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추석을 맞아 SNS에서는 일명 ‘명절 잔소리 메뉴판’이라는 게시물이 큰 화제가 됐다. 명절 잔소리 메뉴판에는 ‘대학 어디 어디 지원할 거니 : 50,000원’, ‘살 좀 빼야 인물이 살겠다 : 100,000원’, ‘취업 준비는 아직도 하고 있니 : 150,000원’ ‘회사에서 연봉은 얼마나 받니 : 200,000원’, ‘나이가 몇인데 슬슬 결혼해야지 : 300,000원’, ‘너희 아기 가질 때 되지 않았니 : 500,000원’ 등 여러 가지 잔소리 메뉴들이 나열됐다. 그리고 맨 아래에는 ‘저의 걱정은 유료로 판매하고 있으니 구입 후에 이용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이 게시물에는 ‘이 메뉴판만 있으면 추석에 만수르가 되는 것은 순식간이겠다’며 ‘제발 남의 인생에 같잖은 참견 좀 그만해줬으면 좋겠다’라는 댓글이 달렸고, 댓글은 다른 SNS 이용자들의 많은 호응을 얻었다. 일부 사이트에서는 ‘내가 밥상 엎고 깽판 좀 쳤더니 다들 나한테 아무 말도 못 하더라’ 라며 일종의 ‘명절 맞이 깽판 자랑’ 게시물도 SNS에 심심치 않게 올라와 공방의 대상이 되고 있다. SNS에서 추석은 정신 건강을 위협하는 듣기 싫은 잔소리로 가득한 스트레스의 주범이 되어 있었다. 그런가 하면, 뉴스에서는 자식들의 발길이 끊긴 시골집에서 혼자 추석을 보내는 어르신들의 푸념이 담긴 뉴스 인터뷰가 흘러나온다.

민족대명절로 여겨지던 추석의 의미는 언제부터, 그리고 왜, 어쩌다 이렇게까지 퇴색된 걸까?

필자에게 올해의 추석은 19번째 맞는 추석이었고, 그동안 맞아 온 추석의 모습은 많이 달라져 있음이 분명했다. 온 가족이 모여 정성을 들여 차례상에 올릴 음식을 준비하는 등 행복하게 북적이는 명절의 모습은 사실상 낭만에 가까운 유토피아, 혹은 신기루 같은 존재가 됐다. 10년 전쯤만 해도 차례에는 가족들이 필사적으로 참석해 함께 조상을 기리고 존경을 표했다. 명절은 우리보다 앞선 시간을 살다 가고, 우리가 의식하든 그렇지 않든 현재 우리의 삶에도 영향을 주는 조상에게 감사를 표하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과거를 기억하는 경건함이나 오랜만에 보는 친척들의 얼굴을 반가워하는 소란스러움은 사라졌다. 추석 문화에서 큰 부분을 차지했던 가족 간의 대화나 조상들을 기억하고 감사를 표하기 위한 경건한 묵념은 고리타분한 관습이 됐다. 우리는 우리를 만들어준 과거를 되짚지 않고 차례상에 올릴 음식, 심지어 서로에 대해서도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또는 때때로 잘못된 방식으로 어긋나게 표출하는 관심으로 인한 불쾌한 상황이 연출돼 가족 간의 대화가 건조하게 끊어지기도 한다. 친척과의 만남을 편안하게 느끼는 사람들은 줄었고 불편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다. 공동체가 무너지고 개인주의가 만연해 친족 관계도 형식적이고 의례적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이런 상황에 극에 달하게 되면서 ‘명절 잔소리 메뉴판’이니 ‘명절 맞이 깽판 자랑’이니 하는 게시물들이 현실적인 명절 에피소드가 됐다. 그렇게 추석은, 그리고 명절은 거추장스러운 관습으로 가득하고 거북한 잔소리가 앞서 걱정되는 애매한 휴일이 됐다.

이 변화를 감히 위기라 부를 수도 있을 듯 싶다. 추석이라는 명절이 다음 세대에도 의미를 가질지, 또는 존속 자체가 가능할지부터가 불투명하고 모호해졌기 때문이다. 추석이 가진 본래의 의미는 점점 희미해져 가고 있고, 추석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 또한 흔들리고 있다. 필자는 이러한 변화가 자연스러운 수순처럼 보이다가도 그 끝에 다다라서는 내심 불안해지곤 한다. 오랜만에 가족들이 다 모일 수 있는 좋은 명목이 유명무실해졌음이 두렵고, 단순한 휴일로 전락해버린 추석 앞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초라한 차례상이 서글프다.

제주도가 본가인 필자 또한 “알바도 해야 하고 비행기 값도 만만치 않은데 이번 추석엔 가지 말까”라는 고민을 했던 것이 솔직한 마음이다. 그와 동시에 앞으로의 추석은 우리에게 어떻게 기록될까 하는 이질적인 씁쓸함이 밀려온다. 차례상을 가득 채우진 않더라도 의미를 살린 대화의 시간은 채워져야 할 것이다.

임현지 기자  ㅣ.hyeonge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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