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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변잡기] 옷신문기자들의 변변찮고 잡스러운 기록들

옷(衣)

몸을 싸서 가리거나 보호하기 위하여
피륙 따위로 만들어 입는 물건.

1.

마지막으로 한복을 입어본 적이 언제인지 기억하는가? 아마 대다수의 사람들은 유년시절 생일 또는 명절에 부모님께서 입혀주셨던 기억이 마지막이었을 것이다. 앞으로 언제 한복을 입을지를 묻는다면, 아마 본인 혹은 가까운 친인척의 결혼식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처럼 한복은 우리의 옷임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갈수록 우리에게 낯설고 먼 존재가 됐다. 이미 한복은 생일, 명절, 결혼식 등 특별한 날에만 찾는 옷이 됐으며, 그 종류에는 무엇이 있는지, 각각 어떤 이름으로 불리는지조차 제대로 아는 사람이 극히 드물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전주 한옥마을이나 경복궁처럼 우리의 전통을 테마로 하는 관광지에서 한복이 다시 빛을 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내외 관광객들에게 사랑을 받는 한옥마을에 가보면 한복 대여점이 늘어서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각각의 대여점마다 수십 수백여 가지의 한복을 대여하고 있으며 그곳에 가면 누구든지 양반집 규수나 한 나라의 임금이 될 수 있다. 이는 비록 한복의 생활화와는 관련이 없을지 모르지만, 어찌됐든 한복을 조금 더 쉽게 접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좋은 현상임에 틀림없다.

일각에서는 요즘의 한복이 전통의 것과는 맞지 않다며 이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도 있다. 요즘의 한복은 생활한복, 개량한복, 퓨전한복 등 기존의 이미지와 다르게 제작돼 이게 한복이 맞느냐는 의문이 제기되기도 한다. 요즘 보이는 짧은 한복 치마, 색다른 소재 혹은 독특한 패턴이 우리의 머리 속에 있는 한복과 거리가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역사를 되돌아봤을 때, 우리의 옷은 시대 혹은 신분에 따라 무수히 많은 변화를 거듭해왔다. 지금의 변화 역시 시대의 흐름과 함께 진행되는 하나의 현상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한복이 다시 우리의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르지만, 한복의 다양화나 간소화 등을통해 이전보다 더 접할 기회가 많아지고 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2.

상대적으로 적은 초기투자 비용으로 별도의 절차 없이 물건을 판매할 수 있는 ‘블로그·SNS 마켓’이 우후죽순 늘어나는 추세다. 그러나 기본적인 판매 조건을 갖추지 않아도 판매가 가능한 탓에 소비자들의 피해가 끊이지 않고 있다. 판매자가 환불과 교환을 거부하는 것은 물론이고, 통신판매업자 신고를 하지 않고 판매하거나 현금 결제를 강요해 탈세를 일삼고 있는 것이다.

블로그·SNS 마켓의 상당수 판매자가 인터넷 상품 판매를 위한 통신판매업 신고를 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판매업자 신고를 하지 않으면 ‘개인 간 거래’로 분류돼 일반적인 상법의 적용만 받는다. 본래 전자상거래를 하는 판매자는 상호 및 대표자 성명, 영업소 주소, 사업자등록번호, 이용약관 등을 공개해야 한다. 하지만 통신판매업자 등록을 하지 않은 블로그 마켓은 이러한 의무로부터 자유롭다. 이를 통해 블로그 마켓 판매자들은 납세의 의무에서 벗어나게 된다.

블로그·SNS 마켓은 가격과 상품 문의, 주문을 모두 ‘비밀 댓글’로만 받는다. ‘비밀 댓글’은 가장 손쉬운 탈세 창구가 되기도 한다. 판매자들은 매출을 감추기 위해 소비자가 제품가격과 문의 사항, 구매 여부를 비공개 댓글로 달도록 한다. 거래내역이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으니 수억 원대 매출에도 ‘간이과세자’(연 매출 4,800만 원 이하 사업자)로 등록해 세금 혜택을 받는 판매자도 많다.

현금영수증 미발급이나 현금 결제 유도도 탈세 꼼수가 된다. 판매자는 특정 물품을 시중보다 싸게 판매한다는 명목으로 부가가치세를 가로챈다. 구매자가 카드결제를 요구할 경우 카드 수수료를 소비자가 부담하게 하거나 무통장입금 시 할인 혜택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이윤을 취하는 것이다.

블로그마켓이 불공정 거래를 통한 갑질과 탈세의 온상이라는 지적은 끊이지 않고 있지만, 불법 판매자 단속은 쉽지 않다. 한국소비자원은 소비자거래법에 의거해 활동하기 때문에 소비자가 개인 신분의 판매자와 거래한 경우 제재할 권한이 없다. 또한, 공정거래위원회나 국세청도 블로그·SNS 마켓 실태를 모두 파악할 수 없어 신고나 제보가 들어온 건만 관리하는 데 그치고 있다. 

3.

