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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문화를 잃은 문화의 거리
  • 임현지 기자, 배주경 기자
  • 승인 2017.10.16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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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교 후문 건너편에 조성된 '인하 문화의 거리'

“밥 먹고, 카페 가고, 노래방 가면 끝이지 뭐.”

문화의 거리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한 대학생은 다음과 같은 답변을 내놨다. 문화의 범위는 정의된 의미로 일축할 수 없을 만큼 광대하다. 그러나 요즘 우리는 문화의 범위가 특정되는 특이한 현상을 어렵지 않게 마주하고 있다. 문화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은 대부분 유사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접하는 문화는 생산자에게 쉽게 돈이 되는 ‘음식’ 혹은 ‘오락’ 쪽으로만 기울어져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처럼 일정한 형태로 굳어져 가는 현대 문화의 모습은 ‘문화의 거리’로 칭해지는 거리들이 그들만의 고유한 색을 잃어버리는 원인이 됐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 지역 문화의 거리들인 ‘인하 문화의 거리’, ‘부평 문화의 거리’, ‘부평 테마의 거리’에서도 공통적으로 살필 수 있는 모습이다.

위치도, 이름도 다른 문화의 거리들이 모두 똑같이 채워져 있다. 그들이 말하는 문화는 과연 무엇인가. 필자는 문화의 거리에서 문화의 위기를 마주할 수 있었다. 문화의 거리를 되짚으며 우리 문화의 현주소를 살펴봤다.

부평 문화의 거리에 인형 뽑기방들이 늘어서있다.

체인점으로 가득한 거리

문화의 거리에는 어디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체인점이 가득했다. 브랜드 네임을 가지고 안정된 수익을 창출하는 체인점은 수요보다 공급이 많은 현대 소비 사회에서 경쟁에 있어 우위를 선점한다. 또한, 새로운 아이템으로 차별성을 두는 모험에 뛰어들기보다는 본사들의 정해진 체계를 따르는 것이 사업자에게도 안정적이다. 이러한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고유한 특색을 살려 차별성으로 승부하는 특색 있는 개인 사업장은 언젠가부터 자취를 감췄다.

문화의 거리라는 간판을 내걸고 있지만, 각각의 개성이 살아있는 가게들은 없었다. 사람들의 눈에

잘 띠는 명당자리는 전부 체인점들의 차지였다. 화장품 가게부터 휴대폰 대리점까지, 어디에서나 똑같은 간판을 내건 가게들 아래에서 직원들은 바쁘게 오가며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다.

결국, 문화의 거리에 들어선 우리는 ‘문화인’이 아닌 그저 ‘소비자’가 된다. 그리고 ‘새로운 문화’가 아닌 ‘보편화된 상품’에 돈과 시간을 소비하게 된다. 문화가 가지는 가치는 상업성 앞에 무릎을 꿇은 모습이다. 상업적인 활동이 가득한 이 거리를 과연 진정한 문화의 공간이라고 볼 수 있을까? 

 

유행만 좇는 오락이 돈을 버는 거리

문화의 거리에 위치한 먹자골목 사이사이는 주로 오락시설들이 메우고 있었다. 오락시설의 수는 많았지만, 제공되는 오락의 종류는 ‘PC방’, ‘코인 노래방’, ‘인형 뽑기방’으로 한정돼 있을 뿐이었다. 이들은 모두 최근 들어 크게 유행을 끌고 있는 오락시설들이다. 특히 인형 뽑기방의 경우, 도박적인 요소가 포함돼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음에도 대리점 수는 줄어들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색다른 오락 문화를 제공하는 오락시설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소비자가 어느 정도 확보돼 있는 안정적인 시장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모습은 오락시설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다양한 카테고리가 존재하는 오락은 동시에 수없이 많은 콘텐츠를 창출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갖는다. 그러나 문화의 거리에는 오락 분야가 가지는 다양성을 강점으로 삼아 새로운 것을 개발해보려는 움직임이 없었다. 상권은 여전히 안정적인 소득 뒤에서 우리에게 획일적인 소비만을 건네고 있는 모습이었다.

 

‘반쪽짜리’ 문화의 거리

문화라는 단어가 포용하고 있는 분야는 광대하다. 그러나 문화의 거리가 지니고 있는 문화는 극히 한정적이다. 이곳에서는 눈에 보이고, 입에 넣을 수 있고, 당장 만질 수 있는 실체가 있는 것들만 문화로 취급된다. 즉, 당장 손에 쥘 수 있는 상품으로서 존재하는 문화만이 인정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는 곧 문화의 거리가 음식과 오락으로 도배된 이유다. 사람들은 보통 예술, 전시, 공연, 영화 등을 문화생활이라고 일컫는다. 그러나 그것들은 물리적으로 소유할 수 없는 형태라는 이유로 거리 위에서 도태됐다.

다양성은 문화의 가장 중요한 특성이다. 많은 가치를 존중하는 이 특성이야말로 문화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다양성이 결여된 문화는 반쪽마저 되지 못한다.

사람들이 부평 문화의 거리에 늘어선 수많은 가게들을 지나고 있다.

색을 잃어버린 거리 위에 선 우리들

소비문화가 맹위를 떨치면서 거리에는 상품만이 가득하다. 그나마 존재하는 문화는 상업적 마케팅 수단으로 퇴색해 버렸다. 우리 곁에 존재하는 인하 문화의 거리와 부평 문화의 거리, 그리고 부평 테마의 거리는 단순한 소비만을 만끽하는 거리가 됐다. 먹고, 또 먹는 시간이 반복된다. 학생들은 햄버거를 먹고, 카페에 가고, 시간이 남으면 노래방으로 들어선다. 돌아서면 잊을 만한 희미한 문화생활을 손이 닿는 대로 이어간다. 생산자에 의한 주입식 유행만을 좇으며 점점 더 자극적인 것들에 노출되다 보니 문화에 대한 주관 또한 잃게 된다.

‘무엇이 대중의 정신적인 활동에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문화인가?’ 라는 질문이 점차 의미를 잃고 휘청이고 있다. 대신 ‘무엇이 돈이 되느냐’에 대한 외침만이 빠른 속도로 퍼져나가고 있다. 근대 인문정신의 문을 열었던 ‘생각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은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물질문명을 기계적으로 ‘습득하는 존재’로 변화하고 있다. 창의성과 융`복합 등의 새로운 구호들이 등장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 위에는 돈이 되는 것들에 사로잡힌 무너진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의미가 퇴색된 문화를 걷어내고 뿌리가 건강한 문화를 차근차근 다져가야 할 때가 왔다.   

임현지 기자, 배주경 기자  inha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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