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나도 저로 태어나고 싶어요’ 여유롭게 웃으며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자신감 넘치는 태도는 누군가의 동경의 대상이 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또 자신으로 태어나는 것이 너무 힘든 사람들이 있다. 책 ‘플라나리아’는 그들의 마음을 대변하듯 말한다. ‘다시 태어난다면, 플라나리아로 태어나고 싶어요’ 

책은 ▲플라나리아 ▲네이키드 ▲어딘가가 아닌 여기 ▲죄수의 딜레마 ▲사랑 있는 내일 총 5가지의 단편 소설들로 구성됐다. 소설 속의 주인공들은 ▲유방암에 걸린 사회부적응자 ▲실직한 이혼녀 ▲구조 조정된 남편 대신 돈을 버는 아내 ▲일자리가 없는 남자친구와의 결혼을 고민하는 여자 ▲직장을 나와 선술집을 차린 이혼남 등으로, 다소 무력하고 염세적인 모습들로 그려져 있다. 이혼이나 구조 조정 같은 이야기들은 청년들에게 있어 직접적으로 와 닿는 소재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청년들의 공감을 얻어내는 이유는 전반적인 주제가 ‘일자리’이기 때문이다. 

일하지 않고 일할 의지도 없는 청년 무직자 ‘니트족’의 증가현상은 일본사회의 단면이자 고질병이다. 이러한 일본사회의 고민이 반영돼 있기라도 하듯, 각 에피소드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일자리’라는 주제에 대해 다루고 있다. 책은 일자리가 없는 혹은 이상적인 일자리를 가지지 못한 주인공들의 시점에서 진행된다. 그 시점 속에서 독자들은 주인공들에 대한 타인과 사회의 태도를 목격한다.

책 속에서 사람들은 주인공들의 일자리에 신경을 쓰며, 끊임없이 근황을 묻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유방암 치료를 이제 막 끝낸 딸에게 직장을 알아볼 것을 권하는 가 하면, 오랜 회사생활 끝에 실직하여 간만에 ‘한가한 생활’을 접하는 친구에게 어서 일을 시작하라고 재촉한다. 또 손금을 봐주고 돈을 받는 대신 밥이나 잘 곳을 제 공받는 일을 잘못된 일인 것처럼 치부한다. 걱정이라는 구실의 압박을 하는 모습은, 명절 날마다 취업은 했느냐는 질문에 질릴대로 질려버린 우리나라 청년들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다.  

책은 그러한 태도들에 대해 답한다. 일할 의욕이 생기지 않고, 한가롭게 쉬는 것이 좋고, 일을 해서 누군가를 부양해야 한다는 것이 부담스럽다고 말이다. 남이 들을까 창피해 꺼내놓지 못했던 이유들을 ‘가능하면 언제까지라도 약자로 남고 싶었다’와 같은 문장을 통해 책은 솔직하고 담담하게 털어놓는다. 

책 ‘플라나리아’에 대하여 옮긴이는 ‘일 하지 않아도, 직업이 없어도, 대열에서 떨 어져 나와도 또 다른 세계가 있다’며 ‘취업 난에 시달리는 젊은이에게 큰 위안이 될 것 이다’라고 서술했다. 취업이 된 상태와 되지 않은 상태의 이분법적인 세계뿐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책은 어떠한 세계에 속하는 것이 가장 옳은 것인지 알려주지 않는다. 그러나 책이 제시하고 있는, 한숨을 돌 리고 살펴볼 수 있는 세계의 존재만으로도 젊은이들은 위로받을 수 있을 것이다. 

배주경 수습기자  skwnru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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