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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단 10분 앞도 내다볼 수 없다제4차 산업혁명의 무법자, 암호화폐
신지은 일러스트 기자 goe005@naver.com

제4차 산업혁명의 무법자, 암호화폐

2009년 10월 5일, 한 채굴자가 1비트코인(BTC)의 환율을 0.00076 미국달러로 공시한 이후 2017년 11월 말 최고가 9,000 달러(한화 약 990만 원)를 넘겼다. 8년 새 약 1,900만 배 오른 금액이다. 비트코인이 여러 차례 폭락사례를 겪을 시기마다 일부 경제전문가들은 비트코인을 포함한 암호화폐의 몰락을 점쳤지만, 최근 2년간 비트코인의 시세 그래프는 끊임없이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은행을 비롯한 세계 곳곳의 중앙은행 및 정부는 비트코인과 암호화폐를 통화로 인정하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비트코인과 암호화폐는 실물 거래에도 사용되는 등 화폐로서 역할을 행하고 있다.

암호화폐? 가상화폐?

암호화폐는 암호를 사용해 새로운 ‘코인’을 생성하고, 거래를 투명하고 안전하게 진행할 수 있게 해주는 가상화폐의 일종이다. 많은 사람들이 암호화폐와 가상화폐를 혼동해서 쓰고 있지만 둘은 엄연히 다른 개념이다. 넓은 의미에서 봤을 때, 본위화폐가 아닌 이상 현재 우리가 쓰는 모든 화폐마저도 일종의 가상화폐에 해당한다. 일반적으로 가상화폐는 화폐의 개념을 구현한 모든 것을 포함한다. 실제 화폐는 아니지만 물물 매매에 사용되는 사이버머니, 결제 포인트 등도 가상화폐에 해당한다.

반면 암호화폐는 가상화폐의 일종이지만 다른 화폐와 차이점이 있다. 바로 종속성의 유무다. 암호화폐는 화폐를 발행하고 관리하는 주체가 중앙집권적이지 않다. 암호화폐를 사용하는 모두가 관리자가 되는 셈이다. 발행 역시 특정 발행주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금이나 은처럼 처음부터 총량은 제한돼있고 이를 ‘채굴’해서 쓰는 것이다. 대표적인 암호화폐인 비트코인은 2,100만 개로 제한되며 현재까지 약 1,670만 개가 채굴된 상황이다. 개발자들은 2100년 즈음 채굴이 완료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암호화폐가 미치는 영향

경제: 2012년 12월, 유럽에서 비트코인 거래소가 은행업 허가를 취득한 이후 이듬해 8월 독일 재무부에서 비트코인을 합법적인 화폐로 인정했다. 이후 영국을 비롯한 일부 유럽 국가에서 비트코인을 단순한 재산이 아닌 화폐로 공식 인정하고 있다. 2015년 유럽사법재판소는 ‘비트코인을 현금으로 바꾸는 거래는 부가세 부과 대상이 아니다’라고 판결한 바 있다. 다만. 미국, 캐나다를 포함한 여러 국가에서 세금을 매기려는 등 화폐가 아닌 자산으로 보는 경우도 있다.

한국은행은 2013년 ‘통용성 제약과 불안정한 화폐 가치로 비트코인은 향후에도 화폐 역할을 수행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며 암호화폐를 화폐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러나 4년이 지난 현재도 비트코인의 위상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결국 지난 7월 31일 암호화폐의 거래, 취급에 관한 내용을 포함한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이 발의되는 등 제도화의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다만 이 개정안에는 암호화폐가 화폐인지 자산인지는 명시 돼있지 않다.

암호화폐가 실제 상품구매로 이어진 첫번째 사례는 2010년이었다. 미국 플로리다 주에 거주하는 ‘Laszlo’라는 비트코인 유저는 5월 18일 ‘(환전을 하지 않고) 비트코인으로 바로 물건을 살 수 있는지 실험해보고 싶다면서 ‘누구든 좋으니 1만 비트코인에 피자를 가져다 달라’는 글을 올렸다. 당시 1만 비트코인은 약 41 달러였고 당시 라지 사이즈 피자 두 판의 가격은 약 30 달러였다. 글을 올린지 4일째 되던 22일, Laszlo는 파파존스 라지 피자 두 판을 수령했다며 거래 송금 내역과 함께 인증사진을 올렸다. 5월 22일은 비트코인 이용자들 사이에서 ‘피자데이’라고 불리며 기념되고 있다. 2017년 11월 현재 시세로 1만 비트코인은 약 9천만 달러(한화 약 990억 원)에 달한다.

