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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팔이] 그림판

 “그림판이 사라집니다” 작년 7월 마이크로소프트(이하 MS)가 윈도우 10버전의 업그레이드에 따라 그림판을 삭제한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그림판’이라니! 회사들이 요구한다는 포토샵이니 일러스트 능력을 키우느라 여념이 없는 요즘이다. 그렇다 보니 MS가 불현듯 수면 위로 꺼낸 그림판이라는 단어는 어느새 너무나 생소해졌다. 컴퓨터에서 그림판을 찾아보니, 놀랍게도 필자가 자주 사용하는 ‘워드’ 프로그램 밑에 놓여 있었다. 막상 그림판을 마주하자 낯선 기분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추억이 메꿔왔다. 영영 잊혀진 줄 알았던 그림판은 필자의 기억과 컴퓨터의 귀퉁이에 고스란히 존재하고 있었다.

무수한 시간이 흘렀지만, 그림판은 한번 쭉 살피기만 해도 그 사용법을 바로 알 수가 있었다. 넓은 화면은 스케치북이고, 옆에 나열된 색색의 픽셀들은 물감이다. 붓, 볼펜 등 다양한 아이콘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도구임을 짐작게 한다. 또 네모를 클릭하면 네모가, 세모를 클릭하면 세모가 그려진다. 복잡한 단축키와 아이콘의 역할을 일일이 외워야 하는 타 프로그램들과는 달리, 그림판은 그저 보이는 대로 짐작하고 짐작한 대로 사용하면 된다. 이것이 어린 날의 필자에게 그림판이 ‘상냥한’ 프로그램이었다고 기억되는 이유다. 수많은 프로그램 중에서 유일하게 사용법이 짐작 갔던 그림판을 사용하며, 어린 필자는 복잡한 컴퓨터에 대한 친근함을 키워 나갔다. 한 외국 네티즌이 그림판을 ‘컴퓨터의 통로’라고 표현한 것을 보면, 가끔은 사람들의 추억이 닮아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이러한 그림판이 사라진다는 소식에 인터넷에는 이를 추모하는 물결이 일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그림판을 이용해 그린 그림을 올렸다. 삐뚤삐뚤한 그림들은 우습게만 보여도, 사람들을 아련한 추억으로 빠지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마우스로 그림을 그리다 보면, 머릿속에서 생각한 것과는 영 딴판의 작품이 화면 속에 펼쳐졌던 기억을 모두 하나씩 가지고 있을 터였다.

사람들의 슬퍼하는 반응에 MS는 기존 그림판을 무료로 배포할 것임을 밝혔다. 또한, 기존의 것보다 더욱 업그레이드된 그림판을 제공할 것이라고 했다. 새 그림판은 3D 기술도 제공한다. 예전보다 퍽 근사해진 모양새다. 아마 우리는 이 새로운 그림판을 또 사랑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예전의 상냥했던 그림판을 영영 잊지 못할 것 같다.

 

 

 

배주경 기자  skwnru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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