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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에 가려진 무지개
  • 인하교지편집위원회 손지민
  • 승인 2017.05.28 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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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를상징하는프라이드플래드(pride flag).

“이성애를 반대한다.”는 말에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성애를 옹호하고 지지한다는 말 역시 어색하게 들릴 것이다. 이처럼 성적 지향은 찬반의 대상도 아니며 타인의 동의를 필요로 하는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동성애는 흔히 찬반 논쟁의 대상이 된다. 개인의 자유라며 ‘동성애 반대’를 묵인하는 속에서 동성애자, 나아가 성소수자의 존재는 지워진다. 이제는 우리 사회에 존재하고 있는 성소수자를 인지하고 그들에 대한 혐오를 직시해야 하지 않을까.

 

벽장 밖으로 나오는 성소수자 담론

 

국내에서 성소수자 담론이 활발해진 것은 20여 년 정도 되었다. 1990년대부터 시작된 성소수자 운동은 기존의 이성애중심적인 인식과 제도를 바꾸고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폭력에 대응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 왔다. 이러한 운동을 중심으로 우리 사회에서 성소수자에 인권에 대한 담론이 형성되었다.

인권운동과 미디어 등의 영향으로 성소수자의 개념이나 존재를 점차 인식하고, 이들의 인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여론이 확산하는 추세다. 가장 큰 변화는 성소수자의 커밍아웃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방송인 홍석천과 하리수는 대중적으로 알려진 성소수자다. 2000년대 초반, 홍석천은 방송을 통해 동성애자임을 커밍아웃했고, 하리수는 성별정정을 한 후 트렌스젠더임을 밝히고 방송활동을 했다.

두 사람의 커밍아웃은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이들은 여러 매체에서 흥밋거리로 언급되며 호기심의 대상으로 그려졌다. 성소수자가 겪는 어려움을 개인적인 문제로만 바라볼 뿐 우리 사회에 내재한 혐오를 바라보지 못한 것이다. 또한, 이들 이외에는 대중적으로 알려진 성소수자가 많지 않아 많은 사람은 다양한 스펙트럼의 성소수자가 존재하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다.

성소수자의 공개적인 커밍아웃은 성적지향과 성적정체성에 대한 대중적 담론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 최근 대학 학생 대표자들의 커밍아웃이 대표적인 사례다. 2015년 김보미 서울대 총학생회장이 선거에 출마하면서 커밍아웃을 했고, 한국 최초 커밍아웃 성소수자 총학생회장으로서 주목을 받았다. 그 후 고려대, KAIST, 연세대, 계원예술대, 성공회대 등에서도 성소수자 학생 대표가 나왔다.

성소수자는 어디에나 존재하며, 이들 이외에도 학생대표자 중 성소수자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성별이분법과 이성애중심주의가 정상 규범으로 여겨지는 우리 사회에서 성소수자는 ‘없는 존재’로서 늘 지워졌다.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성소수자는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으며 함께 사회를 살아가는 존재임을 인식해야 한다.

점차 성소수자가 가시화되면서 세계적으로도 성소수자의 인권을 주목하며 제도적인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2001년 세계 최초로 동성혼을 법제화한 네덜란드를 시작으로 덴마크, 캐나다, 미국, 콜롬비아, 스페인 등 유럽과 북미·남미 대부분 국가가 동성혼을 인정하는 추세다. 대만은 아시아 국가 중 최초로 혼인이 남녀 간의 행위라고 규정한 민법을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제19대 대선이 보여준 혐오

 

지난 대선 기간 중 성소수자 인권 문제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4월 25일 JTBC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홍준표 후보가 문재인 후보에게 ‘군대 내 동성애’에 관한 의견을 물은 것이 시작이었다. 당시 문 후보가 부정적 견해를 밝히자 논란이 거세지면서 성적 지향과 관련한 정책이 대선의 뜨거운 의제로 등장했다. 토론회 이후 인터넷 포털에서 '문재인 동성애'가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에 올랐고, 언론은 동성혼 법제화나 차별금지법 제정 등에 대한 각 후보의 입장을 보도했다.

혹자는 대선에서 성소수자 이슈가 공론화된 것을 의미 있게 바라보기도 했다. 하지만 보수 후보가 보수진영 결집을 노리면서 반대 진영 후보 검증 잣대로 ‘동성애 반대’를 이용한 일에 불과했다. 동성애와 동성혼 법제화, 차별금지법에 관한 이슈는 정치적 공방으로 이어졌지만 성소수자의 인권 신장을 위한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논란으로만 끝났다.

이 과정에서 후보와 후보 지지자들의 발언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 부족과 혐오가 잇달았다. 홍준표 후보는 득표를 위해 극단적인 동성애 혐오를 보였다. 홍 후보는 동성애자를 에이즈의 주범으로 내몰았을 뿐만 아니라 동성애를 엄벌하겠다고 말했다. 심지어 그의 선거운동원들은 ‘가장 확실히 동성애를 반대하는 후보 홍준표’라는 팻말을 들고 동성애 혐오를 선거운동에 이용하기도 했다.