추운 계절이 돌아왔다. 사람들이 하나둘씩 두툼한 겉옷을 찾기 시작했다. 패딩 속에 든 것이 오리 털이라는 직원의 말에 사람들은 저마다 고개를 끄덕인다. 이처럼 오리 털은 파카가 따뜻하고 질이 좋다는 보증수표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오리 털 파카에는 경악을 금치 않을 수 없는 뒷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바로 오리 털이 살아있는 오리의 가슴 털을 마구 뜯어내는 방식으로 채취된다는 것이다.

겨울 패션의 대표적 소재인 모피는 거위, 밍크, 여우, 캐시미어 염소, 앙고라 토끼, 양, 소, 앙고라 염소, 라쿤 등을 비롯한 '모피동물'의 털 가죽이다. 거위 털 및 오리 털 패딩 모자에 달린 라쿤 털 장식, 여우 털 코트, 캐시미어 코트 등이 모피를 소재로 한 의류다. 이런 의류가 문제가 되는 이유는 모피가 얻어지는 과정이 매우 잔인하기 때문이다.  

부유한 여성의 상징인 밍크코트도 끔찍한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다. 죽지 않을 만큼 밍크의 머리를 때려 기절 시킨 다음에, 산 상태에서 가죽을 벗겨낸다. 라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토록 잔인한 방식을 택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죽은 후에는 가죽이 경직돼 벗기기 어렵기 때문이다. 양털을 얻는 방식도 참혹하다. 어린 양은 인간에게 깨끗한 털을 제공하기 위해 피부와 살점을 마취 없이 도려내는 ‘뮬레징’을 당한다. 가방과 지갑을 만들기 위해 뱀 가죽을 얻어내는 방식도 마찬가지다. 뱀은 물을 잔뜩 먹고 부푼 채 껍질이 벗겨진다. 껍질이 벗겨지는 동안 살아있다가 쇼크와 탈수로 서서히 죽어간다.

잔혹한 현실에 사람들은 점점 모피를 소비하지 않고, 인조 모피로 대체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모습은 꼭 동물에게 고통을 주지 않기 위해 우유나 달걀까지 먹지 않는 가장 엄격한 채식주의자 ‘비건’과 닮아있어, ‘비건 패션’이라 불린다. 비건 패션의 성장에 따라 유명 브랜드 구찌(GUCCI)는 2018년부터 모피 사용 중단을 선언해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이 외에도 켈빈 클라인, 자라, H&M 등의 브랜드도 모피를 사용하지 않는 동향에 동참하고 있는 중이다.

4.

한국의 교복은 15세기 성균관의 ‘청금복’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개화기, 서양에서 온 선교사를 통해 여학교를 중심으로 검은 치마에 흰 저고리가 교복으로 정착됐다. 이후 일제에 의해 서구식 교복이 도입됐으며 이는 1970년대까지 이어졌다.

서구의 교복은 1552년 영국의 사립학교에서 처음 입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서구권에서는 정장의 발달과 교복은 같은 노선으로 발전했다. 탈아입구를 표방하며 서양을 모방하던 일본은 이 시기 서양 옷을 마구잡이로 들여와 변형해 교복으로 채용했다. 일본 남학생 교복인 ‘가쿠란’은 한자로 ‘화란’, 즉 네덜란드 옷이라는 뜻이다. 물론 실제로 네덜란드에서 기원한 옷은 아니지만, 당시 일본은 서양 물건을 모두 네덜란드를 통해 들여왔기 때문에 그러한 이름이 붙었다. 일본에서 여학생 교복으로 자리잡은 ‘세라복’은 19세기 영국 해군이 입던 세일러복이 그 기원이다. 군복이 여성용 옷이 된 경위는 지금 기준에서 상당히 우습다. 영국 상류층을 중심으로 자신의 자녀에게 세일러복을 입히는 것이 유행했고, 일본은 이를 ‘적당히 절도 있으며 활동하기 편한 옷’으로 인식해 교복으로 채용했다.

일본의 침략을 받은 여러 아시아 국가는 가쿠란과 세일러복을 교복으로 채용했으며 한국에서는 1970년대까지 이어졌다. 정작 일본에서는 이전부터 가쿠란과 세일러복이 ‘제국주의적’이라는 이유로 정장을 교복으로 도입했다. 한국은 1980년대에 이르러 최규하 대통령이 교복 다양화를 선언하면서 현재와 같거나 오히려 더 화려한 교복으로 변하게 된다. 왜색에 대한 거부감과 불편함으로 현재 한국에서 가쿠란과 세일러복을 교복으로 채용한 학교는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교복 다양화가 진행된 지 2년만에 전두환 정부는 대중 유화책과 다양화로 비싸진 교복에 대한 대책으로 두발 자유와 교복 폐지를 선언해 1986년까지 교복이 사라진 적이 있었다. 그러나 학생 탈선 등을 이유로 학교장 재량에 따라 교복이 다시 등장했다. 학생 탈선을 방지하자는 목적이 있었기 때문에 이 시기 교복은 1980년대보다 더 보수적인 디자인을 하게 됐고, 이는 학생 인권 보장 시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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