트의 밀스 고등학교에서 또 총격 사건이 나 1명이 숨지고 2명이 부상했다. 가해자, 피해자 모두 또 재학생이었다. 학생들은 또 대규모 연대 시위를 예고했다. 쿠오모 뉴욕주지사는 강력한 총기 규제법인 뉴욕 '세이프법'을 더욱 강화시키기 위해 법의 일부 조항을 수정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총기문제, 이번엔 해결되려나?

김미애 OBS 월드뉴스팀장/ 커뮤니케이션& 저널리즘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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