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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치] 옛것 위에 차곡차곡 더해진 제주의 새로운 이야기들
옛 가시초등학교의 자리에 들어선 자연사랑미술관에는 학교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다.

제주의 폐교와 창고, 식당, 그리고 낡은 가정집까지 오래된 폐건물들은 각자의 개성을 품은 문화공간이 된다. 옛 공간이 지닌 오랜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감싸 안고 탄생한 새 공간에는 투박함에서 오는 따뜻함이 있다. 과거의 자취 위로 다양한 이야기들이 차곡차곡 더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폐교에서 피어난 새로운 꽃, 자연사랑미술관

도시화로 인해 농촌의 작은 분교는 교육 현장에서 벗어나 폐교가 되곤 한다. 그러나 교문을 닫았던 제주의 옛 가시초등학교는 포토 갤러리 자연사랑미술관이 돼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변신했다. 다른 미술관과 달리 자연사랑미술관은 정겨운 돌담 교문으로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모래 먼지가 나는 운동장에는 아직도 구령대와 미끄럼틀이 있고, 국민 교육 헌장 전문이 담긴 비석이 우뚝 서 있다. 전시장이 된 교실과 발걸음에 따라 삐걱대는 나무 복도 또한 오래된 학교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학생들을 떠나보낸 옛 가시초등학교의 빈 건물은 제주의 풍경과 제주인의 생활 모습이 담긴 사진들로 채워져 있다. 옛 학교 졸업생들의 사진부터 겨울 바다에서 물질하는 해녀들의 사진까지 그곳에는 제주의 역사가 생생하게 담겨 있었다. ‘학교’라는 이름이 더 어울리는 듯한 작은 시골 분교의 전시장과 과거 제주인들의 생활을 여과 없이 담아낸 흑백사진들이 한데 어우러짐에 따라 그 시절의 모습이 감동이 되어 고스란히 전해졌다.

새로운 이야깃거리와 신선한 감각으로 채워진 미래책방, 한켠에는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도 마련돼있다.

도심에 공존하는 옛것의 감각, 미래책방

 

‘수화식당’, ‘미래책방’. 두 개의 간판이 나란히 붙어있다. 이곳은 식당인 것일까, 책방인 것일까. 원래는 식당이었던 곳의 간판을 그대로 남겨 둔 채 ‘미래책방’ 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덧붙여 식당이 책방으로 변신했다. 외관에서 풍기는 독창성과 특유의 신선한 감각만큼이나 알찬 책방으로 입소문이 난 곳이었다.

제주의 도심 속에서 옛것의 모습을 간직한 채 남아있는 이곳은 높은 건물들 사이에서 더욱 밝게 빛나고 있었다. 미래책방에는 다른 대형서점에서는 쉽게 찾을 수 없는 독립 출판물을 비롯해서 제주에 관한 책과 여행지에서 읽기 좋은 가볍고 따뜻한 책이 많았다. 제주만의 특별한 감성을 위해 제주를 찾았던 여행객들에게 과거 제주의 도심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곳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사이에 존재하는 개성이 넘치는 제주의 문화가 더해진 이곳 미래책방에는 새로운 이야깃거리가 있었고. 그 문을 두드리는 새로운 사람들이 있었다.

 

투박하지만 즐거운 갤러리 카페, 소다공

 

서귀포시의 작은 마을 수산리에 가면 지붕에 굴뚝이 달린 특이한 외관의 갤러리 카페가 있다. 30년 넘게 버려져 있던 낡은 감귤 선과장을 개조해 만든 카페 소다공이다. 기존 폐창고의 거친 느낌을 그대로 살린 천장과 내부 구조가 과거의 투박함을 유지하고 있음과 동시에 앤틱한 소품들이 창고 내부를 아늑하게 만들어 줬다. 식사 후에 간단한 다과와 커피를 즐기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자유로운 분위기가 방문객들을 끌어들이고 있었다. 또한. 카페 이곳저곳에 놓여 있는 예술작품들이 매력적인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어 다채로운 분위기가 형성됐다. 창고 곳곳에 젊은 작가들이 그들의 기획 의도대로 전시한 작품들이 있었고, 방문할 때마다 새로운 테마의 전시를 무료로 접할 수 있는 것이 소다공의 특별한 매력이었다.

