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젊은 세대 사이에서는 ‘헬조선’, ‘흙수저’, ‘N포 세대’ 등 청년들의 암울한 현실이 담긴 말들이 유행했다. 기성세대의 충고는 ‘노오력’이라는 말로 비꼬아졌으며,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문구는 ‘아프면 환자지 무슨 청춘이냐’는 말로 비아냥의 대상이 됐다. 청년들은 꿈과 희망에 대해 논해볼 수조차 없는 현실에 좌절했고, 그 끝 무렵에서 ‘YOLO(인생은 한번 사는 것이다)’라는 매력적인 휴양지를 찾았다.

욜로를 부르짖는 이들은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현재의 삶을 희생하며 살지 말고 현재에 충실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현재’라는 현실 속에서 최대치의 행복을 도출해내고 즐기는 것이 핵심이다. 어차피 인생은 한 번뿐이니 후회 없이 이 순간을 즐기면서 살아가자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욜로가 유행하게 된 이유는 현재를 투자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미래의 행복에 대한 보장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티끌은 아무리 모아도 티끌일 뿐이고, 생계를 유지할 정도의 생활비만을 가까스로 지출하며 몇 년을 일해도 내 집 하나 사기 힘들어진 상황이 이어질 뿐이다. 미래라는 유토피아는 투자 가치를 잃었고, ‘미래를 위해 헌신해봤자 기대할 수 있는 것은 현재의 연장선’일 뿐이라는 불편한 진리를 젊은 세대들은 깨닫게 된다. 이에 더하여 ‘구조조정’이나 ‘명예퇴직’으로 집약되는 기성세대의 삶은 평생직장의 개념을 지워버린다. 그 결과, 미래에 기대를 거는 것도 불가능해졌으니 지금이라도 즐기자는 욜로 열풍이 대한민국을 휩쓸고 있다.

‘욜로 즐기다가 골로 간다’는 말과 함께 무작정 욜로를 좇는 열풍에 대한 비판과 경고에도 불구하고 욜로의 인기는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이처럼 욜로 정신이 열풍인 우리 사회에 불현듯 나타나 ‘돈은 안 쓰는 것이다’라는 주제로 돌풍을 일으킨 TV 프로그램이 있다. ‘김생민의 영수증’은 개그맨 김생민이 돈을 모으고자 하는 사람들의 카드 명세서를 분석하고 불필요한 소비로 인해 돈이 새는 곳을 탐색해 돈을 모으는 방법을 설계해주는 프로그램이다. 김생민은 사연자의 영수증을 보며 좋은 소비나 착한 소비일 때는 ‘그뤠잇(Great)'을, 나쁜 소비나 아쉬운 소비일 때는 ’스튜핏(Stupid)'를 외친다. 욜로가 내걸고 있는 ‘현재를 위해 기꺼이 돈을 지불하는’ 소비 형태와는 확연히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음에 틀림없다. 젊을 때 절약해서 나이 들어 안정적인 삶을 살라는 그의 조언은 ‘젊어서 고생하지 말고 젊을 때 즐겁게 살아야 한다’는 욜로의 지향점과도 충돌하는 듯 하다.

그럼에도 ‘그뤠잇’과 ‘스튜핏’은 2017년 하반기의 유행어로 톡톡히 자리매김을 했다. 절약의 아이콘이 된 김생민은 ‘통장요정’으로 불리며, ’노래는 1분미리 듣기면 충분하다‘, ’돈이란 원래 안 쓰는 것이다‘ 등 김생민의 절약 어록들은 많은 사람들의 공감과 웃음을 자아낸다. 그리고 김생민처럼 절약에 익숙해지고 통장을 여러 개 갖게 된 대중들이 ’나도 이제 통장요정이다‘라는 사연을 SNS에 올리기도 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즉흥적 소비를 통한 행복 추구에 가치를 두는 욜로 열풍이 우리 사회를 휩쓸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김생민과 함께 절약과 저축이 트렌드로 새롭게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없다면 현재를 인내하고 미래를 위해 저축할 수 없다. 그런 확신이 없어서 청년들은 헬조선에 좌절했고 욜로를 부르짖었다.

2018년 봄이 다가오는 지금,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것을 외치고 있다. 누군가는 ’욜로‘를 외치고 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오늘도 그뤠잇‘을 외치고 있다. 혹자는 대중의 심리가 마치 갈대와 같아 쉽게 휩쓸리고 만다고 비판한다. 오늘은 ’그뤠잇‘이었다가 내일부터는 ’욜로‘가 될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물론 대중의 심리는 묘연할 때가 많다. 그럼에도 필자는 그러한 대중들의 심리에 비난보다는 응원을 더해주고 싶다. ’욜로‘든 ’그뤠잇‘이든 그 모든 말들이 제각기 다른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현재와 그 현실을 버텨내는 힘일지도 모른다고 감히 생각하기 때문이다.

임현지 기자  ㅣ.hyeonge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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