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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지 못한 노동, 변해야 할 미래
  • 인하교지편집위원회 최광민
  • 승인 2017.05.28 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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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안 하면 저렇게 된다’라는 말은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이 쓰고 있다. 여기서 ‘저렇게’는 누구를 지칭하는가. 보통 청소 노동자나 생산직, 현장노무직을 지칭한다. 이는 우리가 생각하는 블루칼라 직종이 어떤 편견 속에 있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한국 사회에서 블루칼라 직종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좋지 않다. 하지만 그러한 인식이 인간을 단정 짓고, 차별하고, 멸시할 근거가 될 수는 없다. 그런데도 차별과 멸시는 공공연하게 일어나고 있다.

노동자에 대한 불합리한 인식은 곧 노동자에 대한 혐오다. 노동자를 멸시하는 사회를 성찰하기 위해선 정확히 노동자 혐오가 어떤 것이며, 노동자에 대한 혐오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분명히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왜곡된 노동의 의미

우리는 ‘노동’이라는 단어를 어떤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을까. 노동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이 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얻기 위하여 육체적 노력이나 정신적 노력을 들이는 행위’이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많은 사람은 노동을 육체적으로 힘들고 꺼려야 할 것으로 여긴다. 노동은 우리가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행위인 동시에 우리의 삶과 떨어져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기본적으로 노동자 혐오에는 노동자에 대한 편견과 부당한 처우 등이 해당한다. 넓게 바라보면 노동자 사이에서 계층을 나누고 분열시키고자 하는 움직임, 노동자에 대한 부정적인 프레임도 이에 속한다.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직업 귀천이나, 노동의 의미를 부정적으로 한정하고 멀리해야 할 것으로 보는 인식 또한 노동자 혐오의 일종이다.

노동자 혐오는 주로 블루칼라를 대상으로 이루어진다. 블루칼라는 교육을 잘 받지 못했다거나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편견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블루칼라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경비직에 종사하는 노동자나 청소 노동자에게 쏟아지는 폭언과 폭행 같은 행위로 표출되기도 한다. 이러한 행위는 마치 개인과 개인 간의 갈등, 또는 인식 수준이 낮은 개인의 ‘갑질’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블루칼라에 대한 혐오는 사회적인 차원의 문제로 받아들여야 한다.

사회의 부정적인 노동 인식은 노동교육의 부재와 이어져 있다. 정규 교육과정에서 사용되는 사회 교과서에서 노동 분야의 내용은 전체의 1%도 되지 않는다. 노동 삼권, 노동조합에 대한 설명에는 보통 파업을 하는 부정적 이미지의 사진이 첨부된다. 학생 대부분이 노동자의 삶을 택하게 되지만, 노동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노동을 하고 심지어 노동자 혐오를 배우는 상황인 것이다.

노동자 혐오는 노동권과 같은 경제적 문제와도 연결된다. 많은 블루칼라는 저임금이나 낮은 복지 문제에 시달린다. 이러한 부당한 대우는 사회가 발전함에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다. 사회가 노동권 증진의 필요성을 알면서도 방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블루칼라 처우 문제는 우리가 모르는 새 사회에 퍼져있는 노동자 혐오 때문에 지속해서 답습되고 있다.

이와 같은 문제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우선 노동의 의미부터 바로 잡을 필요가 있다. 실질적인 인식 개선 노력과 노동에 대한 교육이 사회의 노동자 혐오를 인식하고 개선할 수 있는 길이 될 것이다. 또한, 노동은 사회 구성에 필수적인 행위이며 우리의 삶과 매우 밀접한 것이다. 따라서 노동문제에 대한 고민도 사회 전체로 확장되어야 한다. 노동문제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며 지금 당장 사회 구성원 모두가 인식하고 해결해야 하는 문제이다.

 

노동조합을 둘러싼 프레임

국제노동조합연맹의 평가에 의하면 한국은 ‘노동권이 보장될 가망이 없는 나라’에 해당한다. 이는 노동법이 명시적으로 있으나 노동자들이 그 혜택을 받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지표는 정당한 권리인 노동조합(이하 노조)이 사회적 탄압을 받고 있음을 보여준다. 노조를 금지하거나 어용노조(회사에 의해 실질적으로 활동 및 기능을 하지 못하는 노조)를 세워 비판을 피하고자 겉치레만 하는 기업이 대다수인 것이 한국의 노동 현실이다.

사회적 탄압이 공공연하게 일어나는 이유는 노조 문제가 혐오의 프레임 속에 있기 때문이다. 언론에서 파업과 같은 쟁의 활동은 폭력적이고 과격한 면만 부각되어 다뤄진다. 공권력 또한 노사 측의 입장을 조율하기보다는 일방적으로 쟁의 활동을 중단시키거나 해산시키기 위해 개입한다. 이렇다 보니 노조에 대한 사회 여론은 호의적일 수 없다.

물론 노조 내부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노조에 대한 과격한 이미지나 노조 내에서도 벌어지는 계층화, 노조 내 일부만이 혜택을 보는 모순점은 일정 부분 노조 활동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분명한 자성과 성찰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러한 문제만으로 노조 전체를 매도하거나 노조를 기업 운영에 방해가 되는 존재로 보는 것 또한 지양해야 한다.

이에 관한 대표적인 논점이 소위 ‘귀족노조’에 대한 것이다. 귀족노조는 소속 노동자의 세력이 강한 노조를 의미한다. 귀족노조에 대한 논의는 보통 노조가 기업 운영에 미치는 악영향이나 노조에 의해 생기는 노동자의 박탈감에 치중되어 있다. 이는 노동 운동에 대한 부정적 프레임이 사회 전체에 어떻게 기능하고 있는지를 시사한다. 귀족노조가 극소수의 직종에서만 성립이 되고 대다수 노조는 항상 ‘을’의 처지에 놓여있다는 점은 간과되고 있다.

노조보다 기업이 더 큰 자본을 소유하고 있지만 ‘귀족기업’이라는 말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시사점은 더욱 명확해진다. 귀족노조라는 단어는 기업보다 상대적으로 약자일 수밖에 없는 노동자가 마치 강자인 것처럼 표현한다. 이를 통해 노동자를 구분 지음으로써 기업에 대항할 수 있는 연대 의식을 약화하고 노동자 간 갈등을 유발한다. 즉, 기존의 노동 운동이 시사하는 가치와 메시지를 변질시키고 오히려 그것을 노동자 간의 분열과 혐오를 일으키는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다.

 

노동의 미래

노동에 대한 프레임은 사회 속에 자리 잡고 있다. 노동이나 노동자 같은 말은 보통 긍정적인 의미로 쓰이지 않는다. 또한, 블루칼라의 사회적 지위가 낮은 것은 당연하며 그들의 삶이 자신과 관련 없다고 여기는 것이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다.

우리는 노동의 본래 의미를 다시 떠올릴 필요가 있다. 노동은 일부 계층의 것이 아니며, 혐오의 대상 또한 아니다. 노동 계층을 나누고 혐오하는 것은 우리가 스스로를 혐오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우리는 어떤 프레임이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묵과하고 있는 사회구조가 어떻게 노동 문제의 본질을 흐리고 있는지를 깨닫는 것이지, 같은 노동자와 편을 갈라 싸우는 것이 아니다. 노동 문제는 모두의 문제이고, 함께 해결해나가야 한다.

인하교지편집위원회 최광민  dkee2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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