IT업계: 암호화폐는 기존 화폐와는 다르게 고도의 보안기술이 요구되며 컴퓨터와 뗄 수 없는 관계에 있기 때문에 IT업계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친다. 암호화폐를 채굴하는 과정에서 고성능 프로세서의 연산 능력이 요구된다. 복잡한 연산을 처리하는 데 특화된 CPU보다는 단순한 연산을 더 빠른 속도로 처리하는 데 강점을 보이는 GPU(그래픽 처리 유닛)가 더 유리하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그래픽카드가 잠시 품귀현상을 겪었다. 현재 GPU 시장은 엔비디아와 AMD가 양분하고 있는데, 비트코인 초창기에는 가격이 조금 더 저렴하고 효율은 더 높은 AMD의 그래픽카드가 먼저 동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암호화폐의 특성상 채굴량이 늘어날수록 더 많은 양의 연산을 요구하는데다 4년 주기로 한 번 채굴할 때 받는 코인의 양이 절반으로 줄기 때문에 더 이상 GPU를 이용한 채굴은 경제성을 잃게 됐다. 이로 인해 전용 채굴기가 등장했으며, 암호화폐 채굴기 시장도 점차 커지고 그 성능도 날이 갈수록 발전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래픽카드 품귀현상은 최근까지도 지속됐는데, 이는 비트코인의 뒤를 이어 나타난 수많은 신생 암호화폐 때문이다. 올해 상반기 그래픽카드 제조사는 채굴 전용 제품 출시를 발표하는 등 파장은 여전하다.

암호화폐에서 쓰이는 암호화 기술과 블록체인 개념은 여러 기업의 관심을 받고 있다. 비트코인을 비롯한 많은 암호화폐가 쓰고 있는 블록체인 개념은 제4차 산업혁명의 주역이 될 사물인터넷 분야에서 쓰일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암호화폐에서 채굴은 일정한 주기마다 암호화된 해시 함수로 이뤄진 ‘블록’에 맞는 해시를 찾을 때까지 함수를 대입하는 과정을 뜻한다. 블록에는 새로운 블록이 발견되기 전에 모든 사용자의 거래내역이 기록 돼있다. 이 거래내역은 블록을 가지고 있는 모든 사용자에게 일괄적으로 전송되므로 수정〮누락이 불가능하다. 이 점이 암호화폐의 투명성을 보장해줌과 동시에 신뢰성을 갖게 한다. 거래내역의 임의 수정〮누락이 원천적으로 봉쇄된다는 점은 인터넷이 내장된 사물간 통신에도 투명성과 신뢰성을 보장해주기 때문에 IT기업들은 암호화폐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일례로 삼성전자는 이더리움(비트코인에 이어 두번째로 거대한 암호화폐) 기업동맹에 참가하고 있다. 이더리움 기업동맹(EEA)에는 인텔, 마이크로소프트 등 내로라하는 IT기업들도 참가하고 있으며, 향후 200개 이상의 기업이 참여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한다.

암호화폐를 통화로 인정해야 하나?

암호화폐가 등장한지 8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통화로 인정해야 하는지에 관해 의견이 분분하다. 대다수의 국가가 자본주의 체제를 따르고 있는 상황에서 화폐 개념에 대한 재고까지 필요한 상황이다.

암호화폐를 통화로 인정하면 안된다는 입장에서는, 암호화폐의 ‘환율’이 지나치게 유동적이고 화폐 단위가 아닌 투자나 투기 대상의 자산에 더 가깝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암호화폐를 통화로 인정해야 한다는 사람들은 이미 달러화나 유로, 엔화 등 각국의 통화 역시 투자나 투기 목적으로 거래되고 있으며, 역사상 급격한 인플레이션이나 디플레이션은 계속 있어왔기 때문에 암호화폐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주장한다.

기존 화폐와 암호화폐의 가장 큰 차이점인 중앙집권화된 조직의 유무에 관해서도 의견이 팽팽하게 맞선다. 한쪽에서는 정부처럼 화폐의 신용을 보장해줄 조직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암호화폐는 가치를 인정받을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한편, 오히려 중앙집권화된 조직이 화폐의 투명성과 시장자유를 방해한다며 암호화폐가 기존 화폐에 대한 대안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과는 다르게 암호화폐는 모든 이용자가 위조가 불가능한 거래내역을 블록체인으로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기존 화폐보다 투명할 수밖에 없다. 실제 인물과 암호화폐 이용자를 일치시킬 수만 있다면 모든 자금의 흐름을 추적할 수 있게 된다. 현재 가상화폐의 익명성은 생태계가 ‘무법’ 상태이기 때문에 보장되는 것이다. 화폐 내지는 확실한 자산으로 제도화를 거치게 되면 작정하고 신분을 위조해 블록을 생성하지 않는 한 사실상 실명제로 운영된다는 것이다.

각국 정부나 개인이 암호화폐를 바라보는 관점은 다르겠지만, 이미 암호화폐는 실생활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한국은 암호화폐 거래가 가장 활발한 국가 중 하나다. 전세계에서 유통량이 제일 많은 암호화폐 거래소인 빗썸(bithumb)이 한국에 위치해 있으며,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거래소 중 한국에 위치한 곳이 상당수다. 암호화폐는 이미 세계적인 이슈다. 현재 기축통화로 지위를 누리고 있는 미국달러의 범용성을 위협하고 있을 정도로 보편화된 암호화폐가 앞으로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는 아무도 모른다. 암호화폐는 SF소설에나 나올 법한 만국공통 기축 통화의 위치까지 올라설 수도 있지만, 제2의 튤립파동으로 기록될 수도 있다.

 

최창영 기자  12163094@inha.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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