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반 년간 한국사회는 가장 극적인 장면을 연출해 왔다. 이제 며칠 후 치러지는 대선은 그러한 변화를 종결지음과 동시에 또 새로운 시작이 될 거라고 사람들은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대선의 결과에 관계없이 한국은 매우 어려운 난관에 직면해 있다. 그 어려움이란 주변 상황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마치 자승자박의 상태에 놓여 있는 것처럼 보이는 한국의 상황을 두고 한 말이다.
지난 몇 개월동안 한반도 상황을 둘러싼 외신들의 보도를 보면, 마치 긴급한 사태가 당장이라도 발생할 것 같다. 물론 이러한 보도는 미디어의 선정성이나 한반도에 대한 이해부족에서 온 것으로 치부할 수 도 있다.
그러나 한반도를 둘러싼 당사국들의 일련의 언행은 이를 단순히 과장된 보도만으로 보기 어렵게 만들고 있을 뿐만 아니라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문제는 한반도를 둘러싼 목소리에 한국의 것은 없다는 것이다. 주로 미국과 중국, 그리고 북한과 일본의 목소리로 채워질 뿐, 마치 한국은 당사자가 아닌 양 이러한 상황을 조절, 통제하기 위한 노력이나, 상황을 정확히 인식시킬 수 있는 정보 등, 어느 것에 대해서도 가장 중요한 당사국으로서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상황이 이렇게 된 데에는 단순히 사실상 대통령의 부재라는 작금의 비상 국면만이 원인은 아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정부의 대외적인 행동방식은 이후 상황에서 보다 많은 선택가능성과 행동의 여지를 확보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행동반경을 좁히고, 국민들에게만 오히려 따를 것을 강요하는 모습을 보여줘 왔다.
일본과의 위안부의 협상이 그렇고, 사드문제, 남북문제 등도 스스로 마치 배수진을 치고 오로지 하나의 방향만 바라보려는 경직된 태도로 인해, 급변하는 정세 하에서 자기 목소리를 낼 여지가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그 결과 현재 한국은 주변국들의 행동 하나하나를 관망하고 상황을 쫓아가기에 바쁘다. 자신의 운명을 타인에게 넘겨준 셈인 것이다. 아마 역사를 본다면 구한말의 시기가 바로 이렇지 않았나 싶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떤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상황을 일신하기는 결코 용이하지 않을 것이다. 이웃 국가들의 이해가 서로 상충하고 있고, 또 각 국가마다 취할 수 있는 행동방식이 제한되어 있는 상황에서 긴장된 국면을 완화시킬 수 있는 카드는 쉽게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지난 몇 년간의 정책과 대외적인 약속들을 무조건 시정하거나 뒤집는 것은 또 다른 악순환을 불러 올 수 도 있다.
따라서 문제는 한반도의 가장 중요한 주체이자 이해 당사자로서 자신의 역할을 회복하는 것이다. 한반도 문제와 관련하여 한국은 단순히 갈등의 당자자일 뿐만 아니라 문제의 해결과 조정을 위한 주체이기도 하다.
갈등 일변도로만 나아갈 경우, 우리가 보게 되는 결말이 바로 현재와 같은 상황이다. 그리고 주변국들의 이해와 협력을 최대한 이끌어 낼 수 있는 섬세하고 다각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한반도 문제를 접근하는 확고한 원칙을 바탕으로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는 균형감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러할 때 주변국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반도의 문제를 조율할 수 있는 주체자로서 지위가 가능할 것이다.
역사는 반복된다지만, 우리에게는 반복되어서는 안 될 역사가 있다. 우리의 운명을 강대국들의 테이블에 올려 진 먹거리나, 아니면 아무렇게나 긋거나 나누어도 될, 한 낱 지도상의 땅덩어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또 한반도를 역사상 유례없는 폐허로 만들 수도 있는 자포자기식의 역사가 반복되어서도 안 된다. 물론 이 모든 것이 한낱 기우이겠지만…

중국학과 차태근 부교수  inha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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