문재인 후보는 동성애 반대 논란과 관련하여 공식사과를 하며, “현실 정치인으로서 지금 정치 상황에서 제 입장을 밝혔던 것이고, 거기에 있을 수밖에 없는 간극에 대해서는 이해를 구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후보들의 혐오 발언이 개인적 신념이든 전략적 선택이든 성소수자 인권을 짓밟았다는 것은 분명하다. 정치적 계산이라는 명목으로 성소수자의 존재가 지워지길 강요당한 것이다.

보호받아야 마땅한 사회적 약자에 대하여 유력 정치인이 호불호를 드러냈으며, 그것이 사회적인 찬반 논쟁을 이끌어냈다. 대선 후보의 발언이 공식석상에서 이루어진 만큼 대중에게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실제로 후보의 지지자들은 표를 단속하기 위해 후보자의 혐오 발언을 정당화하며 소수자에게 가혹한 발언을 일삼았다. 또한, 후보자들의 발언이 ‘혐오의 가이드라인’을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성소수자 인권은 대선 공약에서도 중요한 사안으로 인식되지 못했다. 후보들은 여성은 차별 없이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 하며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성소수자 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침묵하거나 후퇴했다. 차별금지법이 대통령 후보 공약으로 나온 지 15년이 지난 지금, 대선 후보들은 동성애를 반대한다고 말하며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적 견해를 표명했다. 전 세계적으로 동성혼 법제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시대에 한국 정치권의 성소수자 인식은 퇴행하고 있다.

 

성소수자 인권과 제도는 ‘나중에’

 

성소수자의 낮은 인권 수준은 지표로도 확인할 수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숙명여대 산학협력단에 의뢰한 혐오표현 실태조사에서 성소수자·여성·장애인·이주민 중 성소수자의 피해 경험률이 가장 높았다. 성소수자의 혐오표현 피해 경험률은 온라인에서 94.6%, 오프라인에서는 87.5%로 나타났다. 또한, 제도적으로도 성소수자의 인권은 보장되지 못하고 있다. 성적지향·성별정체성 관련한 법제도 측면에서 성소수자가 완전히 평등한 나라를 100%로 보았을 때, 한국은 12.32%에 그쳤다.

얼마 전, 논란이 된 군형법 제92조의6은 ‘동성애 처벌법’으로 불리며 유엔 자유권위원회로부터 폐지 권고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2016년 위헌법률심판에서 헌법재판소는 군형법상 ‘추행’죄를 합헌 결정을 내렸으며, 이는 2002년과 2011년에 이어 세 번째이다. 작년, 법원이 한국 첫 동성혼 소송에서 각하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세계적 흐름과 달리 한국의 성소수자 제도적 수준이 역행하는 가운데, 차별금지법 제정은 계속해서 미루어지고 있다. 성별, 장애, 나이, 국가, 인종, 성적 지향, 학력 등을 이유로 하는 비합리적인 모든 형태의 차별을 금지한다는 내용을 명시한 차별금지법은 10년째 표류상태이다. 2007년부터 수차례 차별금지법이 발의되었으나 ‘성적 지향’의 포함을 놓고 계속해서 갈등이 발생하고 있다.

지난 총선에서는 성소수자와 이슬람 혐오를 핵심공약으로 내건 기독자유당이 2.64%의 정당득표율로, 비례대표 의원을 배출하지는 않았으나 정치자금법상 국고보조금을 받는 정당이 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당시 동성혼과 차별금지법에 대하여 사회적 공론화와 합의가 필요하다는 유보적 입장을 밝혔다.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 개선 역시 중요하나 제도적 개선은 그들이 사회로 나올 수 있는 발판이 될 수 있기에 시급한 사안이다. 누군가에게는 생존의 문제로 다가오는 사안을 정치권이 외면해서는 안 될 것이다.

 

혐오 없는 나라, 차별 없는 나라

 

지금 우리 사회는 소수자에 대한 혐오가 만연하다. 혐오의 대상이 되는 소수자는 차별과 편견 속에서 고통받고 있다.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는 부끄러운 일로 여겨져야 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혐오를 너무나 관대하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혐오 표현을 ‘표현의 자유’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처럼 무관심 속에서 차별과 혐오가 퍼져나가고 있다.

모든 사람의 인권과 존엄성은 보장되어야 한다. 이는 자유와 평등을 핵심 가치로 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당연하게 지켜져야 하는 일이다.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을 놓고 호불호를 가르고 찬반을 나누는 지금의 상황은 분명한 차별이고 혐오다. 우리 사회에 다양한 성소수자가 존재하고 있으며 그들이 차별받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모든 사람에게 보장되어야 하는 인권은 타협의 대상이 아니며, 차등을 두어서도 안 된다. 더는 ‘나중에’라는 말로 성소수자의 인권이 미루어질 수 없다.

인하교지편집위원회 손지민  jiminid.1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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