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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치] 아직 돌아오지 못한 9명이 있습니다.
울타리 너머로 세월호 선체가 보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을 슬픔에 잠기게 했던 세월호 참사 3주기를 맞았다. 이에 필자는 3년 만에 인양된 세월호 선체의 거치 장소, 목포신항으로 향했다.

목포역에 도착하자, 세월호 거치 장소로 가는 셔틀버스가 운행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운행 주체는 목포시인 것으로 보였다. 해당 셔틀버스를 타고 목포신항으로 가는 길에는 지역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걸어둔 추모 플랜카드와 노란 리본이 이어졌다. 시민단체 및 종교단체는 물론, 개인이 걸어둔 추모 플랜카드가 눈에 많이 띄었다. 지역 주민들이 걸어둔 것도 많았지만 안산, 제주 등 세월호 참사와 연관성이 있는 지역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많은 플랜카드를 걸어두었다.

그 곳에는 온통 노란 물결 뿐

세월호 거치 장소에 도착하자, 주변은 먼저 다녀갔던 사람들이 두고 간 노란 리본들로 가득했다. 추모에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하고 있었다. 삼삼오오 온 사람들도 많았고 90년대 후반 출생 자녀를 동반하고 온 가족도 있었고 아주 어린 자녀와 함께 온 가족도 상당히 많았다. 목포역 등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온 사람은 소수였고 대부분이 자가용을 타고 목포신항에 온 경우가 많았다. 대부분의 가족 단위 방문자는 이런 식이었다. 목포시에서도 이런 사람들을 배려해 목포신항 주차장과 세월호 거치장소를 오가는 셔틀버스를 추가로 구비해 놓았다.

특히 어린 자녀와 함께 온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우리가 왜 이 곳에 왔으며 세월호 참사는 단순한 해상 교통사고가 아니라는 것을 설명해줬다. 목포신항에는 3년 전 그 날 이후 세월호와 관련해서 일어났던 일들이 간략하게 정리된 팻말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많은 시민들이 그 주변을 돌며 3년간 일어난 주요 사건들을 되새기는듯 보였다.

이들의 표정은 다양했다. 얼굴에 어두운 기색을 하고 있던 사람들도 있었고 담담한 얼굴을 한 사람들도 적잖았다. 돌아오지 못한 9인의 미수습자 가족 역시 슬픔에 잠겨있다기 보다는 담담한 표정을 하고 있는 경우가 더 많았다. 미수습자 가족들은 세월호 선체가 보이는 곳에 천막을 치고 앉아 노란 리본을 만들고 있었다. 미수습자 가족들은 현장 작업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하고 있었다.

자리를 지키는 자원봉사자

목포신항에는 유가족과 시민들뿐만 아니라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이 함께하고 있었다. 이들 자원봉사자들은 대부분 목포시나 근처 지역 주민이었다. 현장에서 만난 한 자원봉사자는 “세월호가 목포에 인양된 만큼, 지역 주민이 나서서 도와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했다. 이어 어떤 자격으로 왔냐는 필자의 질문에는 “개인적으로 친목을 도모하는 사람들과 같이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시간마다, 날짜 별로 돌아가면서 참여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화를 듣던 한 시민이 옆에서 “세월호가 여기(목포신항)에 안치되는 기간이 상당히 길어질 것으로 보이는데, 힘드시겠다”고 거들자, 또다른 자원봉사자는 “우리도 한 4개월은 이곳에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왔다”고 말했다.

자원봉사자들은 자신의 능력에 맞게 일을 분담하고 있었다. 한 자원봉사자는 추모하러 온 시민들의 질서를 유도하고 있었고 또다른 자원봉사자는 미수습자 가족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갑자기 더워진 날씨에도 자원봉사자들은 힘든 기색을 내비치지 않았다.

한편, 현장에는 정부측을 비롯한 경찰 인력은 추모를 하러 온 시민들의 수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수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조용한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었고 거의 모든 사람들은 높은 시민의식을 보여줬다. 오히려 경찰 인력이 적었던 것이 시민들의 반발심을 유도하지 않아 질서 유지에 도움을 줬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에 미수습자 가족, 자원봉사자를 비롯한 관계자들은 목포시의 여러 배려에 감사를 표했다.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세월호

목포신항은 분명 세월호 선체를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곳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그마저도 선체를 체감상 수백 미터는 떨어진 곳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선체 근처는 일부 관계자만이 출입할 수 있게 돼있었다. 시민들은 세월호의 모습을 보기 위해 울타리 가까이 붙었다. 그 안타까움을 대변하듯, 부두를 막아둔 철제 울타리는 여러 사람들이 묶어놓은 노란 리본으로 빼곡했다.

실제로 미수습자 가족조차 세월호 선체 조사에 직접적인 참여가 제한되고 있었다. 이에 대해 관계자들은 선체 조사에 미수습자 가족의 참여를 요구하는 플랜카드를 걸었다. 이들은 성역 없는 선체 조사를 촉구하며 미수습자 가족도 선체 조사에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디어와 현실과의 괴리

지난 3년간 추모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단체가 대부분이었지만 좌우를 막론하고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세월호 참사를 이용하던 사람들을 우리는 많이 접해왔다. 그러나 3년이라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 지나자 현장에서 정치색을 느끼기는 힘들었다. 많은 정치 단체, 종교 단체의 플랜카드가 붙었지만 절대다수가 미수습자의 빠른 수습, ‘잊지 않겠다’는 메시지로 가득했다. 일부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내용이 담긴 플랜카드도 보였지만 그마저도 많은 수는 아니었다.

현장은 미디어에서 나오는 것 같은 정치적 논쟁의 각축장이 아니었다. 한 중년 남성은 세월호 희생자들의 사진을 보며 “청춘이 다 갔구나”라며 탄식을 내뱉었다. 부자(父子) 미수습자 사진 앞에서는 모두가 애도의 눈빛을 보냈다.

목포를 떠나며

복합적인 이유로 늦어지던 인양이 완료되면서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조사가 물살을 타게 됐다. 조금씩 수습되는 유품과 그것에 얽힌 사정이 보도되면서 많은 사람들의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최근 추모 분위기에 대해서 모든 것이 정치적이라며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이제는 순수하게 추모를 하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세월호 참사는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해결되지 못한 부분이 많이 있고 아직 슬픔은 아물지 않았다. 지난달 15일, 광화문 광장에서 시민들이 모여 세월호 희생자 추모 및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촛불시위를 벌였다. 다음날인 4월 16일은 부활절이었다. 이날의 슬픔은 한국인만의 것이 아니었다. 이날 잠실에서 내한공연을 하던 영국의 록밴드 ‘콜드플레이’는 공연 도중 스크린에 노란 리본을 띄우고 희생자들을 위해 10초간 묵념 시간을 갖기도 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사회가 직면한 안전불감증, 현실과 거리가 먼 정책과 구조 매뉴얼 등 여러 문제점에 대해서 해결책을 찾아나가야 한다. 우리가 희생자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은 이런 것밖에 없지 않을까.

목포신항 일대는 이렇게 미수습자의 귀환을 기다리는 수많은 플랜카드가 걸려있다.

최창영 기자  12163094@inha.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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