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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제노포비아(Xenophobia)입니까?
  • 인하교지편집위원회 안하경
  • 승인 2017.05.28 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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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혐오와 인종 차별은 다른 개념이지만 이 글에서는 이해를 돕기 위하여 두 가지 개념을 묶어 외국인 혐오로 표현하였다.

 

단일민족이라는 말이 틀리다고 하지만 한국은 한민족이 살아가는 땅이고 다문화는 가끔 TV에 나오는 동남아 사람들 얘기다. 짱깨는 그냥 중국음식이나 중국을 지칭하는 유쾌한 단어고 흑인이 멋있게 랩을 할 때 흑형이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이주노동자의 노동, 거주 환경 문제는 그들의 나라로 돌아가면 되는 것이며 굳이 우리가 신경 써야 할 부분은 아니다. 위 문장에서 한 구절이라도 공감이 되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외국인 혐오자(제노포비아)다.

많은 사람이 외국인 혐오를 하고 있지만 본인이 혐오를 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하고는 한다. 어떤 사람은 편견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혐오까지는 아니라고 반박하고 싶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혐오를 인정하지만 고칠 생각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상식과 정의를 지향하는 사람이라면 우리를 둘러싼 혐오에 대해 인식하고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한국 사회의 외국인 혐오는 얼마나 심각하며 어떤 식으로 표현되고 있을까?

'웃찾사'는 흑인을 희화화한 캐릭터를 등장시켜 인종차별 논란에 휩싸였다.

미디어 속 외국인 혐오

 

한국인 대다수와 비슷한 외형으로 태어나 한국에서 평생을 자라온 사람에게 인종 차별을 포함한 많은 종류의 외국인 혐오는 남의 얘기에 불과하다. 알지 못하기 때문에 위험을 인지하지 못하고 외국인 혐오 발언을 했음에도 ‘레이시스트’, ‘제노포비아’라는 말을 들으면 포비아가 아니라고 항변하고 싶어 한다. 단일민족이라는 말을 정규 교육과정 수업시간에 아무 문제 없이 가르쳐왔고 배워왔던 세대는 외국인 혐오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대다수의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미디어는 혐오를 그대로 반영한다.

대표적으로 흑인 분장은 코미디 프로그램의 단골 개그 요소로 사용되었다. 얼굴을 검게 칠하고 ‘우가우가’ 따위의 소리를 내며 우스꽝스럽게 그려지는 흑인 캐릭터는 우리에게 상당히 익숙한 모습이다. KBS 2TV에서 방송되었던 인기 프로그램 ‘시커먼스’는 아프리카 사람에 대한 고정관념을 그대로 표현했다. 얼굴에 검은 칠을 하고 개그를 하는 프로그램의 포맷이 인종 차별의 논란을 띠고 있다고 판단되었고 결국 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폐지되었다. 하지만 30년 가까이 지난 오늘날에도 개그프로그램 ‘웃찾사’는 흑인 분장을 희화화한 캐릭터를 등장시켰다. 논란의 목소리가 거세지자 웃찾사는 해당 회차의 VOD를 삭제하고 사과문을 게시했지만 미디어 창작자들의 기본적인 인종 차별 인식 부족에 대한 문제점은 여전히 남아있다.

단일민족 사상에 사로잡힌 미디어가 생산하는 콘텐츠의 외국인 혐오적인 모습은 주류 미디어 대부분에 숨어있다. ‘비정상회담’과 같은 세계화와 다양성을 표방하는 방송도 외국인 혐오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비정상회담에 등장하는 다수의 패널은 방송에서 한국어를 구사하지만 제1언어가 한국어가 아니기 때문에 발음이나 억양, 단어가 한국인의 발음과 조금 다르다. 방송은 이를 웃음 소재로 삼는다. 외국인의 발음을 그대로 적거나 한국인과 다른 억양을 따라 하는 등 외국인의 발음을 다른 것, 특이한 것, 웃긴 것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비정상회담뿐만 아니라 외국인이 등장하는 거의 모든 프로그램에서 그들의 발음은 웃음거리가 된다. ‘진짜사나이’에서는 한국인에게도 익숙하지 않은 군대식 말투로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외국인 게스트를 윽박지른다. 군대라는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많은 사람에게 노출되는 미디어에서 외국인의 특성을 무시한 채 그들의 다름을 웃음거리로 삼았다는 점은 무시할 수 없다.

한국인의 발음이 꼬이거나 표준발음법과 다른 발음을 구사하는 것은 크게 부각되지 않고 웃음거리로 소비되지도 않는다. 하지만 발음이 서툴 수밖에 없는 외국인의 특수성은 단순히 개그 소재로 사용될 뿐이다. 미디어는 이런 모습을 거리낌 없이 생산해내고 대중들은 자연스럽게 외국인의 한국어에 서툰 모습을 웃기고, 귀엽다고 받아들이게 된다.

한국어가 제1언어가 아닌 외국인이 한국어 발음을 어려워하는 것, 흑인이 검은 피부색을 가지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들의 특성은 개그 소재로 굳어졌다. 우리는 서툴거나 나와 다른 것을 우습다고 인식하게 학습된 것이다. 미디어는 우리에게 웃음을 학습시키고 다시 대중의 인식이라는 방패를 앞세워 편견을 재생산한다. 주류 미디어가 생산하는 혐오는 사회 전체의 인식에 영향을 미치고 소수자는 혐오의 대상이 되지만 혐오를 인식하지도 못한다.

