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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치] 가장 정치적이고 가장 인간적인 공간, 광화문광장
한국에서 일어난 대부분의 일을 지켜본 광화문.

한국 근현대사에서 광화문광장은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한국의 정치가 집회와 시위를 기반으로 시작했다는 점은 헌법에서도 3.1운동 및 4.19혁명을 통해 언급된다. 역사상 수많은 집회와 시위 중 상당수가 광화문광장과 주변 청계광장 및 서울광장에서 이뤄졌다. 한국 근현대사의 산실, 광화문에 가봤다.

광화문은 한국 정치, 사회의 중심지.

광화문 주변은 정치, 사회적으로 아주 중요한 곳이다. 광화문광장 한복판에서는 청와대가 보인다. 광화문에서 정면을 바라보면 왼편에 ‘혈맹’인 미국 대사관이 보인다. 바로 옆에는 콜롬비아, 오스트리아, 핀란드 대사관이 위치하고 있다. 좀 더 범위를 넓히면 영국 대사관 등 수많은 국가의 대사관, 영사관이 광화문 근처에 자리를 잡고있다.

정부종합청사 내무부는 광화문광장의 바로 앞에 위치하고 있다. 그 외에도 서울특별시 의회 등 다수의 주요 관공서가 광화문광장을 둘러싸고 있으며, 이곳들의 경비는 나름 삼엄해보이기도 한다.

언론사도 주변에 밀집해있다. 동아일보, 조선일보, 한국일보 등 국내에서 내로라 하는 언론사의 사옥이 광화문광장 및 서울광장, 청계광장을 내려다볼 수 있는 위치에 자리잡고 있다.

이렇듯, 광화문광장은 집회나 시위의 장소 이외에도 한국의 미래를 좌지우지하는 곳이 밀집돼있는 장소다.

광화문에 모이는 사람들

‘볼테르의 친구들’이라는 책에는 ‘나는 당신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당신이 그 의견으로 인해 박해를 받는다면, 나는 당신의 말할 자유를 위해 싸울 것이다’라는 말이 나온다. 광화문광장은 ‘말할 자유’를 위한 장으로서 발전해왔다.

현재 광화문광장에는 3년이 넘도록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세월호 유가족이다. 참사 발생 초기부터 이들은 광화문광장에 천막을 치고 당시 정부에 항의의사를 표해왔다. 일부 몰상식한 사람들이 노골적으로 방해하는 여러 사건들이 있었음에도 꿋꿋이 자리를 지킨 사람들이 있고, 많은 시민들이 공감해줬다. 포기하지 않은 세월호 유가족은 물론이고 이를 기억하고 함께해준 시민들은 당시 정부의 무능을 비판했다. 세월호뿐만 아니라 메르스, 미세먼지 등 재난 상황에서의 무능함과 문화예술계 탄압, 비선 실세의 존재가 드러나자 작년 10월 29일부터 올해 3월 11일까지 총 1,650만 명이 넘는 누적 인원이 모여 단 한 명의 연행도 없이 평화시위가 이어졌다.

최근에는 세월호 유가족들이 세워놓은 천막 근처에선 ‘스텔라 데이지호 침몰’과 관련된 10만인 서명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이들은 스텔라 데이지호 침몰을 ‘제2의 세월호 참사’라고 부르며 정부에 책임자 수사를 요구하고 있다. 광장을 지나다니는 시민 중 꽤나 많은 비율의 사람들이 관심을 보였으며 그 중 일부는 서명에 참여하는 등 광화문광장은 언제까지나 여론 수집의 장으로 역할을 다하고 있다.

광화문광장 일대는 수많은 집단의 확성기로 사용되고 있다. 한쪽에서는 보수기독교단체의 북핵 위기를 근거로 한 동성애 반대시위를 하고 있는가 하면 같은 시각 다른 장소에서는 한 소규모 원외 정당에서 북한과의 대화를 주장하는 시위를 하고 있기도 하다.

광화문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광화문광장이 광장처럼 변한 것은 사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일이다. 본디 광화문광장이 있는 자리는 왕복 20차선 도로가 놓여 세계에서 가장 넓은 도로였다. 지금은 광장을 조성하면서 12차선으로 줄어 천안문 광장 앞의 왕복 16차선 도로가 가장 넓다고 한다.

광화문광장이 조성된 것은 노무현 정부 당시 문화재청장이었던 유홍준 교수의 제안이었다. 유 교수의 제안과 서울 시민의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현재 도로 한가운데에 섬처럼 광장이 조성된 것이다.

광화문광장의 상징물인 이순신 장군 동상은 1968년에 세워졌다. 또 다른 상징물인 세종대왕 동상은 2009년 한글날에 공개됐다. 동상 지하에는 ‘세종이야기’라는 문화공간이 있다. 전시물이 다소 빈약하다는 지적이 있기는 하지만 외국인 관광객 대상으로는 나름 관광명소로 지목된다.

도로 한복판에 광장이 조성되고 집회, 시위의 자유가 보장된 지금, 이순신 장군 동상과 세종대왕 동상은 국민을 굽어보는 성인의 모습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박근혜 대통령 퇴진 운동’ 당시 광장을 가득 채운 시민 사이에 우뚝 솟은 두 동상을 두고 혹자는 “마치 시민을 보호하는 수호신을 보는 것 같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광화문광장에 일대 변화가 예견돼있기도 하다. 문재인 정부가 대통령 집무실을 정부서울청사로 옮기면서 광화문광장에도 변화가 생길 예정이다. 광화문부터 세종대로 전체가 광장으로 꾸며지며 기존 도로는 지하화를 목표로 하는 수정안이 제안돼 있는 상황이다. 대통령 집무실 변경으로 경호에도 큰 변화가 생길 예정이라 광화문광장의 변경은 불가피하다는 해석이다.

광장의 크기가 넓어져 시민의 공간으로서 역할에 더욱 부합할 것이라는 예측과 함께 지금도 문제가 되는 교통체증이 심화될 우려를 표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광화문광장과 민주주의

본디 민주주의가 제일 먼저 꽃핀 고대 그리스에서 직접민주주의의 실현과 토론은 ‘아고라’라고 불리는 광장에서 이뤄졌다. 아고라는 ‘집결지’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 광장은 사람들이 모여야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사람이 모이는 장소를 광장이라고 불러도 되지 않을까 싶다. 사회는 사람이 모이는 것에서 시작하고 사회의 구성은 정치의 시작이다. 광화문광장은 아마 한국에서 가장 정치적이고 사람냄새가 나는 곳이 아닐까 싶다.

스텔라 데이지호 침몰에 관해 서명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세종대로에서 광화문 방향으로 광장을 바라본 풍경.

 

최창영 기자  12163094@inha.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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