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텁지근한 여름날을 보내며 아열대로 기후가 변하고 있다며 무더위에 힘들어 하였는데, 어느 사이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가을을 맞이하였다. 이맘때가 되면 법학전문대학원은 새로운 신입생을 맞이하기 위해 입시를 준비하게 된다. 올해도 9월 22일 한양대학교에서 2018년 입학을 위한 공동입학설명회가 개최된다. 입학설명회에서는 법학전문대학원에 관심을 가지고 입학을 준비하는 많은 응시자들에 대한 개별상담이 진행된다. 법학전문대학원 제도가 새로운 법조인 양성기관으로 도입된 것이 2009년이니 올해 10기 신입생에 대한 입학절차가 진행되는 것이다. 10년 동안 응시자들에 대한 상담에서 가장 많은 질문을 받은 사항은 ‘학업계획서’를 어떻게 작성하는가이다. 학업계획서에는 자기소개, 경력 및 특기사항을 비롯하여 법학전문대학원에서의 학업계획과 비전 등을 제시해야 한다. 자기소개를 할 경우 그리고 경력 및 특기사항을 제시할 경우, 특별한 자격증이 없다면 상대방에게 자신을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특기사항을 중심으로 구체적으로 작성하는 것이 원칙일 것이다. 그러나 간혹 학업계획서를 읽다보면, “정말 이 응시자가 학업계획서에 제시된 사람이 맞는가?”하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키는 경우가 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소개가 아닌 그 어떤 다른 사람을 소개하고 있는 것처럼 학업계획서는 미사여구로 가득 차있고, 내용도 구체적이지 않고 추상적이라 도대체 무엇을 말하려고 한 것인지 파악하기 어려운 경우가 종종 나타난다. 이러한 내용의 학업계획서를 보면서 ‘이 사람 참으로 훌륭하다’라는 느낌으로 가점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감점을 하게 된다. 진솔하지 못한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합격이라는 큰 부담감을 충분히 공감하기는 하지만 그러한 부담감으로 인해 자신의 소개가 아닌 타인을 마치 자신인 것처럼 소개하는 것은 지면을 통해서도 인지할 수 있는 것이다.

입시상담을 하면서 학업계획서에 대해 질문을 받으면 응시자에게 우선은 자기 자신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자신을 파악한 후에 자신의 잠재력을 나타낼 수 있도록 학업계획서를 작성한다면, 서류를 심사하는 심사자에게도 그러한 잠재력이 전달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상담을 하면서 나 역시 “나는? 나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가?”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보곤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타인에게 자신을 보여줄 때 일부 혹은 많은 부분에서 포장하고 싶어 할 것이다. 상대방이 나를 잘 알지 못하는 경우에는 더욱 그 포장의 범위가 넓어지고 강도가 세어질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포장은 결코 오래가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겉과 속이 다르다는 것은 시간이 경과하면 드러나기 때문이다. 반면 자신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포장하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의 강점을 나타낸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그 사람이 지니고 있는 장점과 가치는 드러나게 마련이다.

한 동안 ‘유서’를 쓰는 것이 유행하던 시기가 있었다. 유서를 작성함으로써 사람들은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을 평가하게 된다고 한다. 나의 입장이 아닌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나를 평가해 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죽음을 앞 둔 사람은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고 한다. 실제 수십 년간 사형수의 사형을 집행하였던 교정직원이 퇴임한 후 다음과 같은 내용을 책 속에 담아 발간하였다: 억울하게 사형을 당하는 경우 죽는 순간까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면서 살해된 자에게 용서를 구하는 행동을 하지 않지만, 실제로 살인을 하여 사형을 당하는 사람은 사형을 집행하는 순간에는 참회하면서 자신이 살해한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한다고 한다. 이처럼 사람이 죽음을 앞둔 경우에는 포장되지 않은 자신을 돌아보면서 마지막을 맞이한다. 죽음을 생각하고 작성하는 유서는 자신을 돌아보는 좋은 방법 중의 하나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유서를 작성하지 않고도 자신을 올바로 판단하고 다른 사람에게 포장되지 않은 나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더욱 중요할 것이다.

최근 정권이 바뀌고 장관들이 임명되는 과정에서 청문회를 통해 다양한 문제들이 지적되는 것을 보면서 “본인을 과대평가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또한 그러한 문제들을 지적하는 국회의원들을 보면서 “본인에 대해서는 제대로 평가하고 있는 것일까?”하는 생각도 든다. 다른 사람을 평가하기에 앞서 나 자신을 제대로 평가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가 이 가을을 보내며, 2018년을 맞이하는 준비를 하며 자신을 돌아보고 평가할 수 있는 시간들을 가져보면 좋겠다.

-원혜욱 법학전문대학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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