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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그날] 3월 1일, 삼일절

1919년 3월 1일, 우리 민족은 일본의 식민통치에 항거해 독립선언서를 발표하는 평화적 시위를 열어 한국의 독립 의사를 세계에 알렸다. 정부는 우리 민족의 자주독립 정신을 영원히 기념하기 위해 1949년 10월 1일에 3월 1일을 국경일로 지정했다.

3·1운동은 일제의 폭압적인 식민지 지배에 대한 민족의 저항으로 일어났다.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은 조선을 강점한 뒤 군사력을 동원해 무단통치를 했다. 헌병경찰제도를 실시해 모든 반일 운동을 탄압했으며,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등 기본적인 권리와 자유를 억압했다. 또한, 조선태형령으로 우리 민족의 인권을 짓밟고 토지조사사업·회사령 등으로 민족 산업과 경제적 발전을 막았다. 이외에도 종교 탄압, 신사참배 강요, 군대식 제복 착용 등을 시행했다. 이러한 정치적 억압과 경제적 약탈로 인해 민중의 생활은 악화했고, 일제에 대한 분노와 저항 의지가 높아져만 갔다. 1919년 1월 21일 대한제국의 마지막 왕 고종의 갑작스런 별세에 일제가 독살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국민들의 민족적 항일 의식이 고조됐다. 비밀리에 독립운동의 기회를 찾고 있던 민족 지도자들은 미국 윌슨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원칙 발표, 고종의 별세 등이 겹친 이 시기가 우리 민족이 독립할 가장 좋은 기회라 여겨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했다.

1919년 3월 1일, 예정대로 민중들은 ▲서울 ▲평양 ▲의주 ▲선천 ▲안주 ▲원산 ▲진남포 등 6개 도시에서 동시에 독립만세운동 시작을 위해 모였다. 민족대표 중 29명은 3월 1일 오후 독립통고서를 조선총독부에 전달했다. 오후 3시 한용운은 독립선언서를 낭독 후 자수했다. 탑골공원에 모여 있던 학생들은 2시 30분 즈음에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다. 그리고 두 갈래로 나뉘어 ▲종로 ▲서울역 ▲정동 ▲이화학당 ▲서대문 등을 행진하며 시위를 벌였다. 독립만세운동의 시작이었다.

서울에서 시작된 독립만세운동은 수개월 동안 지속됐고 전국적인 규모로 확산됐다. 점점 참여인원과 계층도 확대됐다. 또한 국외로도 확산돼 ▲만주 ▲연해주 ▲도쿄 ▲오사카 ▲필라델피아 등에서도 독립시위가 일어났다.

3·1운동은 각계각층의 민중들이 폭넓게 참여한 일제 강점기 최대 규모의 항일운동이었다. 나라 안팎에 민족의 독립 의지와 저력을 보여줬으며, 독립운동의 대중적 기반을 넓혀 독립운동을 체계화·조직화·활성화하는 계기였다. 민중들은 3·1운동에 참여하면서 민족의식과 정치의식을 높일 수 있었고 이는 1920년대에 다양한 사회운동과 조직이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이 됐다. 또한 3·1운동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전승국의 식민지에서 최초로 일어난 대규모 독립운동이라는 점에서 의의를 지닌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우리는 지금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그날의 함성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앞으로의 삼일절은 우리 민족의 주체성과 민주정신을 되돌아보며 그날을 반추할 수 있는 뜻 깊은 날이 되었으면 한다.

박유진 기자  12172967@inh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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