오랫동안 폐공간이었던 감귤 선과장은 이제 청춘이 가득한 예술관이 됐다. 또한, 이곳저곳에서 찾아온 관광객들부터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생기 있는 공간이 됐다. 그렇게 소다공은 오랜 세월의 흔적 위로 쌓인 새로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공간이었다.

제주의 자연을 그대로 담아낸 피자아일랜드, 올레길을 걷는 관광객들에게 작은 쉼터가 된다.

슬레이트 지붕 아래 펼쳐진 작은 제주, 피자아일랜드

 

제주 해안선을 따라 달리다 보면 한적한 바닷가 동네, 온평리가 나온다. 그리고 올레길을 따라 늘어선 가정집들 사이에 자그마한 피자가게 피자아일랜드가 있다. 피자아일랜드는 낡은 가정집을 조금씩 바꿔서 만든 만큼, 가정집의 모습이 많이 남아있어 온평리 특유의 한적한 분위기에 어울리는 곳이었다. 주변 주택들과 오랫동안 한 곳에 자리한 공간답게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길을 쭉 걸어 내려오며 찾는 재미도 있었다. 피자아일랜드는 오래된 주택의 천장을 그대로 놔두고 건물의 골조를 살려낸 따뜻한 공간이었고, 제주 전통 가옥의 특징 중 하나인 낮은 돌담이 함께하고 있었다.

그곳에서는 ‘집’이 가지는 편안함과 안락함이 묻어났고, 지금은 많이 사라진 제주 전통 가옥의 특징을 이어가고 있는 특별함이 있었다. 피자가게 자체로도 느긋한 제주의 감성이 가득했지만, 마당 앞으로 펼쳐진 제주 바다가 여유로움을 더해주고 있었다. 제주 올레길을 걷는 관광객들에게 잠시 쉬었다 갈 벤치와 간단한 먹거리를 제공해주는 이곳은 제주의 나눔 정신을 간직한 작은 쉼터이기도 했다. 오래된 바닷가 동네의 슬레이트 지붕 주택과 낮은 돌담길, 새로운 사람을 맞이하는 따뜻한 정, 그리고 제주의 푸른 바다가 함께 하는 이곳은 ‘제주’라는 말이 가장 어울리는 곳이 아니었나 싶다.

 

감각적인 전시장과 독창적인 콘셉트를 가진 서점, 느긋하고 따뜻한 정이 있는 작은 피자가게까지 예스럽기 때문에 더욱 멋스러운 곳들에 다녀왔다. 지나간 세월을 그대로 품고 있는 폐건물들은 올드함과 클래식함이 함께 공존하는 공간이 됐다. 지나온 제주의 역사를 함께한 곳에는 제주의 따뜻한 정이 그대로 남아 방문하는 이들에게 또 다른 감동을 선사하기도 했다.

쾌쾌한 먼지는 살짝 걷어내고 아련한 추억은 고스란히 남겨 놓고 있었던 곳들에는 자연스레 문화가 모여들었다. 세월의 흔적이 남아 있는 부분은 그 장소를 찾는 사람으로 하여금 또 다른 추억을 상기시켜준다.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서 중심을 잡기가 힘이 드는 모두에게, 제주 특유의 느긋한 행복을 여실히 느껴볼 수 있는 이곳들을 소개하고 싶다. 때때로 오래된 것들 속에 감싸진 채 묵묵한 편안함을 즐기는 것은 엄청난 마법이며, 동시에 훌륭한 해결책이 되기 때문이다.

 

 

임현지 기자  ㅣ.hyeonge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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