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발전은 정치와 뗄 수 없다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세계를 살펴보면, 민주주의가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해당 국가의 재정상태, 문화수준이 같이 올라가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 역시 1987년 6.29선언 이후 문화, 경제적으로 큰 성장을 이뤘다.

자유를 갈망했던 한국인은 군부독재에 저항했고, 마침내 민주화를 이뤄냈다. 지금까지 선거의 승패는 매번 갈렸으며 정권교체도 그리 특이한 일은 아니었다. 심지어는 대통령 자리에 있던 “그 사람”을 탄핵하기도 하는, 아시아에서 가장 민주주의를 잘 실현하는 나라가 됐다.

반면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모습을 보이고 “선진국”도 존재한다. 바로 이웃나라 일본이다. 일본에서 언론자유는 해가 갈수록 보장받지 못하고 있으며, 정치 무관심은 이미 굳어진 현상이다. 아주 잠깐을 제외하곤 자민당과 공민당의 장기집권은 당연한 일이 돼버렸다. 미국으로부터 민주주의 체제를 도입한 일본은 왜 이런 길을 걷게 됐을까?

사실 일본 사회도 저항할 줄 알던 시기가 있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도 1960년대는 학생운동이 활발했다. 일본 학생들은 하루가 멀다하고 연설이나 대자보를 통해 미일상호안보조약, 평화헌법 위배에 저항했다. 일제강점기 당시 공안이 한국에게 했듯, 일본은 자국민에도 야쿠자를 동원해 탄압했으며 이에 저항하며 등장한 단체가 전학공투회의, 이른바 전공투다.

조직화된 학생단체가 탄생하자, 이전보다 더욱 적극적인 활동을 펼쳤다. 그러나 과유불급이라고 했다. 적극적이다 못해 과격해진 전공투는 극좌 성향을 띤 사람들을 제외하곤 모조리 빠져나가게 됐다. 수차례 유혈사태가 발생한 이후 일본 사회는 시민운동에 대해 염증을 갖게 됐으며 더 이상 정치적 견해를 밝히려고 조차 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고 말았다. 극우와 극좌, 양극단의 충돌이 정치 참여를 후퇴시킨 것이다.

필자는 국내 일부 운동권이라고 불리는 단체에서 1960년대 전공투의 모습을 보기도 한다. 그들은 보통의 시민들이 참여하는 대규모 시위에 동참해 자신들만 공감하는 사안을 주장해 시위대 전부가 자신들과 같은 편인 것처럼 보이게 한다. 그들의 사상에 공감하지 않는 시민들도 공통된 하나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함께하게 된다. 그러나 목표를 달성하고 난 뒤에도 일부 운동권은 계속 공감 받지 못하는 자신들의 요구를 주장하는 모습을 보인다. 심지어 이들을 비판하는 목소리에 대해서는 “너희가 잘 몰라서 그런다”며 가르치려고 들거나, 세력을 분산시키려고 하는 것이냐며 되려 화를 내기도 한다.

바로 얼마전에도 이런 일이 발생했다. 지난달 28일 박근혜 퇴진 촛불 집회 1주년(2016년 10월 29일에 제1차 집회가 있었다)을 맞아 당시 촛불을 들었던 일부 단체에서 청와대를 향해 시위를 하자고 주장한 것이다. 작년 겨울에 광장을 지켰던 시민들 중 일부는 “우리가 저항했던 대상은 지금 청와대가 아니라 국회에 있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필자가 우려하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부터 “광화문이 아니라 여의도에서, 촛불 집회가 아니라 촛불 파티를 하자”는 제안이 있었고, 온라인 상에서 일파만파 퍼졌다. 온라인을 통해 알음알음 소식을 전해들은 사람 중 약 1만 명이 모였다고 전해진다. 조직화된 단체 없이 개인의 목소리가 모인 것이다. 결국 이 날 광화문 광장과 여의도로 사람들이 모였고 이들은 각자 목소리를 냈다. 작년 겨울 그랬듯, 무력충돌은 전혀 없었다.

주장의 옳고 그름을 따지려는 것이 아니다. 광화문에서 시위를 한 사람도, 여의도에서 파티를 한 사람도 각자 신념에 따라 행동했을 것이다. 다만 필자가 생각하는 의의는 1960년대 전공투와는 달리 한국 시민들은 자기주장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에 있다. 단순히 불참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주장을 펼치며 “과거에는 함께 했지만 모두 같은 생각을 가진 것은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남겼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의견이 존중되고 대중이 침묵하지 않는 한, 민주주의는 아직까지 가장 위대한 체제이다.

최창영 기자  12163094@inha.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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