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자는 아침을 마치기도 전에 깨칠 것이오. 어리석은 자는 열흘이면 배울 수 있다"

지금으로부터 574년 전, 제 나라의 백성을 아끼고 사랑했던 왕은 글을 몰라 억울한 일을 당해도 항의할 수 없고, 자신의 뜻조차 직접 쓸 수 없는 자들을 위한 글자를 만들었다.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 바로 훈민정음이다. 위의 문장은 훈민정음 해례본에 적힌 문장이다. 한글은 현재 전 세계가 인정하는 과학적인 글자지만, 한글이 겪어온 지난 574년은 절대 순탄치 않았다.

한글, 그 당시의 이름인 훈민정음은 1443년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에 의해 탄생했다. 하지만 수많은 핍박과 억압 때문에 완성된 지 3년 후인 1446년이 돼서야 겨우 백성들에게 반포될 수 있었다. 이후에도 훈민정음은 언문이라고 불리며 천한 신분을 가진 사람들만 사용하는 글자라는 취급을 받았다. 줄곧 무시와 천대를 받아온 훈민정음은 갑오경장(1894~1896년)에 이르러서야 공식적인 우리의 글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만들고 나서 꼬박 450년이라는 긴 세월이 걸렸다.

한글의 수난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우리 민족의 아픈 역사인 일제강점기에는 아예 한글을 없애기 위한 정책이 시행됐다. 일본의 민족 말살 정책으로 인해 한글 사용과 교육이 금지되고, 심지어 이름조차 제 나라말로 쓰지 못하는 '창씨개명'이 강행됐다. 조선 사람이 조선어를 쓰면 잡혀가고, 조선어로 된 이름을 사용할 수 없었다. 그런데도 지금 필자가 이렇게 한글로 기사를 쓸 수 있는 건, 수없이 많은 선조의 노력과 희생이 있었음이 틀림없다.

한글의 자음 18자와 모음 10자를 조합하면 11,172개의 글자를 만들 수 있다. 이 얼마나 효율적이고 과학적인 언어인가. 앞으로도 우리는 한글을 마음껏 자랑스러워할 것이다. 다만, 우리가 이렇게 한글을 자유롭게 쓰기까지 한글에 얼마나 많은 피와 땀, 눈물이 뱄는지를 생각하며 감사한 마음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이현지 기자  gvguswl@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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