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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존엄사를 통해 본 웰다잉 사회’
신지은 일러스트 기자 goe005@naver.com

 

지난달 23일부터 우리나라에서도 ‘연명의료결정법’이 허용됐다. 이는 내년 정식 시행을 위해 내년 1월 15일까지 시범사업으로 진행된다.

‘연명의료결정법’은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가 연명의료의 시행 여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때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란, 회생의 가능성이 없고, 치료에도 불구하고 회복되지 아니하며, 급속도로 증상이 악화돼 사망에 임박한 상태라고 정의돼있다. 연명의료에 대한 환자의 의사는 환자가 작성한 연명의료계획서나 사전 연명의료의향서를 통해 확인된다. 연명의료계획서는 병의 말기 상태에 있는 환자가 작성하는 것이며, 사전 연명의료의향서는 말기 환자가 아닌 상태에서 미리 작성하는 것이다. 만약 뇌사 등의 상황으로 환자의 의사를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연명의료계획서·사전의료의향서도 없는 경우에는, 환자 가족 2명의 진술을 바탕으로 연명의료 시행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 법은 환자의 결정을 최대한 존중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보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연명의료결정법(이하 존엄사)은 흔히 ‘존엄사’라고 불린다. 많은 사람들이 존엄사와 ‘안락사’를 혼동하곤 하는데, 각각의 개념은 확연히 다르다. 존엄사는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방법을 말한다. 연명치료는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처럼 치료 없이 임종과정의 기간만을 연장하는 방식이다.

이에 반해 안락사는 약물 투여나 필수적인 영양공급 중단 등 인위적인 행위를 통해 진행된다.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이하는 존엄사와 달리 안락사는 환자의 생명을 ‘의도적’으로 단축시켜 사망에 이르게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현재 존엄사는 나라마다 허용되는 범위와 형태가 제각각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판례를 통해 아주 예외적인 사례에만 존엄사를 허용해왔다. 네덜란드는 2002년부터 세계 최초로 존엄사를 허용한 국가다. 영국의 존엄사는 판례를 통해서만 용인되고 있다. 미국은 주별로 허용범위가 다르다. 전체 주 중 40개 주만 존엄사를 허용하고 있다. 일본은 법으로는 금지돼 있으나 환자의 고통, 본인의 의사 등을 고려해 존엄사와 소극적 안락사의 허용 가능성을 열어뒀다.

존엄사의 도입은 우리 사회에 새로운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바로 잘 죽는 사회, 일명 ‘웰다잉사회’의 본격적인 도래다.

 

1.  웰다잉사회의 등장

‘웰빙(well-being)’이 말 그대로 잘 살기 위한 방법이라면, 웰다잉(well-dying)은 잘 죽는 방법이다. 웰다잉사회에서 잘 죽는 방법이란, 죽음을 당하지 않고 맞이하는 것을 말한다. 이를 위해서는 생의 마지막을 준비하고 마무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러한 웰다잉사회는 고령화와 1인 가구의 확대 현상이 심화됨에 따라 등장한 개념이다. 고령화로 인해 노년 인구가 늘면서 ‘죽음’에 대한 사회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높아졌다. 또한 1인 가구의 확산은 고독사 등의 사회 문제를 두드러지게 했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단순히 죽음 자체뿐 아니라 죽음의 질을 높이는 것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에 맞춰 한국고용정보원에서는 미래에 각광받을 신 직업군으로 노년 플래너, 그린 장례지도사 등과 같은 웰다잉 관련 직업들을 뽑고 있다. 한국보다 먼저 초고령사회(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전체의 20% 이상인 사회)에 진입한 일본의 경우에는 ‘슈카쓰(終活)’라는 웰다잉 산업이 성행 중이다. 시신 호텔, 웰다잉 박람회, 묘지 자리를 찾기 위한 여행 패키지 등의 슈카쓰 산업은 현재 약 54조 원 규모이며 꾸준히 성장 중에 있다. 우리나라는 2026년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의 웰다잉사회 모습은 우리에게 멀지 않은 미래일 수 있다.

 

2. 웰다잉사회의 특징

(1)죽음 이전의 과정에 대한 준비

웰다잉사회에서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에는 특징이 있다. 과거에는 수의를 준비하거나 묏자리를 알아보는 등 ‘장례 문화’에만 국한돼 있었다. 삶과 죽음 이후의 과정에 대한 준비만 존재할 뿐, 정작 죽음에 직면하게 되는 중간 과정에 대한 준비는 빠져있던 셈이다.

그에 반해 웰다잉사회에서는 죽음 이후뿐 아니라 죽기 이전의 시기, 심지어는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에 대한 부분까지 고민이 이뤄진다. 특히 죽기 이전의 시기를 준비하는 웰다잉 산업은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노후 준비학교 형식의 프로그램에서는 남은 인생 설계에 대한 교육을 한다. ‘엔딩노트’등을 통해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기도 한다. 또 유언장 작성에 필요한 법률 정보 등의 교육 및 상담도 이루어지고 있다. 실제 삶에서 직면할 수 있는 부분에서 교육이 이루어지는 방식이다.

이혜원 각당복지재단 사전의향서 사업본부팀장은 “웰다잉은 죽음을 준비하는 게 아니라 잘 사는 방법을 찾는 과정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처럼 실질적인 삶의 문제를 다루는 웰다잉 교육은 젊은 세대들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실제로 서울 마포구 건보공단 본부에서 진행한 웰다잉 강의의 경우, 수강 대상자를 2~30대로 한정했는데도 정원이 다 채워졌다. 아직 웰다잉사회의 초기단계에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분명 의미가 있는 사례다.