비정상회담의 패널 알베르토가 말할 때 방송은 그의 말을 발음 그대로 적어서 우스꽝스럽게 표현한다.이는 그가 외국인이며 한국어 발음을 어려워할 수밖에 없다는 특수성을 희화화하는 행동이며 명백한 외국인 혐오적 행동이다.

多문화 시대?

다문화라는 단어는 한국 사회로 빠르게 침투하여 어느 순간 자연스러운 말이 되었다. 다문화 시대라는 말이 자주 등장하고 다문화 정책은 정치,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빠질 수 없는 이야기가 되었다. 설날, 추석과 같은 명절이면 TV에서는 다문화 가족의 명절이 방영되고 다문화 가족을 대상으로 한 지역행사도 종종 미디어에 비춰진다. 하지만 이러한 행동이 진정한 다문화로 나아가고 있는 것일까.

다문화는 글자 그대로 다양한 문화의 생활양식이 공존하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미디어에서 다루는 다문화는 한국화에 가까운 모습에 불과하다. 김장 체험, 한복 입기, 한국 민속놀이 체험에 ‘다’문화는 사라지고 한국의 문화를 이주민에게 끼워 맞추려고 할 뿐이다. 다문화를 표방하는 브라운관에는 외국인이 밥도 없이 김치를 먹고 맛있다고 엄지를 치켜드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다른 취향을 가지고 한국과는 다른 생활습관을 유지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자연스럽게 배제된다.

다수자 관점에 입각한 미디어는 소수자의 존재를 지우거나 그들의 모습을 드라마로 소비한다. 이주민 삶의 모습을 다루는 프로그램에서도 그들은 철저하게 타자화된다. 한국인 주류와는 다른 사람이라는 선을 긋고 그들의 삶을 소설 속 이야기로 그려내는 것이다. 귀여운 한국어를 구사하는 동남아시아 이주민, 한국 요리도 잘하는 싹싹한 며느리, 무뚝뚝하고 가부장적인 남편에게 싹싹한 아내의 모습이 방송에 나오지만 복지의 사각지대에 존재하는 이주민, 그들을 배제하려는 사회 구조의 문제, 가정폭력 피해자라는 사실은 지워진다.

외국인 노동자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외국인 노동자는 한국 사회를 구성하는 중요한 구성원이며 그들의 노동은 사회를 유지하는데 혁혁한 공헌을 하고 있지만 차별과 혐오의 시선은 여전히 존재한다. 무슬림 노동자들에게 할랄 푸드가 아닌 음식을 속여서 먹이고 즐거워하는 모습은 외국인 노동자들의 삶을 보여주는 방송에 가감 없이 나온다. 타인의 문화를 존중하지 않는 모습이 웃음거리로 소비되고 외국인 노동자의 노동 환경, 복지, 직장 내 차별은 가려진 채 그들을 드라마 캐릭터처럼 등장시키면서 주류 미디어는 다양성을 존중하는 거짓을 표방한다.

이주민의 삶의 특징을 지우고 타자화된 모습을 소비하는 것은 한국인의 문화와 이주민의 문화를 나누며 차별과 혐오로 이어진다. 한국인 중 다수는 중국인이 시끄럽고 더럽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 한국인에게 오염, 소음 피해를 당할 때에는 개인의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중국인에게 편견을 가지고 개인의 잘못을 인종의 특징으로 돌려버린다. 개인의 행동을 민족적 특징으로 연결시키고 민족의 프레임을 씌우는 일은 주류 미디어를 통해 대중들의 사고방식이 되었고 시끄럽고 더럽지 않다는 것을 해명하는 것은 중국인의 몫이 된다.

나와 다른 민족을 나누고 다수의 문화에서 벗어난 민족을 배제하는 프레임은 가볍게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 범죄자 프레임과 같은 이주민에 대한 편견은 실제 범죄자를 낳고 사회 근간을 흔드는 혐오로 이어진다. 흑인을 범죄자로 여기는 고정관념은 오랫동안 전 세계적으로 문제 되어왔지만 여전히 경찰은 흑인들에게 더 많이 총을 쏜다. 심지어 흑인 경찰도 흑인에게 더 자주 총을 쏜다. 근본적인 문제는 소수자를 배제하고 차별하고 그릇된 인식이다. 우리는 민족을 보기 이전에 사람을 보아야 하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 사회 구조를 바라봐야 한다.

 

당연한 세상을 위하여

우리 사회는 외국인 혐오를 하고 있고 사회 구성원은 그 혐오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긴 지면을 달려왔다. 이 글을 쓰는 필자도, 글을 읽는 독자도 외국인 혐오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수많은 미디어에서 혐오를 생산하고 있고 우리는 혐오를 인식하기 어렵다. 하지만 서론에서 얘기했듯 상식과 정의를 지향하는 사람이라면 자신 안의 혐오를 인지하고 개선하려 해야 한다. 오랫동안 아무렇지도 않게 소비했던 미디어의 내용을 부정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바뀌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조금 더 좋은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소수자를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당연한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오길 바란다.

인하교지편집위원회 안하경  omega.3@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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