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기를 시작하면 제자들에게 물어본다. 졸업한 뒤 뭘 하고 싶은가, 너의 꿈이 무엇이냐고. 많은 제자들이 공무원을 생각하고 있다고 대답한다. "그럼 왜 언론학을 공부하느냐"고 반문한다. 조금은 나무라듯이, 조금은 추궁하듯이. 그리고는 "직업은 감성으로, 결혼은 이성으로 하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선생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본인이 가장 하고 싶은 것, 아니면 가장 잘 하는 것, 그 것도 아니면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것을 직업선택의 기준으로 삼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인다. 그런 얘기를 듣는 학생들의 반응은 냉담하다. 안정적인 직업이 최고지, 꿈이 우리의 미래를 책임질 수 있느냐는 표정이다.

학생들의 이 같은 태도는 고등학교 때부터 시작된다. 수험생들의 대학진학 결정요인은 상당수가 '명문대, 그 중에서도 취업 잘 되는 과'이다. 내가 잘 하는 분야에 매진해 꿈을 이루겠다는 열정은 보이지 않고, 좋은 대학에 들어가 안정적인 직장에 취직하겠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다보니 대학에 들어오자마자 ‘스팩쌓기’에 ‘올인’할 수밖에 없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세상과 우주에 대한 지적호기심보다는 취업시험정보일 뿐이다. “안정적인 직업을 찾는 것도 좋지만 먼저 꿈을 찾아 나서라”는 말로 오리엔테이션을 마치곤 하지만 강의실을 나오는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다.

  대학을 상아탑(象牙塔)이라고 한 이유는 본래 순수하게 학문을 지향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대학은 학문을 깊이 연구하는 곳이어야 한다. 어떤 분야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 열심히 공부해, 지금까지의 지식에 더해 자신의 연구결과를 벽돌 한 장으로 쌓는 지식과 철학의 전당이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의 대학교육은 취업률 높이기, 대학평가 잘 받기 등 너나할 것 없이 ‘실적쌓기’에 급급한 모습이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근본적인 문제는 사회적 구조에 기인한다. 산업화시대, 대학을 나오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려웠고, 그것은 지나친 교육열을 불러왔다. 1980년대 20~30% 정도이던 우리나라 대학진학률은 현재 OECD기준 최고가 됐다. 대학설립 자율화를 시행하며 너무 많은 대학이 생긴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갈팡질팡하는 정부의 교육정책이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달라지는 교육정책은 국민에게 큰 혼란을 주고 있으며, 대학을 지원한다는 명분으로 ‘교육’이 아닌 ‘교육사업’을 해 온 게 사실이다. 어느 학과, 어느 대학이 더 수익을 낼 수 있을 것인가, 어느 대학이 더 취업을 잘 시키는가로 대학을 줄 세우고 지원하다보니 대학들은 무리수를 둘 수밖에 없었다. 구조조정이라는 미명으로 취업이 잘 안 되거나 학교 정책에 반대하는 학과는 통합하고 없애는 프라임사업이 좋은 예다.  

며칠 전 사석에서 만난 몇 분의 본교 교수님들은 우리나라 대학들이 시행하는 전반적 교육에 대한 치열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인문대의 한 교수님은 “소수의 인재만을 필요로 하는 산업사회로의 변화는 지금과 같은 대학구조에서 만들어지는 인재들을 요구하지 않으며 대학을 점점 더 불필요한 것으로 만들어 결국은 많은 대학을 쇠퇴하게 만들 것”이라고 진단한 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은 산업사회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주역이 되는 인재를 양성해 국가의 경쟁력을 확보하고 국민경제를 뒷받침할 수 있는 교육기관으로 존재해야 한다”는 대안을 제시했다. 공대의 한 교수님은 “내가 공대 교수이지만 하버드대학의 첫 여성 총장이 사람을 목수로 만드는 곳이 아니라 목수를 사람으로 만드는 곳이라고 말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며 “대학은 기능인보다는 사유하고 깨닫는 인간을 만드는 데 더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사회과학대 교수님은 “호주는 30프로가 대졸이고 30프로가 중졸이며 나머지는 고졸이나 중퇴”라며 “호주에선 대학을 나오지 못 해고 용접공에 들어간 사람을 부러워하는데 이는 도시 화이트컬러보다 월급이 많기 때문”이라며 사회구조의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재정자립, 총장유고사태, 학교와 재단과의 관계 재정립, 송도캠퍼스 이전 등 본교는 현재 풀어야 할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8년 봄 학기는 학교 현안을 지혜롭게 해결하는 것과 더불어 상아탑의 의미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시작점이 됐으면 좋겠다.

김진국(인천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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