 

(2) 죽음의 순간에 대한 준비

웰다잉사회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에 대한 준비는 국가 차원의 존엄사나 안락사 같은 사회적 제도를 바탕으로 이뤄진다. 이러한 사회적 제도가 바탕이 됐다는 전제에서, 사람들은 죽음을 맞이하는 방법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이처럼 개인이 웰다잉 방법을 적극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가 겪어야 했던 문제들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2010년 영국 경제지 이코노미스트 산하의 연구소인 EIU가 OECD 회원국을 포함한 40개국을 대상으로 ‘임종을 앞둔 환자가 얼마나 품위 있게 죽음을 맞이하는지’를 조사해 작성한 ‘죽음의 질 지수’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죽음의 질 지수는 40개국 중 32위에 그쳤다.

이는 우리나라의 완화의료 정책, 즉 임종을 앞둔 환자의 통증과 그 가족의 심리적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 의료 시스템의 수준을 보여주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죽음의 질 지수가 상대적으로 낮은 이유는 임종과정의 환자들 중 대다수가 연명치료를 선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건강보험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선 말기 암으로 판정받은 사람의 97%가 항암치료를 받고, 호스피스 치료보다 5배 많은 비용을 치르며 연명치료를 이어나간다고 한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연명치료는 치료효과 없이 물리적으로 임종 기간만 늘리는 방식이다. 이로 인해 임종과정의 환자들은 병상에서 항암제 투여와 주삿바늘로 극심한 고통 속에 몸부림치며 생을 마감한다. 환자를 옆에서 지켜보는 주변인들의 고통 또한 문제다. 기약 없는 치료에 대한 비용의 지불로 인해 환자의 가족들은 경제적인 어려움에 시달린다. 이처럼 지금까지의 임종 과정의 환자들은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받으며, 자기 자신뿐 아니라 주변인들의 고통에 대한 죄책감을 견뎌야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웰다잉사회’가 도래하며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수 있게 된 것은 품격 있는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이 됐다.

 

4. 존엄사 시행 후 우리나라는

존엄사의 허용은 우리나라가 웰다잉사회로의 발걸음을 힘차게 내딛는 계기가 됐다. 존엄사 시범 사업 개시 이틀 만에 여성 말기 암 환자 한 명이 연명의료계획서를, 건강한 시민 37명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했다는 것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것에 대한 한국 사회의 긍정적인 반응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도 이러한 발걸음을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극복해야 할 문제점들이 남아있어 보인다.

먼저 존엄사에 대한 홍보가 적극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지난 4월, 보건복지부와 국민건강보험의 의뢰 하에 사전연명의료의향서와 연명의료계획서에 대해 들어본 적 있는지에 대한 설문조사가 진행됐다. 이에 대해 환자와 보호자 250명 중에는 66.8%가 아예 모르고 있었으며, 일반인 500명 중에서는 79.6%가 모른다고 답했다. 또한 의료진 250명 가운데 61.2%가 모르고 있어서 의료진의 인식 수준도 심히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명의료계획서와 사전연명의료지향서가 지출됐다고 하나, 그것이 국내의 모든 사람이 존엄사에 대해 잘 알게 됐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존엄사가 허용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존엄사에 대한 욕구가 큰 나라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14년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65세 이상의 노인 10명중 9명 이상이 무리한 연명치료를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러한 욕구가 단지 존엄사에 대해 모른다는 이유로 실현되지 못 하는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에 대처하는 존엄사에 대한 교육과 홍보가 요구된다.

또한 존엄사가 악용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대처 또한 필요하다. 존엄사의 합법화는 충동적 자살의 수단이나, 장기 매매 등 상업적 목적으로 악용될 가능성을 가진다. 무엇보다 외부적 요소로 인해 환자 스스로의 의지에 반하는 선택을 하게 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가족의 경제적 부담 등으로 심리적으로 압박을 받아, 원하지 않는 죽음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국가는 의사 판단의 적정성을 철저히 확인하는 등 절차의 재검토를 통해, 존엄사를 허용하는 제도적 기준을 철저하게 세우는 것이 요구된다.

이처럼 뚜렷한 명암을 가지고 있는 존엄사에 대해서 대중들의 의견 또한 갈리고 있다. 독거노인에 대한 복지를 제공하고 있는 대한어머니협회의 관계자는 존엄사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문에 찬성의 입장을 내비췄다. 관계자는 “제가 만나는 독거노인분들의 경우에는 삶에 대한 의지가 확실하신 분들도 있지만, 어느 정도는 해탈의 태도를 지니고 있는 분들이 많다. 그러한 분들이 죽음을 원한다면 그것을 반대할 수는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을 밝혔다. 한편 다른 시민은 존엄사에 대해 “노인분들이 무심한 태도를 보인다고 해도, 삶에 대한 의지를 갖고 계실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분들에게 있어 존엄사라는 제도는 그들을 압박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며 제도에 대한 우려의 뜻을 밝히기도 했다.

5. 맞이하는 죽음의 시대

우리나라의 웰다잉사회는 아직 초기단계다. 우리나라의 사람들에게 웰다잉의 개념은 생소한 것이다. 그러다보니 최근에야 허용된 존엄사는 기대의 반응만큼의 우려의 시선을 수반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에 따라 웰다잉사회로의 전환은 피해갈 수 없는 과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 나은 웰다잉 방법에 대한 논의를 통해 시대의 흐름에 발맞추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한 노력을 통해 웰다잉사회가 지향하는 ‘맞이하는’ 죽음의 시대를 어서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배주경 기자  skwnru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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